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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로고는 왜 블랙으로 바뀌고 있을까?

브랜드비는 매년 새롭게 등장하거나 리뉴얼된 로고를 모아 디자인 트렌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년째 반복해서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상이 블랙이라는 점입니다. 최근의 로고들을 한 화면에 모아놓으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로고가 블랙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지난 Special Feature에서 다뤘던 트렌드 색상인 그린에 대한 글의 제목인 “Green is the New Black”이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블랙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중적인 색상이었습니다. 르누아르는 “블랙은 모든 색의 여왕”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조금 애매한 문제가 있습니다.

블랙을 과연 하나의 ‘색상’이라고 봐야 할까요?


색채학적으로 블랙과 화이트는 색상환에 속하지 않는 무채색입니다.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에서는 두 색상을 똑같이 취급하기 어렵습니다. 흰색 바탕에 블랙 로고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블랙 로고’라고 부르지만, 블랙 바탕에 화이트 로고가 있다고 해서 ‘화이트 로고’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배경색에 맞춰 로고를 흰색으로 반전한 버전(Reverse Logo)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블루 바탕에 화이트 로고가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브랜드의 색상은 화이트가 아니라 블루입니다.


최근 브랜드비는 AI를 활용해 로고의 색상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화이트를 하나의 색상으로 단순 집계하면 수많은 반전 버전의 로고가 화이트 로고로 분류됩니다. 반대로 무채색이라는 이유로 블랙까지 제외하면 블랙 로고타입은 물론, 블랙&옐로우처럼 강한 색상 대비를 활용한 아이덴티티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 AI 색상 테스트 - 배경색과 로고 색상을 구분하지 못해서 화이트는 색상 제외, 블랙은 색상 추가로 지정해줘야 했다 >




결국 로고의 색상은 단순히 이미지 안에 어떤 색상의 픽셀이 존재하는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색상이 브랜드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블랙 역시 하나의 로고 색상으로 보고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최근의 브랜드 로고는 블랙으로 변화하고 있을까요?






블랙 로고와 블랙 브랜드 컬러는 다르다


블랙 로고가 늘어나는 현상만 보면 최근 브랜드들이 점점 색상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표 이미지로 등록된 로고는 블랙이지만, 실제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레드와 블루, 그린, 옐로우 등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넓은 컬러 팔레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블랙 로고라고 해서 브랜드 컬러가 블랙인 것은 아닙니다.


< 대표 로고 이미지는 블랙이지만 실제 패키지에 적용되는 색상은 블랙이 아니다 - 맥플랜 by 오세븐 >




과거에는 로고 컬러와 브랜드 컬러가 상당 부분 일치했습니다. 특정 색상을 로고와 어플리케이션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색상 자체를 브랜드의 대표적인 시각 자산으로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고와 브랜드 컬러의 역할이 조금씩 분리되고 있습니다.


로고는 형태와 이름을 보여주는 비교적 중립적인 장치가 되고, 브랜드 컬러는 그래픽과 배경, 패키지, 공간, 디지털 인터페이스, 콘텐츠 등 아이덴티티 시스템 전체에서 보다 유연하게 사용됩니다.


브랜드에서 색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고의 색상과 브랜드의 색상이 분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색상이 로고에서 빠져나와 브랜드 전체로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색상은 로고에서 빠져나오고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이유는 브랜드가 사용되는 환경의 변화입니다.

과거 로고의 주요 무대는 명함과 서식류, 패키지, 간판, 광고 같은 비교적 제한된 매체였습니다. TV 광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환경이었죠. 하지만 지금의 브랜드는 웹사이트와 앱, SNS, 영상, 디지털 광고, 모바일 화면, 제품 UI 등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인 환경에서 사용됩니다.

특히 콘텐츠 미디어가 중요해지면서 로고 주변의 환경은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사진과 영상, 일러스트레이션처럼 자체적으로 강한 색상을 가진 콘텐츠 위에 항상 특정 색상의 로고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 다양한 이야기를 상징하는 A의 무한한 변화 -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패럴림픽 로고>




브랜드가 다루는 제품과 서비스의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하나의 로고가 여러 제품군과 서비스를 아우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로고 색상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는 패밀리 브랜드의 경우 하위 제품이나 서비스를 색상으로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패밀리 브랜드 로고의 색상을 특정 색으로 규정하는 순간 하위 브랜드와 충돌하거나 위계 체계에 혼선을 줄 수도 있습니다.


<채널 4의 로고와 하위 채널 별 달라지는 컬러 시스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요소 자체도 많아졌습니다.

과거에는 로고가 브랜드의 시각적 차별성을 상당 부분 책임졌다면, 지금은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시스템,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아이콘, 모션, UI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듭니다. 로고 하나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기억시킬 필요가 줄어든 것입니다.


<다양해진 브랜드 구성 요소 사례 - Pfizer by Pentagram>




물론 미니멀리즘이라는 디자인 트렌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블랙 로고의 증가를 단순히 ‘요즘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로고가 사용되는 환경과 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로고가 단순해질수록 컬러 시스템은 복잡해진다


블랙 로고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다양한 색상의 배경이나 이미지 위에서 사용할 수 있고, 제품이나 콘텐츠의 색상과 충돌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브랜드가 새로운 사업과 서비스로 확장될 때도 비교적 쉽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블랙 로고를 사용한다고 해서 총천연색의 모든 색상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대표적인 브랜드 컬러가 로고에 적용되어 있다면 관리 방식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같은 색상의 로고를 다양한 접점에서 꾸준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일관된 브랜드 컬러 이미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고를 블랙으로 중립화하면 브랜드의 컬러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이 아이덴티티 시스템 전체로 분산됩니다.

어떤 색상을 Primary Color로 사용할 것인지, Secondary Color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어떤 색상끼리 조합할 것인지, 제품과 서비스에 따라 색상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배경과 그래픽에는 어떤 색상을 사용할 것인지, 사진이나 영상과 함께 사용할 때는 어떤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까지 훨씬 섬세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컬러 팔레트에 열 개의 색상을 나열해놓는 것만으로 컬러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색상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입니다.


<로고가 블랙이라고 해서 컬러 팔레트가 무채색인 것은 아니다 - OFFF by Collins>


따라서 로고에서 컬러를 뺀다고 해서 컬러에 대한 의사결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의사결정이 브랜드 시스템 전체로 옮겨지고 확장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로고가 단순해질수록 컬러 시스템의 설계와 관리는 더 복잡하고 정교해져야 합니다.

유연성은 규칙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 설계된 규칙에서 나옵니다.






블랙은 정말 중립적인 색상일까


블랙 로고를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립성입니다. 어떤 색상과도 비교적 잘 어울리고, 주변의 콘텐츠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중립적인 것과 의미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블랙은 전통적으로 죽음이나 장례와 연결되어 왔습니다. 실제 디자인 작업에서도 블랙과 화이트만으로 구성된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시안을 제안하면 종종 “상갓집 같다”는 반응을 듣곤 했습니다.


반면 패션이나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블랙은 절제되고 세련된 이미지, 권위와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색상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현대카드의 최상위 카드인 ‘the Black’처럼 블랙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블랙의 이미지 I >


같은 블랙이 장례식에서는 애도의 색상이 되고, 럭셔리 매장에서는 프리미엄의 색상이 됩니다. 카테고리와 문화, 사용 환경에 따라 색상이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죠.

따라서 블랙을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기본값’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색상과 마찬가지로 블랙 역시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이미지와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해 선택해야 합니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블랙의 이미지 II>






블랙 로고가 많아질수록 무엇으로 구분할 것인가


블랙 로고의 또 다른 문제는 역설적으로 차별화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블랙이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기 좋은 색상이라는 것은 다른 브랜드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여기에 최근의 미니멀 디자인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비슷한 형태의 산세리프 워드마크와 블랙 로고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화제가 됐던 패션 브랜드의 산세리프 블랙 로고화>




색상은 브랜드를 구분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임팩트 있는 시각 정보 중 하나입니다. 로고를 멀리서 보거나 짧은 순간 노출될 때는 형태보다 색상이 먼저 인식됩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Tiffany Blue나 UPS의 Pullman Brown처럼 오랜 시간 일관되게 사용된 색상은 로고 없이도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로고를 블랙으로 만드는 순간 이러한 색상 식별력을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른 요소가 색상의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로고타입의 형태가 더 독특해야 할 수도 있고, 그래픽 시스템이나 사진 스타일이 더 명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모션으로 움직임을 불어넣는다면 그 움직임의 방식이 독특해야 하겠죠.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다면 개별 색상이 아니라 색상의 조합과 사용 방식 자체가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일관되게 운영되어야 합니다.


결국 블랙은 가장 사용하기 쉬운 로고 색상일 수 있지만,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의 색상을 가질 것인가, 색상의 시스템을 가질 것인가


지난 글에서는 하나의 색상이 어떻게 브랜드의 자산이 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Tiffany는 180년 가까이 블루를 사용했고, UPS 역시 100년 넘게 브라운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하나의 색상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면서 소비자가 색상만 보고도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는 자산을 만들었습니다.


이 전략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하나의 색상에 브랜드의 기억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만큼 제약도 생깁니다. 브랜드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로 확장되더라도 해당 색상과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최근의 블랙 로고와 유연한 컬러 시스템은 반대 방향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로고에서는 특정 색상을 고정하지 않고, 브랜드 전체에서 여러 색상을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기 쉬워지는 대신 하나의 색상을 브랜드와 강하게 연결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의 색상을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색상을 사용하는 방식을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전자는 집중을 통해 강력한 기억을 만드는 전략이고, 후자는 시스템을 통해 유연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만드는 전략입니다.

문제는 블랙 로고 자체가 아닙니다. 최근 많은 브랜드가 블랙과 미니멀리즘이 트렌드라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전략 없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의 대표 컬러를 포기한다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색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이 달라졌다


브랜드 로고에서 블랙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브랜드에서 색상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색상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로고가 색상을 소유했습니다. 로고에 특정 색상을 입히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면서 브랜드 컬러를 인지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브랜드 시스템이 색상을 소유합니다. 로고는 블랙이나 화이트처럼 중립적으로 사용하고, 색상은 그래픽과 공간, 제품, UI, 사진, 영상과 같은 다양한 접점에서 움직입니다. 그만큼 자유로워졌지만 관리하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나의 색상을 오랜 시간 반복해 강력한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여러 색상의 관계와 사용 방식을 정교하게 설계해 하나의 컬러 시스템을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색상을 사용하느냐도, 로고가 블랙이냐 아니냐도 아닙니다.

색상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시키고, 어떻게 일관되게 운영할 것인가입니다.


브랜드에서 색상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색상이 로고에서 벗어나 더 넓은 브랜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6 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