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랜딩(Re-Branding), 브랜드를 다시 만든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바뀌었다던가, 매출이 줄었다던가, 이미지가 악화되었다던가 등등 다양한 이유로 리브랜딩을 진행합니다. 이 분야와 가장 밀접한 것이 저희 브랜딩 에이전시가 아닐까 싶어요. 리브랜딩 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명 또는 브랜드 네임, 로고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니까요. 리브랜딩의 여러가지 활동 중 네임이나 로고 디자인 변경이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하고, 가시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상대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직 문화 변경, 제품 리뉴얼, 광고 집행 등과 비교하면 말이죠.)
그런데, 누구나 쉽게 리브랜딩을 결정할 수 있지만 "잘" 하기는 어려워요.
리뉴얼 전보다 못한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데요, 다른 글에서도 누차 언급했듯이 브랜드 네임이나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기 마련이고, 브랜딩의 영향력이 발휘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리브랜딩을 진행한 당사자는 그 실패를 빠르게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이번에는 리브랜딩 실패사례를 통해 최악의 결정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해요.
*리브랜딩 실패사례는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사례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2022년 5월 작성 이후 최신 사례를 반영하여 업데이트되었습니다.
1.GAP
가장 대표적인 리브랜딩 실패사례가 아닐까 해요. 로고 리뉴얼 발표 후 엄청난 반발을 받았고, 단 6일만에 이전 로고로 돌아간 최악의 리브랜딩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Gap-gate"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죠.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한,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의 패러디 작업 중 재미있는 것으로 골라봤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Gap 리브랜딩의 실패 원인은 바로 '성의 없는 디자인' 입니다. 이런 로고도 수많은 고심을 거쳐 탄생했을꺼라고요? 흠, 그러기에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요. 왜 '성의없는 디자인'인지 설명드릴께요.
첫째, 패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Gap’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만 집착한 탓에, 브랜드 고유의 개성을 잃었습니다. 리뉴얼 로고 디자인은 Gap 이라는 컨셉으로 진행하는 어느 브랜드나 행사 포스터에도 붙여도 무방할 정도로 보편적이었죠. 이런 피상적이고 1차원 적인 접근은 아마추어 디자이너나, 정말 고민없이 대충 디자인하는 B급 에이전시에서나 볼 수 있어요. Gap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이런 선택을 한 것 자체가 브랜드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였습니다.
둘째, 시각적 완성도와 창의성이 부족했습니다. 대학생의 수업용 습작 같다는 평가까지 나왔고, 기술적으로도 정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드나 황금비율 등 기본적인 조형 원칙조차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셋째,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라갔습니다. 당시 헬베티카(Helvetica) 서체가 유행하자, 브랜드 적합성 검토 없이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트렌드는 참고 사항이지, 정체성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Gap은 재빠르게 새로운 로고를 포기했는데요, 사실 이는 Gap이 창의성과 심미성에 민감한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른 산업 분야는 개발에 투입한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서인지 엉망인 로고를 꿋꿋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2.Cracker Barrel
앞서 설명한 Gap 사례와 유사한 일이 15년 뒤 반복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Cracker Barrel은 컨트리풍 스타일로 유명한 미국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입니다. 2025년, 현대적으로 단순화한 로고 디자인과 밝은 인테리어를 공개했지만, 발표 직후 고객과 대중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발표 다음 날 주가가 7.2% 급락, 시가총액 기준 약 9,400만 달러의 가치가 증발했다고 합니다.
Gap과 달리 Cracker Barrel의 리브랜딩은 디자인 자체의 완성도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련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죠.
하지만 브랜드의 핵심 자산과의 단절이 문제였습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정서적 연결과 향수를 무시하면서, 결국 고객 반발과 주가 하락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리브랜딩이라는 명목 아래라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고객과의 정서적 신뢰를 경시하면 돌아가기 어려운 손상을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Republica Portugues
2023년, 포르투갈 정부는 국가 및 정부 공식 커뮤니케이션용으로 사용되던 기존 엠블럼을 폐기하고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발표했습니다.
새 로고는 국기 색상을 단순화한 기하학적 도형과 전용 서체로 구성되었으며, 디지털 친화성·가독성·범용성을 목표로 했습니다. 웹과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에 활용하기 위한 의도였죠.
하지만 이 변경은 곧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었어요. 결국 2024년 4월, 새로 집권한 정부가 로고 사용을 공식 중단하고 과거 엠블럼으로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기존 엠블럼은 포르투갈의 역사와 상징성을 담은 문장(Coat of Arms)이었는데, 이를 단순 도형으로 재해석하면서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새 로고 디자인이 추구한 것은 미학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적 상징 싸움의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또한 단일 디자이너와 정부 주도만으로 진행되어, 국민적 합의나 문화적 민감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런 국가 브랜딩은 단순한 리뉴얼이 아닌 공적 자산의 재정의 과정이므로, 사회적 합의와 절차적 투명성을 반드시 동반해야 합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된 서울시 브랜딩 논란과도 닮아 있어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습니다.
4. Tropicana
트로피카나는 마케팅 교과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디자인 자체는 심플하고 세련되었지만, 기존 패키지가 이미 브랜드의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간과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움보다 익숙함과 친근함을 더 선호했죠. 특히 식음료 분야의 고객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결국 패키지 변경 후 매출이 약 20% 하락하며, 디자이너들에게는 악몽 같은 결과로 남았습니다.
5. PWC
PwC 사례는 오래되어 생소할 수 있지만, 흥미로운 포인트를 제공합니다.
사명을 단축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쉽고 짧은 이름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PwC의 고객은 대부분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기업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의 길이보다 신뢰와 전문성입니다. 새 이름은 기능적으로는 훌륭했지만, 고객의 니즈와 산업 맥락에는 부적합했습니다. 네이밍 시 "쉽고 짧은 이름이 항상 옳다"는 편견에 경각심을 주는 사례입니다.
6. Aberdeen
이 회사는 2017년, Standard Life와 Aberdeen Asset Management가 합병해 Standard Life Aberdeen이라는 긴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2021년에 사명과 브랜드명을 abrdn으로 변경하며 '명확한 포커스(Clear Focus)'와 '단일 글로벌 브랜드' 구축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abrdn은 곧바로 "읽기 어렵고, 발음이 불편하며, 오타 같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2025년, abrdn을 철회하고 다시 aberdeen으로 회귀했습니다. "디지털 친화적 단일 브랜드"라는 이상적인 목표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고객 신뢰를 훼손했습니다.
이 사례 역시 "짧고 트렌디한 네임"이 항상 좋은 선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7. PizzaHut
피자헛은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봤을 때 명확하게 실패가 두드러지진 않아요. 5년 정도 사용을 했으니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2019년에 20여년 전 로고로 회귀했다는 것입니다. 뉴트로 트렌드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2014년 리브랜딩이 Worst 사례로 손꼽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피자헛의 상징은 모자 같기도 한 '빨간 지붕'인데요, 2014년 버전은 이 '빨간 지붕'을 Negative 처리를 하고, 토마토 소스 형태의 Frame을 추가했어요. 이렇게 되면 직관적으로 '빨간 지붕'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보이는 대로 말하면 '하얀 지붕'이죠) 너무 많은 시각적 요소가 브랜드 이미지 전달에 방해를 하고 있고, 솔직히 저도 이 로고가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아요. 소비자 기억 속에 남지 않은 로고는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8. 스타일쉐어
스타일쉐어는 SNS 기반의 패션 플랫폼으로, 2020년 대대적 리뉴얼을 했다가 바로 원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사례인데요, 바로 새로운 로고가 '나치'의 상징물과 유사하여 논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로운 심볼은 2개의 S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라 디자이너가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심플함과 미니멀을 추구하는 디자인 트렌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단순할 수록 유사성을 피해가기 어렵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디자인 유사성은 둘째치고, 컨셉인 '단추와 스티치'가 스타일쉐어라는 브랜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적합한지도 의문입니다.
*참고: 스타일쉐어는 2022년에 서비스종료했습니다.
9. 산타토익
산타토익은 스타트업 '뤼이드 Riiid'의 AI 토익 학습 브랜드입니다. 2021년 해외진출을 목표로 브랜드 변경을 했는데요, 기존 브랜드 네임인 '산타'가 상표등록이 어려운 점, 해외에서는 종교적 인물로 받아들여져 브랜드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다시 산타토익으로 돌아왔어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변경한 브랜드 '뤼이드'가 우리나라 사람에겐 너무 어려운 이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운 이름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홍보하면 독특한 브랜드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데요, 산타토익의 경우는 기존에 4년간 '산타' 브랜드로 인지도를 쌓아온 점과 브랜드 네임 변경 초기 시 으레 발생하는 반발을 이겨낼 만큼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참고: 뤼이드는 2025년 소크라AI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10. Parler
Parler는 미국 대선 때 유명해진 SNS 플랫폼인데요, 미국 극우주의자들이 트위터 등의 규제를 피해 대거 가입하면서 사용자가 급증했다고 해요. 그에 힘입어서인지 2021년 리브랜딩을 단행했는데, 역시 반년만에 다시 변경하게 되었어요. 정확한 변경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뉴얼되었던 심볼이 너무 추상적이라 브랜드를 상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V, 모래시계, 꽃 등등 사람마다 인지하는 게 달랐고, Parler라는 브랜드와(참고로 Parler는 프랑스어로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연관 요소가 없었거든요.
리브랜딩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된 교훈이 있습니다.
사실 리브랜딩의 성공·실패를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매출 급락, 소비자 반발, 사회적 논란 등 극단적인 경우만 ‘실패’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그 결과가 명확해집니다.
아래의 팁은 ‘최악’을 피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브랜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특히, 리브랜딩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기존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어서이기 때문에, 단점만 눈에 들어오고 장점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바라보도록 노력해 보세요. 외부 전문가에 브랜딩을 의뢰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2. 고객이 리브랜딩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어휴, 자꾸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네요. 그런데 왜 다들 놓치는 것일까요? 트로피카나와 PWC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고객이 별로 원하지 않을 때는 리브랜딩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예요. 단, 고객이 완전히 무관심인 경우도 있어요. 이 경우는 반드시 리브랜딩을 해야겠죠. 네? 원하지 않는 것과 무관심을 어떻게 구분하냐고요? 그렇다면 브랜딩이 문제가 아니라 고객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을 먼저 만드셔야 할 것 같아요.
3. 리브랜딩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세요.
다양한 리브랜딩의 이유 중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하나의 목표를 정해 보세요. 목표가 많을 수록 방향성을 잃고 헤메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첫번 째 목표만 달성해도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진행하면 의사결정도 쉽고 빨라지고, 실패할 확률도 낮아집니다. 단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브랜딩이 완성된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4.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점검하세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또 추구합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돼요. 새롭게 변화했을 때 그 순간은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곧 식상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것이냐 '축적된 인지도'를 계승할 것이냐는 리브랜딩 시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만, 실패하지 않으려면 후자가 가장 안전한 선택입니다. 특히 오랜 시간 누적되어 쌓여온 고객 인지도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요즘처럼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선호도를 떠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예요.
5. 기존 브랜드와 연결 고리를 유지하세요.
드라마틱한 변화는 흥미롭죠. 그런데 드라마틱한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하는 사람도 꽤 많아요. 실패하지 않는 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요, 브랜드 구성 요소 중 적어도 1개 이상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겁니다. 네임일 수도 있고, 심볼의 형태나 색상, 또는 서체일 수도 있어요. 브랜드 이미지의 연속성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또 점점 성장하고 발전하는 브랜드로 보여질 수 있거든요.
리브랜딩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접근이 안전합니다.
변화의 폭이 크지 않더라도, 일관성과 신뢰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파격적인 리브랜딩은 그 시도 자체가 가치 있지만, 그 결과를 책임질 자신이 있을 때만 시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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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 2022 MAY
Updated : 2025 D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