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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브랜딩에 대한 궁금증들

인구 천만의 대도시이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새로운 브랜드 로고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올해 5월에 진행했던 디자인 후보안 투표는 비단 브랜딩 종사업자들 뿐 아니라 전국민을 경악케 했었고, 어떻게 수습하나 싶었는데요, 결국은 기존 디자인을 수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더군요. 그러나 그 결론이 정말 서울시의 정체성을 반영한 최적의 결과물이었는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오리지널 디자인의 개발 목적은 서울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아닌 서울시의 '관광' 브랜드였거든요.


이번 글은 새로운 서울시의 브랜딩에 대해,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브랜드비가 항상 얘기해왔죠? 브랜딩의 성공여부는 고객과 시간이 판단내린다고요. 브랜드비가 브랜딩 결과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주관적 의견에 불과하기에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브랜드 개발 과정, 즉 프로세스에 관해서는 제 20여년 업력을 토대로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 서울시 브랜드 변천사


먼저 서울시가 그동안 어떤 브랜드를 만들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해요.



서울시가 처음 '브랜딩'을 한 것은 2002년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년도를 모를리가 없죠? 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입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로는 월드컵을 맞아 부랴부랴 만들었다고 해요. 약 20여년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기보다는, 서울시의 중소기업 제품을 보증하는 '인증마크'로 만들었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당시는 '도시 브랜딩'은 커녕, '브랜딩'의 개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죠. 이 때도 디자인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Hi'라는 슬로건이 공허한 문구라는 평이 많았어요.


2006년 오세훈 시장으로 바뀌면서 'Soul of Asia'라는 태그라인이 '잠깐' 추가되었습니다. 왜 '잠깐'이냐구요? 중국이 '아시아의 영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강력 항의했기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요.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Soul' 사랑은 이때부터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취향은 참 안 변해요, 그쵸?


2015년 역시,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면서 브랜드도 변경됩니다. 비록 최종 슬로건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했지만, 디자인 완성도에 대한 의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전문 브랜딩 에이전시가 개발했거든요.


그리고 2023년 또 다시,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의 브랜드도 또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도시' 브랜드가 아니라 '시장' 브랜드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아마 저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다음 시장이 바뀌면 또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실 겁니다. 브랜딩을 하는 이유이자 목표는 브랜드 가치를 지속해서 누적해나가는 것에 있는데요, 시장에 따라 변경되는 도시 브랜드가 진정한 브랜딩이 될 수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아무튼, 이번에 얘기할 브랜딩 과정은 새로운 서울의 브랜드 'Seoul My Soul' 에 관한 것이예요. 참고로, 위 이미지에서 2022년 발표된 서울시의 관광 브랜드 'My Soul Seoul' 도 눈여겨 기억해 두세요.






2. 서울시 리브랜딩 과정


이번 리브랜딩의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단, 시간의 비례는 적용하지 않았어요. 중요 포인트만 날짜를 기입해봤습니다.



저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서울시의 슬로건 확정 공식 발표 후, 고작 12일!!! 만에 디자인 투표를 위한 후보안이 발표되었더라고요.

원칙대로 따지자면, 말도 안되는 일이죠. 추측건대 3월 16일 슬로건 투표 종료 후, 서울시 내부적으로 잠정적으로 후보안을 결정하고 디자인에 돌입했을 것이예요. 그럼 약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의 개발 기간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발표된 디자인 후보안을 보는 순간, 이건 12일이 아니라 1~2일만에 개발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래의 이미지가 논란의 디자인 후보안 4개입니다.







3. 충격을 안겨주었던 디자인 후보안, 그리고 논란들


당시 저도 너무 충격을 받아서 SNS에 공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 '불호不好'를 강력히 표현했죠. 주변 브랜딩 종사자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 디자이너인 일반인들도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여러분, 대한민국 국민의 디자인 눈높이를 절대 얕잡아봐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예요.)


선호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마도 서울시는 국민들의 강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선호도 외에 피할 수 없는 이슈들이 발견됩니다.



SNS 상에서 이슈가 되었던 것은 과거 굿즈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예전 'I Seoul U'를 다시 살펴보면서 추가로 발견한 것은, 당시 선호도 조사 후보안으로 올라왔던 디자인 중 하나가, 이번 후보안에 거의 똑같이 등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나머지 후보안들도 의심이 가더군요. 공교롭게도 선정된 슬로건 단어중 하나인 Soul과 Seoul은 알파벳 구성이 e를 빼면 동일합니다. 즉, 기존에 디자인되었던 수많은 Seoul이 들어간 로고 디자인에서 e를 뺀 후 짜깁기를 하면, 일단 'Seoul Soul '이 완성되는 것이죠. 디자인 후보안들을 보면 모두 동일하게 my의 글자 형태가 따로 노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비 전문가의 '짜깁기'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5일만에 디자인 투표를 중단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대국민 공모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4. 최악의 디자인 후보안이 만들어진 이유, 정말 이상한 디자인 프로세스


제가 담당하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브랜딩 기획인데요, 기획 업무에서 프로세스와 일정 정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목표한 일정까지 브랜드를 만들고 완성시키려면 초기 단계에 꼼꼼하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해요. 아무리 꼼꼼히 계획해도 실제 진행하다보면 여러 돌발 상황이 일어나고, 이런 저런 변수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분 공간과 플랜B 마련도 필요합니다.

서울시 브랜드의 개발 프로세스를 보도자료 등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나열해 보았어요. 이번에는 시간 비례를 적용했습니다.



정리하면서 계속 '이상하네, 왜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로건이 확정되기 한참 전에 디자인 에이전시를 선정한 것은 그렇다 쳐요. (업무범위 파악 등 사전 준비가 필요할테니까요.) 그런데 경쟁입찰로 선정한 디자인 에이전시를 약 2개월만에 계약 파기하고, 원래 디자인 개발 예산의 13% 수준의 비용으로 신규 에이전시를 선정합니다. (1억 3천은 어디로?)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변화예요. 두 번째 디자인 에이전시 선정 역시 슬로건 투표 전에 이뤄졌습니다.


슬로건 투표는 장장 2개월 반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요, 그동안 디자인 에이전시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종종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무리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브랜드 네임이나 슬로건이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디자인을 할 수 없냐는 문의 내지 요구를 받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씀드리는 편이예요. 어릴 때에는 피치 못하게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보면서 맞춰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못할 짓이더라고요. 왜냐구요? 디자이너들은 두 번, 세 번 일하는 셈이거든요. 특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디자인은 정말 '헛수고'라고 밖에 할 수 없어요.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불안함을 덜기 위해 디자이너들의 노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정말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더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예요!


기사에 따르면 두 번째 디자인 에이전시는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기는 했다고 해요. 하지만 투표에 부쳐진 4개 후보안은 B 에이전시의 디자인이 아니며, 실적으로 내세우지도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추측하건대, 4개 후보안은 서울시 디자인국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진짜 디자이너가 개발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종 4개안을 선정하여 발표한 서울시 디자인국의 안목은...... 정말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제발 디자인을 모르는 누군가의 압력이라고 변명이라도 해줘요!)


논란 끝에 급히 진행된 디자인 공모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디자인 공모전 역시 브랜드비가 할 말이 진짜 많은 분야인데요, 글이 너무 길이지니 일단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8월 16일 발표된 최종 디자인을 보면 공모전의 수확이 없었단 것을 유추할 수 있어요.


공모전 종료일자와 최종 디자인 발표 일자 사이의 기간은 채 2개월이 되지 않는데요, 이 2개월 동안 공모전 심사와 평가, 지난 디자인 후보안 폐기 결정, 기존 관광 브랜드 - My Soul Seoul의 디자인 사용 결정, 그리고 기존 관광 브랜드 디자인 수정 및 한글 버전 개발이라는 많은 일들이 이뤄졌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정이예요! 그리고 '시민 참여'라는 말이 무색하게, 최종 결정의 가장 핵심적 부분은 비공개로 조용히 이뤄졌네요.


총 1년 여의 개발 기간 동안, 최종 확정된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투입된 시간은 얼마일까요? 단언컨대 채 한 달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5. 최종 결정된 서울시의 새로운 브랜드



브랜드비는 Originality를 매우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오리지널 디자인인 My Soul Seoul을 왼쪽에 배치했어요.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해보면 미세한 디테일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또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어순에 따라 시각적 구성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비 디자이너 일반인에게 예시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만들어 주셔서 일단 감사!)


아마도 향후 커뮤니케이션 상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왼쪽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폐기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예요. 그래서 반드시 오리지널 창작자의 크레딧을 밝히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는 되었지만, 끝나지 않는 궁금증들


우선은 4개 후보안 중에 그 어느 안도 채택되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채택되었으면 저는 서울 시민임을 거부했을 꺼예요.) 그리고, 최종 디자인은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 아쉬움은 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참고해 주세요.


서울시의 브랜딩을 이해해보고자, 그 과정을 정리해봤는데요, 오히려 궁금한 점이 더 많아진 것은 왜일까요?



아는 디자이너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나랏일은 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 브랜딩을 보면서 그 분의 말이 지극히 공감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조금 씁쓸해지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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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2023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