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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erfect Aesthetics

모두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에 지쳐버린 시대


2026년은 붉은 말의 해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 국가에서는 벌써부터 '붉은 말' 마케팅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화제가 된 말 인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쿠쿠마(哭哭马)라는, 울고 있는 듯한 표정의 말 인형입니다.


<현대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각종 밈으로 재탄생한 쿠쿠마>


웃고 있는 입 모양을 거꾸로 봉제해버린 실수로 탄생한 이 인형은 정상적이라면 불량으로 분류되어 폐기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며, 오히려 정상 제품보다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웃고 있어야 할 얼굴이 실수로 울고 있는 표정이 되어버린 이 모습이, 과도한 과시와 인위적인 행복에 지쳐버린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이 현상은 2024년 Charli XCX의 brat 앨범 디자인이 불러일으킨 반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형광 녹색 배경, 무성의해 보일 정도로 촌스러운 타이포그래피, 깨진 픽셀이 보일 정도로 엉성한 해상도는 정교하게 설계된 비주얼 시스템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일종의 피로 해소처럼 작용했습니다. '잘 만든 디자인'이 아니라, 잘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Charli XCX의 brat 앨범 커버 이미지>



이처럼 최근의 문화 현상은 직업병적으로 정교함과 완벽함을 추구해 온 우리 브랜딩 업계 종사자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하는가? 완벽함만이 가치 있는가?






촌스러움으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한 브랜드들


브랜딩 세계에서 어설픔과 촌스러움은 흔히 아마추어적이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이미지와 직결됩니다. 또한 시대에 뒤처진 낡고 진부한 브랜드라는 오명을 쓰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리뉴얼과 리브랜딩을 반복하죠.


그런데 이러한 일반론과는 정반대로, 극도의 촌스러움을 오히려 고수하거나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브랜드들도 존재합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강렬한 차별화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1. 장수돌침대


"별이 다섯 개"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장수돌침대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광고 톤과 비주얼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사실 편하고 좋은 침대와 별의 개수 사이에는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호텔 업계처럼 공인된 평가 기준도 아니죠.

그럼에도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다섯 개의 별을 적극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장수돌침대만의 품질을 상징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전국민의 90% 이상이 장수돌침대 광고를 알고 있다고 하는데, 제작비 300만 원, 제작 시간 30분으로 무려 17년간 활용된, 가히 '가성비의 전설'이라 할 만한 광고입니다.







2. 여명808


여명808 역시 B급 감성의 광고로 잘 알려진 브랜드입니다. 그러나 광고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정보와 색상이 과잉된 패키지 디자인입니다.

"숙취해소에 조은차"라는 문구를 표기하기 위해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는 일화는 이 브랜드의 집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현재의 패키지 디자인은 리뉴얼을 거쳐 개선된 버전입니다.







3. 지도표 성경김


은박지 포장으로 유명한 지도표 성경김은 옛스러운 세로쓰기를 고수해 왔습니다. 일견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꾸준한 디자인 리뉴얼을 진행해 왔고요.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 지도 그래픽과 "쟁이가 만듭니다"라는 태그라인은 지도표 성경김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요소입니다.


브랜드 이름 때문에 종교와 연관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성경김의 '성경'은 이룰 성(成), 수도 경(京)을 의미하며 '김의 수도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에너지 기업 삼천리 그룹에 인수되었는데요, 모기업의 이름과 묘한 인연이 느껴집니다.







4. 부영 사랑으로 아파트


고급화를 추구하는 아파트 브랜드 환경 속에서, 부영의 '사랑으로'는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보여줍니다. 2006년 런칭 당시에도 이미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브랜드가 2000년대보다 훨씬 이전에 탄생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사실 소비자 반응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으로' 브랜드를 기피해 자체적으로 단지명을 변경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부영은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것보다 아파트의 질을 높여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브랜드를 변경하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5. In-N-Out Burger


인앤아웃은 1954년 이래로 수십 년간 거의 동일한 로고, 메뉴 구성, 매장 경험을 유지해 온 브랜드입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계가 메뉴 확장, 인테리어 리뉴얼, 디지털 UX 고도화 경쟁에 나서는 동안에도 인앤아웃은 철저히 변화에 거리를 두었습니다.

붉고 노란 색상의 구식 로고, 단순한 메뉴 보드, 패스트푸드치고는 느리게 느껴질 정도의 운영 방식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촌스럽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식 이미지는 오히려 브랜드의 일관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로 전환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인앤아웃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6. Waffle House


'미국의 김밥천국'이라 불리는 와플하우스(Waffle House)는 1970년대에 멈춘 듯한 비주얼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촌스러움은 유행이 아니라, 브랜드의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노란 정사각형 안에 배치된 알파벳 로고 역시 와플하우스 고유의 시각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7. Trader Joe’s


트레이더 조스는 일부러 어설픈 동네 마트를 연출한 브랜드입니다. 손글씨 간판, 촌스러운 일러스트, 통일되지 않은 그래픽을 통해 대기업 유통사임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점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더 조스는 이러한 어설픔을 통해 대형 자본의 냄새를 효과적으로 희석시킨 사례이며, 로고 디자인 또한 1967년 버전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습니다.







8. Cracker Barrel


크래커 배럴은 촌스러움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온 브랜드입니다. 문제는 이 브랜드가 현대화·세련화를 시도했을 때 발생했습니다. 로고와 비주얼을 정제하려는 움직임은 곧바로 강한 소비자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브랜드는 방향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례는 촌스러움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정체성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꾸준한 일관성으로 신뢰를 만들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 촌스러움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수십 년간 변하지 않는 모습 뒤에는 각자의 철학이 존재합니다.
  • 유행에 동참하지 않는 선택이 오히려 선명한 차별점을 만들고,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됩니다.
  • 이 브랜드들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또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다듬어 왔지만, 큰 변화 없이 반복된 일관성이 결국 신뢰를 만들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모두 세련됨의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섰습니다.

대신 변하지 않음, B급 감성, 투박함 같은 요소를 통해 자신들만의 기준을 구축했습니다.






Imperfect Aesthetics

AI 시대, 불완전함의 미학이 만들어내는 진정성


AI 기술의 발전으로 완벽한 결과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불완전함은 새로운 가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숨겨야 할 실수나 결함으로 여겨졌던 요소들이 이제는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미와 진정성의 증거로 인식됩니다.

쿠쿠마 인형의 어긋난 표정이 공감을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설픔은 인간미의 시각적 언어가 된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담긴 태도와 맥락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줍니다.

반대로, 일관성 없이 방치된 어설픔은 매력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 유지된 태도와 진정성만이 브랜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적 완벽성만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공감 능력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매끄럽게 정제된 결과물보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인간의 손길과 이야기에 더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소비자들이 촌스러움에서 읽어내는 메시지는 바로 진정성입니다.


2026 F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