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웃도어 브랜드가 엄청나게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외에서 색색의 아웃도어를 입고 있는 여행단은 무조건 한국인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국민패션으로 자리잡았었습니다. 또, 노스페이스를 선두로 당시에는 좀 낯설던 갖가지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가 론칭되었고, 국내 패션기업들도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유행이 지난 지금은 탑 티어 브랜드 외에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요, 요즘 다시 '파타고니아'의 유행으로 부활의 시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브랜딩을 보면서 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 자연을 즐기는' 등의 친환경 메세지를 던지지만, 실제 거의 모든 제품은 고기능성 합성 섬유로 만들어집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 환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심지어 많이 팔릴 수록 해를 끼친다는 모순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최근 핫한 '파타고니아' 역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여전히 합성 섬유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대신 헌옷 입기 마케팅이나, 재활용이나 생산단계에서 탄소절감 등의 활동을 통해 '덜 해로운' 제품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화학 및 합성 섬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본질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의 대표 주자 - 파타고니아, 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합성 섬유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런데, 이런 아웃도어 브랜드의 모순점을 명쾌하게 불식시킨 한 브랜드가 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출시되지 않아 많이 생소하지만, 일부 소수의 매니아들은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것 같더라고요. 바로 이번에 소개할 진정한 친환경 브랜드, Icebreaker입니다.
1. Icebreaker 의 히스토리
Icebreaker는 1995년 24살의 청년, Jeremy Moon이 만든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당시 Jeremy Moon의 여자친구가 뉴질랜드를 여행한 뒤 한 양털 농장을 소개시켜줬는데요, Jeremy Moon은 그 농장에서 생산한 양모로 만든 셔츠를 입고 그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깜짝 놀랐다고 해요. 사실 양모는 탁월한 보온성, 통기성을 자랑하는 천연 섬유이지만, 따갑고 무겁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소재와 가공 방법에 따라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것이었죠. 또 Jeremy Moon은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었는데, 소위 '테크니컬 웨어'들은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과 같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졌기에, 마치 비닐 봉지를 입고 자연에서 쉼을 찾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양모의 잠재력을 직감한 청년은 대출을 받아 진정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를 창업하게 됩니다.
아마도 창업자의 이 스토리에 착안하여, 이 글의 커버 이미지로 사용한 광고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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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0% Merino Wool & Layering System
Icebreaker의 제품 라인업은 일반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와 조금 다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웃도어 패션'이라고 하면 두툼한 '대장 다운'이나, 고어텍스가 함유된 기능성 점퍼를 떠올리는데요, Icebreaker는 천연 양모로 만든 제품이기에 고기능성 다운이나 점퍼를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양이 층층이 쌓인 양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특유의 레이어링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피부에 닿는 제품은 얇고 부드럽게, 외부에 노출되는 제품은 두툼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겹겹이 입으면 양이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대장 다운' 없이도 냉기를 버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뉴질랜드에서 생산한 100% 천연 울 소재라는 것을 강조하여 일명 'Baacode'를 도입했는데요, 이 바코드를 검색하면 양털에서부터 옷을 만들기까지의 제품 생산 이력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양의 울음 소리인 'Baa'와 바코드를 조합한 명칭이 재미있습니다.
3. 자연을 근간으로 하는 브랜드 철학
창업자의 말에서 Icebreaker 라는 브랜드 네임의 유래를 알 수 있습니다.
자연 그리고, 천연 소재는 20여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지켜오고 있는 브랜드 에센스인데요, 이를 반영하기 위해 단순히 천연 양모로 제품을 만드는 것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양모 생산 농가의 경영, 동물 복지, 원료 수급 및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지속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Icebreaker의 철학을 표현하는 3개의 키워드 역시 자연의 속성을 반영한 것입니다.
- Adaptation 적응 : 생물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에 따라 번성하거나 죽는다
- Symbiosis 공생 : 생물은 상호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한다
-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 : 자연은 아무 것도 낭비하지 않는다. 낭비(쓰레기)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다.
4. 플라스틱 0%에 도전하다
사실 제가 Icebreaker를 알게 된 것은 2010년도에 발행된 브랜딩 관련 해외 서적을 통해서였는데요, 한 청년이 뉴질랜드에서 작게 시작한 브랜드가 15년만인 2010년, 매출 1억달러 (한화 약 1300억원), 4년 뒤인 2014년에는 두 배인 매출 2억달러를 달성하면서 해외에서는 성공적인 브랜딩 사례로 유명세를 탄 것 같아요. 책에 수록될 당시만 해도 제품 라인업이 다양하지 않았기에 (주로 양모 셔츠, 양말 등) '100 퍼센트 메리노 울'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요, 브랜드가 유명세를 얻고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면서 순수 양모 제품만으로 구성하는 데에는 성장의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2018년 2.88억 달러에 글로벌 패션 기업 VF Corporation에 인수되었는데요, 아마도 이 때 부터 합성섬유를 함께 사용한 제품이 증가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고로 VF Corporation은 노스페이스, 반스, 키플링, 팀버랜드 등 다양한 아웃도어&액티브 웨어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이예요.
그래도 Icebreaker는 고유한 브랜드 철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2019년에 대담한 발표를 합니다.
바로 2023년까지 '플라스틱 사용율 0%'를 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Icebreaker의 2021/2022년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소재 사용을 약 95%까지 늘렸다고 합니다.
(기업의 ESG 활동의 벤치마킹 자료로서 Icebreaker의 투명성 보고서를 추천합니다. 전문성과 디테일, 깊이 남달라요!)
또한 나일론, 엘라스틴 등 합성 섬유도 석유화학(Petrochemicals)이 아닌 자연소재(피마자, 옥수수 등)에서 추출한 바이오 베이스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요.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Icebreaker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비록 달성하지 못할지라도 무려 90프로가 넘는 천연 소재 사용은 정말 칭찬할만 하다고 생각해요.
5. Icebreaker의 남다름
위 이미지는 Icebreaker가 기존의 아웃도어 브랜드와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정의한 키워드입니다. 키워드만 봐도 왜 Icebreaker가 특별한지 알 수 있어요.
제가 읽은 책에서는 Icebreaker를 Brand Driven Innovation, 즉 브랜드가 주도한 혁신 사례로 꼽고 있는데요, 단순히 양모를 사용하는 아웃도어 제품이라는 제품 혁신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존경하고 아끼며, 지켜나가겠다는 브랜드 철학을 중심으로 원료 생산 부터 가공, 공급망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의 혁신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기후위기가 대두되면서, 기업과 브랜드의 ESG, 친환경 및 탄소절감은 필수불가결한 이슈가 되었는데요, 너무나 급작스러운 변화이기에 아직은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이 형식적인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린워싱 Green Washing - 실제로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 사례도 가끔씩 등장하고요.
무려 20여년 전부터 자연을 근간으로, 또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해 온 브랜드 Icebreaker는 진정한 친환경 브랜드로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진출하여 수많은 산악인들에게 좀 더 자연을 생각하는 패션 대안으로 자리잡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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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Icebreaker 공식 웹사이트 : www.icebreaker.com
- [네이버블로그] 아이스브레이커 - 남반구 출신의 아웃도어 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