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브랜드가 치열히 경쟁하는 커피 시장에는 명확한 1인자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Starbucks입니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 수만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카페를 일상의 인프라로 만든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커피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바로 Blue Bottle Coffee입니다.
블루보틀은 매출이나 매장 수로 보면 결코 시장의 1인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초기 블루보틀 로고 디자인>
스타벅스 이후의 커피를 다시 정의하다
블루보틀은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은 당시 커피 시장의 관행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좋은 원두를 사용해도 신선하지 않다면, 그것을 과연 프리미엄 커피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시 미국 커피 시장은 대량 로스팅, 장기 유통, 빠른 추출을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프리먼은 여기에 다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로스팅 후 짧은 시간 내 소비하여 신선도를 유지하고, 바리스타 중심 서비스로 경험을 강화한 것입니다.
즉 커피를 "빠르게 소비되는 음료"가 아니라 "기다릴 가치가 있는 경험"으로 정의한 것이죠.
이 선택은 스타벅스와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스타벅스가 만든 모델이 어디서나 균일한 품질의 커피였다면, 블루보틀은 몰입할 수 있는 커피 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의 상징이 된 브랜딩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을 비교하지만, 사실 블루보틀은 스타벅스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반대의 포지셔닝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가 습관처럼 편하게 방문하는 카페라면, 블루보틀은 일부러 찾아가는 카페입니다.
스타벅스가 일상의 커피라면, 블루보틀은 취향의 커피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블루보틀은 작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 문화에서는 흔히 블루보틀,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Coffee), 스텀프타운(Stumptown Coffee Roasters) 세 브랜드가 함께 언급됩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블루보틀이 특히 널리 알려진 이유는 커피 경험을 하나의 미학으로 정리한 브랜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초기의 커피하우스 중 하나인 The Blue Bottle에서 유래한 브랜드 네임, 이를 형상화한 독특한 심볼, 정제된 매장 디자인, 단순한 메뉴 구조가 결합되어 "좋은 커피 경험"을 브랜드 언어로 만들어냈습니다.
< 정제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블루보틀 매장>
태생적으로 확장이 어려운 브랜드 전략
하지만 블루보틀의 전략에는 분명한 구조적 한계도 존재합니다.
블루보틀이 만든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신선한 원두를 즉석에서 추출
• 바리스타 중심 서비스
• 정제된 공간 경험
이 기준은 커피 경험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확장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신선도는 유통을 제한하고, 장인 중심 서비스는 인건비를 높이며, 경험 중심 매장은 운영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모델은 브랜드 영향력은 높일 수 있지만 대규모 확장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블루보틀의 최근 경영 지표를 보면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에서는 매출이 300억 원을 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1% 미만으로 떨어졌고, 순손실까지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높은 인건비와 직영 매장 구조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 모델 때문입니다. 즉 매장이 늘어날수록 브랜드 경험은 강화되지만 동시에 비용 부담도 빠르게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블루보틀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많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산업의 기준을 제시하고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지만, 시장 규모에서는 대형 체인을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블루보틀과 함께 언급되는 인텔리젠시아나 스텀프타운 역시 글로벌 대형 체인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 블루보틀과 네스프레소 협업으로 출시된 캡슐 커피>
네슬레와 루이싱 커피가 블루보틀을 인수한 각각의 이유
2017년 블루보틀은 네슬레에 인수됩니다. 이후 미국 중심 브랜드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장 수는 약 100여 개 수준으로 폭발적인 성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네슬레의 강점을 살려
- 네스프레소 캡슐 협업
- 원두 판매
- RTD 커피 출시
- 인스턴트 커피 Nola 출시
등 커피 제품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 블루보틀이 새롭게 출시한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NOLA>
최근 중국의 루이싱 커피가 블루보틀의 글로벌 매장 운영권을 약 4억 달러(약 5,800억 원)에 인수했는데요, 이 금액은 국내 커피 브랜드 컴포즈 매각 금액 약 4,700억 원과 비교하면 다소 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루이싱 커피가 인수한 것은 매장 운영권이며, 블루보틀 브랜드 IP는 여전히 네슬레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라이센싱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이는 네슬레가 블루보틀의 가치를 커피 매장 체인보다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로서의 상징성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들이 블루보틀을 인지하는 방식과 네슬레의 판단이 다소 다르다는 것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은 블루보틀을 세련된 공간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커피 브랜드로 기억합니다. 반면 네슬레는 브랜드 자체의 상징성을 더 중요하게 보았고, 루이싱 커피는 블루보틀의 가치가 매장 경험에 있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중국의 스타벅스로 불리우는 루이싱 커피>
루이싱 커피의 블루보틀 인수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에서는 중국 브랜드의 저가·저품질 이미지가 블루보틀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비가 직접 경험해 본 중국 커피 브랜드들의 품질은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가격 대비 품질은 오히려 한국보다 뛰어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다만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맛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 매장보다 한국 블루보틀 매장을 선호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커피의 품질이 단순한 맛이나 신선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장 환경과 브랜드 이미지가 결합된 복합적인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또 만약 블루보틀 매장에서의 경험이 저하된다면 오리지널 블루보틀 브랜드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슬레가 매장 운영권을 매각한 것은 더 이상의 확장과 운영 관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한 계약 조건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슬레의 결정이 실리를 추구한 영리한 선택이 될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부메랑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입니다.
brandB Insight
2인자 브랜딩 전략 그 셋 : 시장을 넓히는 대신 취향을 깊게 만들어라.
블루보틀은 스타벅스를 이기지 못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스타벅스가 만든 커피 기준과 다른 질문을 던진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합니다. 많은 후발주자 브랜드들이 선행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더 높은 품질, 더 프리미엄한 경험, 더 강한 취향을 선택합니다. 이 전략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지만 대중 시장의 1위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즉, 프리미엄 이미지는 얻을 수 있지만 시장 구조 속에서는 계속 2인자의 위치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에서 블루보틀의 전략은 브랜드에게 있어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차별화를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선택 자체가 2인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브랜드는 규모로 시장을 장악하고,
어떤 브랜드는 취향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합니다.
블루보틀은 커피 매장에서는 2인자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소비재 제품 시장에서는 1인자로 도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프리미엄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그 길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향후 매장 운영권 매각 이후 블루보틀의 브랜드 포지셔닝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ps. 이 글은 2인자 브랜딩을 주제로 진행된 브랜드비 스터디 모임에서의 논의 및 인사이트 덕분에 보다 입체적으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스터디에 참여와 도움을 주신 권주희, 조혜흠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