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비가 시작한 시리즈 <2인자 브랜딩 전략>은 규모가 아닌 방향으로 존재를 증명한 브랜드들을 다룹니다.
그 첫 번째 사례는, 위기를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운 현대카드입니다.
사실 현대카드의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고, 첫 리브랜딩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뻔한 이야기’로 들릴까 망설임이 많았어요. 모두가 아는 내용을 ChatGPT가 요약한 글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브랜드비가 과거 재직했던 에이전시에서 현대카드의 다양한 브랜딩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카드 브랜딩을 바라보는 브랜드비만의 관점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브랜드비가 2인자 브랜딩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브랜딩을 여러 관점에서 함께 탐구하고 싶었거든요.
이 글은 그 첫 번째 초안이며, 앞으로 스터디 모임의 의견을 반영해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스터디 모임 참여를 환영합니다! 이메일 contact@brandb.net 으로 신청주세요.)
1. 위기에서 시작된 질문, 우리는 어떤 브랜드인가?
현대카드는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이 다이너스클럽 코리아를 인수하며 탄생했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현대자동차와 동일한 H심볼을 사용하며, 그룹의 후광 아래 '현대차 고객 대상 카드'로 인식되던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출범 직후,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전례 없는 혼란을 맞습니다. 바로 2003년 신용카드 사태죠. 과잉 발급과 연체율 급등으로 시장이 붕괴되며, 카드사 간 경쟁은 단숨에 생존 전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현대카드 역시 막대한 적자와 미미한 점유율 속에 존폐의 기로에 섰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브랜드는 비용 절감과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며 브랜딩과 마케팅을 최소화합니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달랐습니다.
위기 속에서 오히려 현대카드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 정의하기로 한 것이죠.
이 결정이 바로 현대카드 리브랜딩의 시작이었습니다.
2. 네이밍과 로고 디자인으로 선언한 독립, 현대카드의 새로운 정체성
현대카드의 리브랜딩은 언어와 형태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변경이 아니라, 그룹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된 기준으로 서겠다는 선언이었죠.
2-1. 현대차의 카드(Hyundai Card)가 아닌, 현대카드(HyundaiCard) 그 자체
기존 영문 표기는 Hyundai Card, 그룹명과 사업영역이 분리된 형태로 "현대자동차의 카드"라는 의미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리브랜딩을 통해 이를 HyundaiCard로 붙여 표기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단순 디자인을 위한 붙여쓰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맡았던 Total Identity의 기획자 Eli Vlessing은 이 단순한 변화가 리브랜딩의 핵심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띄어쓰기 하나를 없앴을 뿐이지만, 그 변화는 '종속적 존재'에서 '독립적 존재'로의 전환을 상징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카드가 아니라, 하나의 현대카드로 존재한다."
이 작은 변화는 현대카드가 추구한 브랜드 독립성과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후 사업 영역이 확장되며 다시 현대와 카드를 띄어쓰는 것으로 돌아갔지만, 당시의 결정이 없었다면 '독립'이라는 방향성은 훨씬 약해졌을 것입니다.
2-2. 카드에 진심인 회사의 로고 디자인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현대카드의 로고는 카드가 지갑에 꽂혀 있는 모습에서 착안했습니다. 한 사람당 평균 4.6장의 카드를 보유했던 당시, 신용카드 브랜드의 전쟁터는 다름 아닌 지갑 속이었습니다. 현대카드의 새 로고는 바로 그 전쟁터에서 브랜드를 가장 눈에 띄게 만들고, 소비자의 기억에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적 시도였습니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카드사가 그룹사 심볼을 그대로 사용하던 관행을 깨고,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에서 출발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었죠.
또한 로고 옆에 카드 시리즈(M, S, W 등)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일관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브랜드의 구조적 통일성을 강화했습니다.
2-3. 카드를 형상화한 국내 최초의 전용 서체 디자인
현대카드의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는 카드 플레이트의 비율과 각도를 모티브로 제작된 국내 최초 브랜드 전용 서체입니다.
이 이름은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Hyundai를 'Youndai(윤다이)'로 발음하던 데서 착안했습니다. (참고. 프랑스어에서 첫글자 H는 묵음입니다.) 우연히도 You and I라는 의미가 겹치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고객과 기업 간의 신뢰"라는 메시지를 담게 되었죠.
결국 현대카드는 이름과 로고, 그리고 전용 서체를 통해
“우리는 현대자동차의 부속 브랜드가 아니라, 신용카드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브랜드다.”
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완성했습니다.
3. 시장의 판이 바뀌어도, 브랜드로 살아남은 유일한 비금융권 카드사
2003년 당시 신용카드 시장의 주인공은 LG카드(현 신한카드)였습니다. 부동의 1위였으며, 삼성카드와 국민카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당시 현대카드는 순위에도 오르지 못한 신생 카드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태 이후 시장 구조는 완전히 재편됩니다. LG카드는 부실 사태의 중심에서 신한금융으로 흡수되고, 대부분의 카드사가 금융지주 중심 체제로 개편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2023년 대형 금융그룹 계열사들의 이름 속에서 현대카드만이 유일하게 비금융권 출신으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 부문에서는2025년 4월 기준 국내 1위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 내 새로운 리더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3년엔 이름조차 낯설던 브랜드가, 20년 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적의 결과가 아니라, 정체성 기반 브랜딩이 만든 구조적 생존력의 증거입니다.
<드라마틱한 현대카드의 성장 : Image by 동아일보 >
4. 마케팅이 아닌 브랜딩, 정체성에서 비롯된 현대카드의 시너지
현대카드는 마케팅을 단순 홍보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은 "현대카드다움"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프로젝트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브랜드 세계관으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4-1. 알파벳 카드 시리즈
최초의 M카드로부터 시작된 알파벳 시리즈는 혜택이나 등급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선택 기준으로 제품을 정의했습니다. 소비자 역시 카드를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닌,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죠.
4-2.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 컬처 프로젝트
디자인, 뮤직, 쿠킹,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가 공간을 통해 브랜드 철학을 경험으로 전환한 프로젝트입니다.
이후 이어진 컬처 프로젝트(슈퍼콘서트, 언더스테이지 등) 역시 브랜드의 시선과 철학을 경험의 형태로 구체화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한결같이 "어떤 문화를 소비할 것인가"보다 "어떤 기준으로 문화를 경험할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현대카드를 단순 금융 브랜드가 아닌 문화와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4-3. PLCC 전략, 데이터 동맹에서 디자인까지
현대카드의 PLCC전략은 현대카드와 파트너 브랜드 간의 데이터 동맹(Data Alliance)을 기반으로 합니다. 현대카드는 카드 사용 데이터를 통해 얻은 소비 패턴 분석 역량을 파트너 브랜드와 공유하고, 이를 상품·마케팅·고객경험에 반영함으로써 양측 모두의 고객 이해도(Customer Insight)를 높이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여기에 동맹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현대카드만의 플레이트 디자인은 소비자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강력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습니다.
<현대카드의 다양한 PLCC 카드 플레이트>
이 모든 시도는 단순히 멋진 마케팅 사례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대카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대카드다움", 즉 자신의 철학을 전달했고, 그 철학이 곧 브랜드 신뢰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5. brandB Insight
2인자 브랜딩 전략, 그 하나 : 고유한 정체성을 창조하고, 지속적으로 진화하라
현대카드는 한국 금융업에서 드물게 파격적 리브랜딩으로 살아남고 또 성장한 브랜드입니다.
2003년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들은 대기업의 후광 대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한 번의 리브랜딩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시대와 시장의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진화해왔습니다.
현대카드의 로고는 2003년 이후 두 차례 더 변화했으며,
전용 서체 Youandi 또한 Youandi Modern, Youandi New로 발전했습니다.
< 1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Our Typeface >
현대카드는 경쟁자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 위에서 경쟁하지 않고, 새로운 기준을 스스로 정의한 브랜드입니다.
따라가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내며 존재를 증명한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리브랜딩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카드의 브랜딩이 여전히 인용되고, 추종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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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앞으로도 2인장 브랜딩 시리즈는 일정 텀(Term)을 두고 이어질 예정입니다. 함께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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