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말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ESG가 화두로 떠오르고, 그 중에서도 특히 E와 관련한 여러 브랜딩 시도들이 눈에 뜨입니다. 다만 이러한 브랜딩 시도들이 단순히 Eco나 Re, Earth가 들어간 네이밍이나 녹색을 사용한 로고 디자인,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 패키지 디자인에 그치고,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인 경우가 많은데요, 진정한 ESG 브랜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소개드릴 사례는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디자인의 진정한 역할과 효과, 그리고 훌륭한 공공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 되는 나라가 없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분리 수거 품목 구분이 세세하게 이뤄지지 않아 시민들이 애써 분리해서 배출해도 쓰레기 수거 시에는 그냥 마구잡이로 섞어서 담는다고 해요. 분리 수거의 기준 및 방법도 각 지자체별로 달라 시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죠. 누군가가 나서서 기준을 세우고 정리를 해주면 좋으련만,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한지 십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발전이 없는 것을 보면 무언가 꽤 복잡하고 어려운 장애물이 있는가 봅니다.
그런데 약 5년 전인 2017년, 덴마크의 환경식품처와 지자체, 덴마크 폐기물 협회가 모여 폐기물 분류를 위한 방법을 논의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국가적 차원에서 재활용 분류를 위한 90여개의 픽토그램과 디자인 시스템을 개발하게 됩니다. 디자인을 담당한 에이전시는 코펜하겐에 위치한 Futu라는 디자인 회사인데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Ann Thor가 설립했다고 해요. 창업자의 특성 상 브랜드 로고 개발보다는 공간 및 환경 관련 프로젝트 사례가 많아 브랜드비의 디렉토리에는 업데이트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 재활용 픽토그램 개발 프로젝트로 유명세를 탄 회사예요. 프로젝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유명해질 자격이 있어요!
1. 덴마크의 재활용 픽토그램 개발 프로젝트
Futu가 개발한 90여개의 픽토그램 중 일부예요. 얼핏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디자인 시스템이 덴마크 전 지역,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 디자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실제로 국가적, 지역적, 정치적, 기술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고 해요. 2500여 명의 시민, 65개 지방 단체, 폐기물 전문가와 폐기물 회사, 그리고 디자인 회사가 함께 개발을 했는데요, 특히 Futu는 워크샵, 설문 조사, 인터뷰 및 관찰 등을 통해 분류 제품 구분, 픽토그램 이름 지정, 픽토그램 오브젝트의 형태 확정, 그리고 색상 및 세부 사항을 정리했다고 해요. 글만 읽어도 얼마나 골치아픈 일인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또한 픽토그램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인지를 해야 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Futu는 색상, 아이콘, 그리고 텍스트 이 3가지 속성으로 누구나 직관적으로 픽토그램을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색상별로 모아둔 픽토그램을 보면, 색상의 역할을 알 수 있어요. 전기전자 제품은 오렌지 색, 유해물질은 빨간 색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색상은 총 14개인데요, 심리학, 직관적 인지, 실제 색상 표현 등등을 고려하여 선정했다고 합니다. 휴, 색상 지정하는 것만도 결코 쉽지 않았을 꺼예요.
또한 개발된 픽토그램을 기반으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 쓰레기통이나 사인물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특히 구체적으로 사이즈를 표기한 디테일에 주목하세요.
대부분의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겉에 보이지 않게 되어있죠? 그래서 분리수거를 위한 픽토그램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해요. 또 체계적으로 정리된 픽토그램을 통해 별도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쓰레기 분리 수거가 가능하고요. (개인적으로 쓰레기 분리수거 시 품목 구분이 정말 어려웠거든요.)
이 시스템은 2017년 첫 해에 약 10개 지자체에 도입을 했는데요, 2022년 현재, 덴마크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도입을 했다고 합니다. 또, 이웃나라인 스웨덴도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하네요.
짝짝짝!!! 공공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사례예요.
2. 노르웨이의 재활용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덴마크의 훌륭한 사례를 본받아 노르웨이도 후발주자로 재활용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같은 북유럽이라 하더라도, 아무래도 언어/문화적 차이가 있기에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여러 이슈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후발주자인만큼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하되 더 진화발전 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노르웨이의 프로젝트는 노르웨이의 재활용 관련 협회와 비영리 단체가 주관하여, 브랜딩 에이전시인 Heydays와 Goods가 공동 개발했습니다. (Heydays와 Goods는 자매 회사라고 해요. 이런 협업, 칭찬합니다.)
Heydays와 Goods는 덴마크 사례에서 가독성과 가시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덴마크 버전의 문구가 프레임 안에 위치하여 글자의 크기 및 길이의 제한이 있었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문구를 과감히 밖으로 뺐어요. 아마도 언어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Plastemballasje'가 프레임 안에 들어갔다면 크기가 무척 작아지거나 2줄 또는 3줄로 표기해야 했겠죠.
또, 덴마크의 픽토그램은 작은 사이즈로 줄였을 때, 뭉개지고 인지가 잘 안되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르웨이 버전은 작은 사이즈에서도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픽토그램을 최대한 단순화했습니다.
작은 사이즈에서도 선명히 잘 보이죠?
그런데 왜 덴마크는 작은 사이즈를 고려를 안 했을까요? 이는 픽토그램 적용물, 즉 어플리케이션 아이템의 차이에서 발생해요. 덴마크의 시스템은 쓰레기 분리수거 현장에 집중했다면, 노르웨이는 더 나아가 쓰레기로 버려지기 전, 실제 제품에 인쇄되는 재활용 아이콘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예요.
왼쪽이 기존에 쓰이던 재활용 아이콘을 사용한 제품이고, 오른쪽이 새로운 재활용 픽토그램을 적용한 제품이예요. 명확한 차이가 보이시나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픽토그램 시스템을 나란히 비교해봤어요. 디테일의 차이를 볼 수 있어요. 어느 쪽 디자인이 더 우수하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을께요.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환경에서 기본 시스템을 구축한 덴마크 버전의 업적은 절대 경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덴마크의 디자인 덕분에 노르웨이는 엄청난 개발 공수를 줄일 수 있었으니까요.
노르웨이 버전의 개발 목적을 잘 설명하는 문구입니다. 디자인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 볼까요?
깔끔하게 잘 정리된 디자인 시스템이예요. 역시 노르웨이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제품 라벨에 표기된 픽토그램은 사용자가 분리수거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나라에도 꼭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마무리는 노르웨이의 쓰레기통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으로 할께요. 쓰레기통이 주인공인 사진이 멋있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다시 한 번 훌륭한 공공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또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서도요.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수장이 바뀔 때마다 슬로건과 로고를 교체하는데 비용을 쏟는 우리나라 공공디자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예요.
관련 링크
> Futu 의 케이스 스터디 (영문 페이지보다 상세하여, 덴마크어 버전으로 공유드려요. 구글 번역으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