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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니지에 정체성을 담다

프랑스의 일간지 <Le Monde>로 유명한 Le Monde Group이 2020년 새롭게 사옥을 지으면서 함께 사이니지(Signage) 시스템도 구축했어요. 노르웨이의 건축 사무소, Snøhetta ('스뇌헤타'라고 읽는다고 합니다.)에서 건축 설계와 사이니지 디자인을 진행했는데요,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흥미로운 브랜딩 사례라고 생각되어 소개드립니다.




Le Monde Group의 새로운 사옥이예요. 너무 멋진 건물이지만, 건물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는 생략할께요. 우리는 다른 것을 살펴볼 것이거든요.





건물 입구에는 위와 같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어요. 그룹 명칭인 Groupe Le Monde가 크게 써 있고 그 아래에 하위 브랜드들이 적혀 있네요. 여기에서 벌써 디자인 컨셉을 눈치채신 분이 있을 꺼예요.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아래 이미지를 한 번 보세요.




옛날,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조판'이라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여기서 현대 인쇄술의 시초인 '금속활자'가 등장합니다. 금속으로된 알파벳 활자들을 조합하여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드는 것이죠. 실제로 금속활자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요, 크기도 작고 수량도 어마어마 합니다. 또 인쇄용이라 글자의 좌우가 뒤집어져 있어서 이 금속활자들을 조합하는 조판 작업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금속활자의 개념이 바로 Le Monde Group 사옥의 사이니지 시스템 디자인의 컨셉입니다.





Snøhetta는 총 3개 사이즈의 글자들을 만들었어요. 물론 이 글자들은 인쇄용이 아니라서 좌우 반전은 되어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이 글자들을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어요. (금속활자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건물과의 조화 및 생산성을 고려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만들어진 글자들이예요. 인쇄용 활자처럼 글자에 잉크가 발려 있네요! 이 글자들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살펴볼까요?







사이니지를 만들면서 '조판'을 하는 느낌을 간접 체험 해 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왼쪽이 사이니지 디자인 안이고, 오른쪽이 실제 제작된 사이니지예요. 열을 맞춰주는 금속 지지대와 나무로 제작된 글자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명칭이 변경될 경우는 새로 조합하여 끼워 넣으면 된답니다.





졸졸졸 나열된 글자들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그리고 사이니지만 보더라도 이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픽토그램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어요. 페인트칠 된 벽면, 금속 지지대, 나무 사이지니, 이 세 가지 질감의 참 아름다워요. 이러한 소재의 조합을 통해서 만드는 아름다움은 건축 디자인 회사여서 가능한 디자인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새롭게 사옥을 짓는 경우, 별도로 사이니지 시스템 개발을 의뢰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전용서체 적용이나 통일화된 픽토그램 개발 등 그래픽적 요소에서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에 Le Monde Group 처럼 사이니지를 만드는 방법부터 기업의 정체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더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선 공간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고,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다 보니 협업이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공간디자인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사이니지 시스템 개발이 금액도 작고, 그래픽 작업을 위한 디자이너를 고용하기엔 수요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시각디자인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현장에서의 제작과 시공을 컨트롤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결국은 클라이언트의 절대적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특히 금전적으로)가 있어야 훌륭하게 브랜딩된 사이지니 디자인이 탄생한다는 이야기인데요, Le Monde Group 뿐 아니라 또다른 훌륭한 사이니지 시스템 디자인 사례인 아모레퍼시픽 사옥 케이스도 모두 해외 대형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주도하여 사이니지 디자인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습니다.


Le Monde Group 사례를 통해 앞으로 사이니지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좀 더 다양한 디자인 시도가 있었으면 해요. 브랜딩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분야 간의 벽이 높은 것도 사실거든요. 사이니지 디자인을 통해서도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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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A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