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에게 르노라는 브랜드는 르노삼성 자동차로 알려져 있죠. 이제 더 이상 삼성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요.
특히 최근 르노코리아의 국내 판매 실적이 저조한 탓에 르노 브랜드를 접하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환기할 이벤트도 없어, 저의 머리 속에서는 저 멀리 어딘가 묻혀져 있던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최근 르노 그룹의 브랜딩 케이스 스터디를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의외로 본사인 르노 그룹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한 리브랜딩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자칭 '혁명 Revolution'이라고 일컫는 르노 그룹의 "르놀루션"에 대해 함께 알아보아요.
1. 르놀루션(Renaulution)이란?
르노그룹의 수장 Luca De Meo는 2021년 1월 "르놀루션" 계획을 발표합니다. 르놀루션 Renualution은 브랜드 네임인 르노Renualt와 혁명을 뜻하는 단어, Revolution을 결합한 명칭입니다.
이 르놀루션 계획은 르노의 이니셜이자, '다시'를 의미하는 'Re'로 축약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부활 Resurrection, 쇄신 Renovation, 혁명 Revolution 의 세 축으로 구성됩니다.
사실 2021년에 르노 그룹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인 '르노'가 리브랜딩을 했는데요, 이 역시 르노 그룹의 리브랜딩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르놀루션 계획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긴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 '르노' 브랜드는 기존 자동차 산업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거든요.
르놀루션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은 기업 브랜드인 르노 그룹의 리브랜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랑스어로 표기했던 사명을 글로벌을 고려한 영어 표기로 변경하였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전용서체를 적용했어요. 처음 이 새로운 CI는 단순히 로고만 봤을 때는 다소 생뚱맞은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는데요, 브랜딩 에이전시인 4uatre의 케이스 스터디를 읽어보니 르노 그룹의 변화의지를 알 수 있었어요.
르노그룹의 새로운 모노그램 RG는 르노그룹이 추구하는 "혁신의 심장 박동"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컨셉과 연계한 디자인 시스템도 꼭 살펴보세요.)
자, 그럼 르노그룹의 "르놀루션"이 구체적으로 어떤 혁신을 담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기본 청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도표만 봐서는 뭔지 잘 모르겠죠? 우리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이니까, 브랜드를 통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해요.
2. EV & 소프트웨어 브랜드 : Ampere
테슬라의 등장과 성공 이후, 전기차(EV)는 자동차 업계의 필수 불가결한 흐름이 되었죠.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이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차 브랜드를 속속 출시하고 있는데요, 르노의 Ampere(이하 암페어)는 전기차 브랜드라기보다는 전기차 개발 및 SW 시스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동일 브랜드로 전기차가 출시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브랜드 네임인 암페어는 물리 시간에 배웠던 바로 그 암페어입니다. 테슬라와 일맥상통하는 브랜드 네임이네요.
암페어와 관련된 상세 기사 : 르노의 '암페어(Ampere)' 실험을 주목하는 이유 by 오토타임즈
3. 내연 자동차의 하이엔드 브랜드 : Alpine
Alpine(이하 알피느)는 전통의 내연 기관을 이용하는 스포츠카 브랜드입니다. 새로운 기술로 전환을 하면서도 기존 기술에서의 우위성과 프리미엄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죠. F1 팀 브랜드도 르노에서 알피느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브랜드 네임인 알피느는 알프스 산을 뜻하는 동시에 최고, 최정상의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4.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브랜드 : Mobilize
검색해보면 Mobilize(이하 모빌라이즈)를 전기차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는데요, 사실 모빌라이즈는 르노의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통합 브랜드입니다.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 전통적 대리점 판매 방식 외에 '온라인 직접판매' '구독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판매 모델이 등장하고 있고, 전기차의 경우는 필수적으로 충전 서비스가 연동되어야 해요. 이 모든 서비스가 모바일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사실 소비자들은 이러한 디지털 전환에 굉장히 빠르게 적응을 했는데요, 생산자인 자동차 제조사들은 변화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특히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담당했던 서비스라고는 '수리 A/S' 정도였는데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들은 금융, IT, 충전 인프라 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된 것이거든요. 모빌라이즈는 르노 그룹에서 이 새로운 서비스 변화를 이끄는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자동차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 The Future is Neutral
The Future is Neutral은 2022년 10월에 설립된 기업입니다. 처음엔 르노 그룹의 ESG 슬로건인 줄 알았어요. 굉장히 독특한 이름을 가진 기업이죠?
The Future is Neutral은 자동차 산업에서 순환 경제 가치 사슬을 만들기 위한 기업인데요, 자동차 부품 및 원자재 공급에서 재활용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해요. 대표적인 탄소 발생 기계인 자동차 산업이 친환경 산업으로의 변화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차세대 저공해 하이브리드 엔진 브랜드 : Horse
역시 대표적인 탄소 배출 기계인 자동차 엔진을 친환경 및 지속가능한 자동차로의 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하이브리드 엔진 브랜드 Horse(이하 홀스)를 론칭했습니다. 자세한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서도, 하이브리드 기술로 탄소배출량을 줄였다고 합니다. 앞서 설명한 암페어와는 투 트랙 전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랜드 네임인 홀스는 자동차의 마력(Horse Power)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직관적으로 자동차 엔진임을 나타내는 로고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7. 기업의 경영 전략과 발맞춘 브랜딩
위에 소개한 5개의 대표 브랜드들은 르놀루션 청사진 속에 핵심 축으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순히 브랜드만 봤을 때는 여러 개의 새로운 네임과 로고 디자인들로 인해 뭐가 뭔지 잘 구분이 안 갔었는데요, 이렇게 기업 경영 전략 하에 설계된 브랜드의 개별 역할과 함께 보니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아요. 영화 <기생충>의 유명 대사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가 절로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 할 때, 대부분 '무無'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브랜딩의 배경이나 목표, 비즈니스 전략을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고 무조건 "바꿔야 한다" "새로워야 한다"라는 과제만 던져준 채, "알아서 아이디어를 내 보라"는 클라이언트가 태반이었습니다. 영업 비밀 노출을 우려해서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르노 그룹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비즈니스를 경영하고, 이에 맞춰 브랜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MBTI에서 전형적인 T와 J를 갖고 있는 저로서는, 르노 그룹과 같은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훌륭한 브랜딩이란 단순히 브랜딩 에이전시 혼자서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비록 지금 우리나라에서 르노 자동차가 썩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모기업인 르노 그룹의 움직임을 보면 앞으로 충분히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미래는 준비된 자에게 성공을 약속하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