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클럽 브랜드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엠블럼과 유니폼일 것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축구 클럽일수록 엠블럼은 단순한 로고를 넘어 팬들의 자부심과 소속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런데 최근 축구 클럽의 리브랜딩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발견됩니다. 엠블럼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용서체와 다양한 그래픽 요소를 개발하며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전용서체입니다.
축구와 서체는 언뜻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 축구 클럽의 리브랜딩에서 서체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archiveB에서 #축구로 검색해 보면 전용서체를 포함한 리브랜딩 사례가 많으며, 기존 엠블럼을 유지하면서 전용서체와 디자인 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하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축구 클럽들은 왜 전용서체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까요?
최근 리브랜딩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Identity - 엠블럼을 넘어 축구 클럽의 정체성을 표현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축구 클럽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은 엠블럼입니다. 오랜 역사와 팬들의 기억이 축적된 엠블럼은 축구 클럽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엠블럼 하나만으로 브랜드의 모든 정체성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에서 매번 엠블럼을 크게 노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전용서체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이 됩니다. 엠블럼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고유한 글자의 형태를 통해 축구 클럽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ulham FC · AFC Ajax : 축구 클럽의 역사적 자산을 서체로 계승하다
< Fulham FC Typeface by Music / F37 >
2026년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발표한 Fulham FC는 홈구장 Craven Cottage에 남아 있는 오래된 레터링에서 전용서체 개발의 출발점을 찾았습니다.
경기장 벽에 그려진 'Fulham Football Club' 레터링을 바탕으로 FFC Original이라는 전용서체를 개발한 것입니다. 기존 레터링의 불규칙한 형태와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또한 Condensed, Regular, Wide 등 서로 다른 너비의 서체를 개발해 활용 범위를 넓혔습니다.
과거 경기장 벽에 고정되어 있던 글자가 이제는 소셜미디어와 영상, 광고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축구 클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 자산이 된 것입니다.
<AFC Ajax Typeface by Smorgasbord/CoType>
네덜란드의 AFC Ajax 역시 역사적 자산을 전용서체로 발전시킨 사례입니다.
AFC Ajax는 과거의 클래식 엠블럼을 다시 도입하면서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JAX Headline이라는 전용서체를 개발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서체의 디자인 출발점이 클래식 엠블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엠블럼에 사용된 글자의 기하학적 형태와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다양한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는 서체로 확장했습니다. 세 가지 너비와 다섯 가지 굵기로 총 15개의 스타일을 개발해 활용 범위도 넓혔습니다.
Fulham FC가 경기장의 역사적 레터링을 새로운 브랜드 자산으로 발전시켰다면,
AFC Ajax는 엠블럼의 조형적 특징을 전체 디자인 시스템으로 확장했습니다.
두 축구 클럽 모두 오랫동안 축적해 온 역사적 자산을 현대적인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용서체를 통해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FC København · New York City FC : 도시의 정체성을 서체에 담다
전용서체의 영감을 반드시 축구 클럽 내부에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축구 클럽이 속한 도시와 지역사회 역시 중요한 디자인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축구 클럽에게 지역성(Locality)은 팬들의 소속감을 높이고 지역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중요한 브랜드 전략입니다.
< FC København Typeface by Kontrapunkt >
덴마크의 FC København은 코펜하겐의 도시 환경에서 전용서체의 영감을 찾았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리의 사인과 간판, 공공시설의 타이포그래피를 참고해 축구 클럽만의 시각적 언어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축구 클럽의 정체성을 경기장 밖 도시의 일상과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 NewYorkCity FC Typeface by Gretel / Frere-Jones>
New York City FC 역시 뉴욕의 거리에서 전용서체의 출발점을 찾았습니다. 도시의 사인과 건축물, 다양한 레터링을 참고해 뉴욕 특유의 도시적 분위기를 반영했습니다. 축구 클럽의 이름을 표현하는 서체를 넘어 뉴욕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함께 전달하는 브랜드 자산으로 개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도시의 이미지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시각적 언어를 활용함으로써 축구 클럽과 도시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팬들이 축구 클럽을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일부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가 축구에 관심이 없던 지역 주민들에게도 축구 클럽을 친숙한 존재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서체만으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문화와 연계된 다양한 활동과 콘텐츠에 활용된다면 관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축구 클럽은 글로벌 팬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강화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더라도 지역적 뿌리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Fulham FC와 AFC Ajax가 축구 클럽 내부에 축적된 역사적 자산을 활용했다면,
FC København과 New York City FC는 도시와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시각적 자산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용서체는 축구 클럽의 역사를 계승하는 수단인 동시에, 축구 클럽과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2. Optimization -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하다
전용서체가 필요한 이유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브랜드가 사용되는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능적 목적도 중요합니다.
특히 축구 클럽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빠르게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기장과 인쇄물, TV 방송이 주요 접점이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축구 클럽의 소식을 접하는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서체에도 새로운 요구를 만들어냈습니다. 작은 화면에서도 명확하게 읽혀야 하고,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과 콘텐츠 형식에도 유연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Liverpool FC : 작은 화면에서도 명확하게 읽히는 서체
< Liverpool FC Typeface by Bulletproof / Monolith >
Liverpool FC는 전용서체를 개발하면서 흥미로운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공식 웹사이트 Liverpoolfc.com 방문자의 86% 이상, 공식 소셜 채널 이용자의 98%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접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서체의 가독성과 식별력이 중요해집니다. 특히 작은 화면에서는 복잡한 글자 형태나 지나치게 가는 획이 메시지 전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읽기 쉬운 서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스포츠 콘텐츠 사이에서 Liverpool FC만의 고유한 정체성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Liverpool FC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에서도 명확하게 읽히면서 축구 클럽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전용서체를 개발했습니다.
이 사례는 전용서체 개발이 단순한 시각적 차별화를 넘어 가독성과 브랜드 식별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사용자 경험의 개선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Tottenham Hotspur :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다
< Tottenham Hotspur Typeface by Nomad / F37 >
Tottenham Hotspur는 2024년 리브랜딩을 통해 기존의 전용서체를 확장했습니다.
약 20년간 사용해 온 TH Caps를 새로운 서체 패밀리로 발전시켰으며,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가변형 서체(Variable Font)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입니다.
가변형 서체는 굵기나 너비 등의 속성을 연속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서체입니다. 여러 스타일의 폰트를 각각 사용하는 대신 하나의 폰트 안에서 다양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어 디지털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Tottenham Hotspur는 기존 전용서체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확장했습니다.
Liverpool FC가 작은 화면에서의 가독성과 식별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Tottenham Hotspur는 가변형 서체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확장성을 확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축구 클럽의 사례는 디지털 환경에서 전용서체가 갖춰야 할 조건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보기 좋은 서체를 넘어, 사용되는 환경에 따라 명확하게 읽히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Expression - 다양해진 콘텐츠를 표현하다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축구 클럽이 생산하는 콘텐츠 자체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경기 일정과 결과, 선수 관련 소식이 주요 콘텐츠였다면 이제는 선수 인터뷰와 훈련 영상, 팬 커뮤니티, 지역사회 활동, 패션과 음악을 비롯한 문화적 협업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콘텐츠를 모두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Chelsea FC : 하나의 브랜드, 다양한 서체의 표현력
< Chelsea FC Typeface by Uncommon / F37 >
Chelsea FC는 2024년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선보였습니다. 기존 엠블럼을 유지하면서 보다 강렬하고 현대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하나의 서체가 아니라 다양한 서체 패밀리를 개발했다는 점입니다.
CFC Sharp, CFC Serif, CFC Flared, CFC Sans 등 서로 다른 디자인적 특징을 가진 서체를 통해 콘텐츠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경기 결과를 알리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와 선수 인터뷰, 팬들을 위한 캠페인, 패션 협업 콘텐츠는 각각 다른 분위기를 요구합니다.
이때 다양한 전용서체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콘텐츠의 성격에 맞는 시각적 표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물론 하나의 서체 패밀리만으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Chelsea FC는 서로 다른 조형적 특징을 가진 서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함으로써 표현의 폭을 더욱 넓혔습니다.
이는 축구 클럽이 단순한 스포츠 조직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 브랜드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4. Cultivation - 서체로 브랜드 문화를 만들어가다
앞선 사례들은 전용서체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표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Arsenal FC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단순히 다양한 서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클럽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브랜드 문화와 활동 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서체를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Arsenal FC : 세 가지 역할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부여하다
Arsenal FC는 브랜드 전략을 재정립하면서 축구 클럽의 활동을 Team, Community, Culture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습니다.
Team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축구를, Community는 팬들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Culture는 축구가 패션과 음악, 예술 등 다른 문화와 만나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Arsenal FC는 이 세 영역에 각각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경기장에서 골이 터지는 순간의 열광적인 메시지와 팬들에게 전달하는 일상적인 소식,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소개하는 메시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 David Rudnick과 함께 세 가지 전용서체를 개발했습니다.
2022년 Northbank, 2023년 Chapman을 차례로 선보였고, 2026년 Rocastle을 공개하며 약 4년 반에 걸친 프로젝트를 완성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세 서체가 독립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Northbank : 경기장의 열정과 에너지를 표현하다
< Arsenal FC Typeface I by David Rudnick >
2022년 공개된 Northbank는 경기와 선수, 팬들의 열정을 표현하는 Team 영역의 서체입니다.
굵고 강렬한 산세리프 형태가 특징이며, 과거 Arsenal FC의 홈구장이었던 Highbury Stadium의 사인과 레터링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골이 터지는 순간이나 선수의 이름을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전달해야 합니다. Northbank는 이러한 목적에 맞춰 개발되었습니다.
특히 대문자 중심의 강렬한 표현은 경기장의 전광판과 영상, 응원 메시지 등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Northbank는 축구 클럽의 역사적 시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Arsenal FC만의 정체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Chapman : 팬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이어가다
< Arsenal FC Typeface II by David Rudnick >
2023년 공개된 Chapman은 Northbank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Northbank가 경기장의 열광적인 순간을 위한 서체라면, Chapman은 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Community 영역의 서체입니다.
휴머니스트 산세리프(Humanist Sans-serif)로 디자인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인상을 전달합니다.
경기 프로그램을 읽거나 선수 인터뷰를 접하는 순간처럼 팬들이 축구 클럽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상황을 고려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서체를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에서는 헤드라인과 본문, 강조 문구 등 정보의 위계에 따라 서로 다른 서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Arsenal FC는 단순히 글자의 크기나 용도가 아니라 축구 클럽이 수행하는 역할과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에 따라 서체를 구분했습니다.
Northbank가 팬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목소리라면, Chapman은 팬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Rocastle : 축구를 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다
< Arsenal FC Typeface III by David Rudnick >
2026년 공개된 Rocastle은 Arsenal FC의 세 번째 전용서체이자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의 마지막 구성 요소입니다.
앞선 두 서체와 달리 블랙레터(Blackletter)를 기반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블랙레터는 중세 유럽의 필사본과 인쇄물에서 발전한 서체 양식으로, 전통적이고 장식적인 인상이 강합니다. Rocastle은 이러한 역사적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Arsenal FC만의 독특한 시각적 정체성을 구현했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는 과거 축구 클럽의 엠블럼과 시즌 티켓, 경기 프로그램, 팬들이 보관해 온 기념품 등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특히 Arsenal FC의 과거 엠블럼에 사용되었던 고딕 레터링은 중요한 디자인 자산이 되었습니다.
서체의 이름에도 축구 클럽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Rocastle은 Arsenal FC의 전설적인 선수 David Rocastle의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팬들에게 Rocky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축구 클럽에 대한 헌신과 팬들과의 유대감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Rocastle은 세 가지 굵기로 개발되었으며, 함께 공개된 독립적인 A 심볼인 The Capital 역시 축구 클럽의 역사적 레터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Rocastle은 일상적인 경기 안내나 정보 전달을 위한 서체가 아닙니다. 패션, 음악, 예술 등 Arsenal FC가 문화적 영역에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특별한 목소리입니다.
Arsenal FC 역시 Rocastle을 모든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특별한 순간에 선택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합니다.
세 가지 서체, 하나의 브랜드 문화를 만들다
Arsenal FC의 세 가지 서체를 살펴보면 디자인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 서체가 브랜드의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 Northbank - Team - 경기장의 열정과 에너지
- Chapman - Community - 팬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 Rocastle - Culture -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확장
세 서체는 시각적으로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Rocastle은 기존의 두 산세리프 서체와 전혀 다른 인상을 전달합니다.
일반적인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의 관점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선택입니다. 브랜드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전용서체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rsenal FC는 하나의 서체로 모든 메시지를 표현하기보다, 브랜드가 가진 다양한 역할에 맞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브랜드의 일관성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Arsenal FC라는 하나의 정체성 아래에서 경기장의 열정과 팬들과의 관계, 문화적 활동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를 Cultivation으로 분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브랜드 문화는 로고나 슬로건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면서 형성됩니다. Arsenal FC는 세 가지 서체를 통해 각각의 활동에 고유한 개성을 부여하면서도, 하나의 브랜드로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서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용 목적과 기준이 불명확하다면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이 오히려 분산될 수 있습니다.
Arsenal FC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세 가지 서체를 개발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각각의 서체가 필요한 이유를 브랜드 전략에서 찾았다는 데 있습니다.
전용서체가 브랜드를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브랜드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브랜드의 목소리는 하나여야 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축구 클럽이 전용서체를 개발하는 목적이 단순히 디자인의 차별화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Identity, Optimization, Expression, Cultivation.
축구 클럽의 역사와 지역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며, 다양해진 콘텐츠에 적합한 시각적 언어를 구축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브랜드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이 네 가지 목적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전용서체가 여러 목적을 동시에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축구 클럽에서 전용서체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축구 클럽은 오랜 역사와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모바일을 중심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스포츠를 넘어 문화와 커뮤니티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즉, 전용서체가 제공할 수 있는 네 가지 가치를 모두 필요로 하는 브랜드인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을 개발할 때 우리는 흔히 일관성을 강조합니다. 동일한 로고와 컬러, 서체를 사용해 어디에서나 같은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직접 생산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접근에도 변화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와 기업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콘텐츠, 소비자와 가볍게 소통하는 콘텐츠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콘텐츠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Arsenal FC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하나의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습니다.
서체의 종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수행하는 역할과 만들어가고자 하는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적 언어를 구축한 것입니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세 가지 전용서체를 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의 서체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며, 여러 서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관리 체계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체의 개수가 아니라 브랜드가 어떤 정체성을 유지하고, 어떤 콘텐츠를 생산하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브랜드의 일관성은 모든 콘텐츠를 똑같이 보이게 만드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하더라도 하나의 브랜드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콘텐츠 시대의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이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