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는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숫자들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어요. 이번 글에서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숫자 브랜딩 사례를 살펴볼께요.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다시피, 저는 직업병으로 독특한 브랜드 네임을 보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함을 참지 못해요.
특히 낯선 숫자들은 “왜 이 숫자를 사용했을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죠. 아마도 저와 같은 호기심이 가득한 분들은 이번 글을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1. 퍼센티지에 의미를 담았어요
<이프로 부족할 때 1999년 런칭 시 패키지 디자인 및 광고>
사실 에디터의 연식이 드러나기에 숨기고 싶었지만,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전설적인 숫자 브랜딩 사례이기에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런칭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2프로 부족해”라는 일상 관용어를 탄생시킨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네임은 몸의 수분이 2% 부족할 때 갈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개발되었다고 해요.
다만 브랜드 네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포카리스웨트와 같은 이온 음료라고 오해를 하는데요, 전혀 다른 제품인 미과즙음료입니다. 향이 있는 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가까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하는 네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전국민적 인지도와 차별화를 구축한 브랜드이기에 감히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보았습니다.
The Hidden 20%는 ADHD, 자폐증, 난산증, 난독증, 실행장애, 투렛증 등 신경분열증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선 브랜드입니다.
몰랐는데 이 신경분열증 환자가 무려 전세계 인구의 20%라고 해요.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신경분열증을 갖고 있는 셈이니, 우리 주변에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화된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신경분열증 환자는 무조건 기피하고 배척하기 보다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임을 깨닫게 하는 브랜드 네임입니다.
에잇퍼센트는 우리나라의 P2P 금융 스타트업입니다. 8퍼센트는 중금리 대출을 상징하는 숫자로, 은행의 저금리 상품과 대부업의 고금리 상품의 중간을 제공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사람에게는 숫자를 읽는 법이 다양할 수 있어 “팔퍼센트” “팔프로”로 커뮤니케이션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리브랜딩의 배경 역시 커뮤니케이션 명칭을 “에잇퍼센트”로 통합하자는 의도가 다분했는데요, 숫자로 표현된 로고만으로 이를 해소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앞서 소개한 2프로도 제품명에 한글 발음을 직접 표기하고, 대대적 TV광고를 집행했기에 일원화된 소통이 가능한 것이거든요. 또 아래에 소개할 동종업계 숫자 브랜딩이 대부분 한글 중심으로 네임을 읽는 경향이 있어서 혼선이 가중되지 않나 싶습니다.
2. 너와 나의 거리는 몇 cm인가요?
29cm은 우리나라 대표 패션 커머스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잡았죠. 29cm에 따르면 브랜드 네임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설렘을 주는 거리”라고 합니다. 다만 이 수치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어요. 창업자의 의도를 담은 의미부여라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옛날 사람으로서는 이 브랜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되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센티, 센치, 센티미터, 센치미터 모두 혼용해서 사용하는 사람이거든요.
공식 표기법이 있을까요? 아니면 단골 고객만의 소통법이 있을까요?
원래 46cm는 LG생활건강 치약 브랜드 페리오의 구취케어 라인 제품명이었어요. 이 때 설명 문구는 “숨결이 닿는 거리 46cm”였죠. 그렇데 최근 구취케어를 넘어 체취케어 브랜드로 제품을 확장하면서 “향기가 닿는 거리 46cm”로 새롭게 런칭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29cm와는 달리 이 수치는 근거가 있는데요, 46cm는 에드워드 홀의 개인적 공간 이론에서 친밀함의 거리인 1.5피트(약 46cm)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다만 정말 향기가 46cm까지만 닿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네요.
여기서 잠깐 질문, 여러분은 어느 정도 거리를 선호하시나요? 설레임과 친밀함, 그리고 선을 긋는 거리의 기준은 얼마일까요?
3. 골치아픈 세무 업무에는 이 숫자만 기억하세요
이 숫자는 프리랜서 및 알바생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합니다. 특히 “삼쩜삼 프로 떼고”라는 표현으로 자주 듣고, 사용하고 있죠. 3.3%는 우리나라의 종합소득세 원천징수율을 의미하며, 개인 대상 세무회계 서비스 플랫폼인 삼쩜삼이 이 숫자를 브랜드 네임으로 사용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기존 개인 세무 서비스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기에 삼쩜삼 서비스는 론칭과 함께 폭발적 반응을 불러 일으켰어요. 그런데 최근 국세청이 클릭 한 번으로 최대 5년치 종합소득세를 무료로 환급받을 수 있는 ‘원클릭’ 서비스를 출시해서 삼쩜삼 서비스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 국세청 무료 종합소득세 ‘환급서비스’ 인기에... 세무 플랫폼 ‘삼쩜삼’ 고사 위기 by 조선비즈)
삼쩜삼은 글로벌 진출을 통해 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고 하는데요, 글로벌 진출 시 어떤 네임을 가져갈지 궁금해집니다.
쌤157은 인공지능 세금 신고 서비스입니다. 기존 SSEM에서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브랜드 네임을 변경했는데요, 숫자 157에는 개인사업자들이 세금신고 기간인 1월, 5월, 7월에 가장 먼저 찾는 서비스가 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고 합니다.
쌤157역시 국세청 무료 서비스 출시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리브랜딩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아요.
4. 같은 숫자이지만, 다른 전문성을 담았어요
ElevenLabs는 음성 합성 스타트업입니다. (참고로 TwelveLabs는 한국계 영상 AI 스타트업입니다.)
그런데 숫자 11과 음성 합성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이 숫자 11은 1984년도 영화 This Is Spinal Tap의 “앰프를 10에서 11까지 올릴 수 있다”라는 농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원래 옛날 앰프는 다이얼 식으로 되어있고, 최대 수치는 10이었거든요! 그래서 기존 한계를 넘어 최고의 기술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비프로일레븐은 한국계 스포츠테크 스타트업의 AI기반 축구 경기 분석 소프트웨어입니다.
여기서 숫자 11은 축구팀 주전 선수를 의미하며, 아마추어도 프로처럼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5. 숫자는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220코드앤코드는 LG CNS에서 운영하는 가전 커뮤니티 브랜드입니다.
모두가 유추하시다시피 대한민국 표준 전압 220V에서 네임을 따왔어요. 거기에 취향(Code)을 연결(Cord)한다는 의미를 더했죠.
다만 표준 전압은 국가에 따라 다르기에 글로벌 진출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네요.
그라운드220은 LG전자의 Z세대를 위한 체험 공간 브랜드입니다.
220 코드앤코드에 이어 220을 LG의 브랜드화하겠다는 전략이 엿보입니다.
다만 서로 연계되지 않은 로고 디자인으로는 LG를 바로 연상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 아쉬워요.
6. 당신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삼성물산의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는 “8초 안에 소비자를 매료시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초기에는 중국 시장을 주요 타겟으로 했기에, 브랜드비가 이전 글에서 다뤘던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8을 적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8초”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은 수치입니다. 각종 마케팅 서적에서 5초, 8초, 15초, 30초 등 온갖 시간이 나열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20 minutes는 프랑스의 무료 일간 신문입니다. 프랑스어로는 방(Vingt) 미니트 라고 읽는다고 해요. 브랜드 네임은 짧은 시간을 상징하며, 출근하면서 가볍게 살펴 볼 수 있는 신문임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출근에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부럽군요!)
최근 전세계적으로도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데요, 이에 따라 20 Minutes도 디지털 전환을 위한 리브랜딩을 단행했습니다.
7. 숫자 브랜딩에는 수학과 물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2.4.8. 이 숫자들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구구단을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실텐데요, 수학 애호가들은 바로 지수함수(Exponential Sequence)를 떠올릴 것입니다. 즉, 2의 1승, 2의 2승, 2의 3승이 되는 것이죠. 초기에는 미미해보이지만 갈수록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함수입니다. 어때요? 투자자들이 좋아할만 하죠?
9.81파크는 제주도에 위치한 무동력 레이싱 테마파크입니다.
처음 네임을 보았을 때 '왠지 익숙한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설명을 보고 약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물리 시간에 종종 접했던 숫자임을 새삼 깨달았죠.
네, 바로 “중력가속도 g=9.81m/s²”을 뜻하는 네임인 것입니다. 무동력 레이싱이 경사를 이용해 중력으로만 속도를 내는 원리기에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숫자 브랜딩은 이과 출신 네이미스트에게 유리할 수 있어요. 다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이도는 피해주세요.
8. 온도와 각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최근 리뉴얼한 화장품 브랜드 숨37은 넘쳐나는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도 “발효”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했죠.
숫자 37은 온도 37°로서, 체온과 동일한 발효 최적 온도를 의미합니다.
46Graus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46°예요. Graus가 포르투갈어로 Degrees를 뜻하거든요. 이 Degrees는 앞서 설명한 숨37처럼 온도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각도를 뜻하기도 해요.
46 Graus는 사진 및 영상 포트폴리오 플랫폼인데요, 이 46도는 사진을 위한 최적의 시각적 스토리텔링 각도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진에 정통하지 않지만, 추측해보건대 46도 역시 29cm처럼 창립자가 정의한 임의의 숫자가 아닐까 싶어요. 30cm에서 1cm를 뺀 것처럼 45도에서 1도를 더한 것이 아닐까요?
9. 자의적 의미 부여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요? 왜 하필 이 숫자를 선택해야 할까요?
한우 전문점, 창고 43은 처음 설립 시 전국에 43호점까지 내겠다는 의도에서 43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왜 하필 43개였을까요? 궁금하지만 알 수 없네요.
다른 썰로는 무쇠 불판이 4.3kg 이다, 불판 무게가 4kg이고 3가지 맛을 뜻한다 등등이 있는 것 같아요.
BHC의 다이닝그룹이 인수한 후 최근 리뉴얼을 통해 "4계절, 3미(味)"라는 의미부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닥터19은 ‘조선미녀’의 구다이글로벌이 론칭한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입니다. 숫자 19는 19명의 전문의 자문단을 뜻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왜 하필 19명일까요? 통계를 내기에도 애매한 숫자인데 말이죠. 또 자문단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요?
또, "19금"을 연상하는 저는 음란마귀에 씌인 것일까요? 부디 이 네이미스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세요.
이상으로 각각의 스토리를 담은 다양한 브랜드를 살펴봤는데요, 납득이 가고 공감되는 스토리가 있는 반면, 물음표가 계속 이어지는 설명도 있었어요.
어떤 분들은 ‘스토리 따윈 상관없다, 독특하고 부르기 편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브랜드의 로열티가 축적되기 전, 브랜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의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되니까요.
독특한 숫자로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의미를 찾아보게 하여 관계를 맺어가는 전략으로서, 숫자 브랜딩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다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만이 차별화된 한끗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 숫자 브랜딩 사례를 살펴보려면 : 브랜드비 검색창에서 #숫자 를 검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