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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은 있어 보이는 포장을 만드는 일일까?

저는 수십 년간 브랜딩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의 문장으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브랜딩은 무엇을 하는 일일까?


공식적으로는 브랜딩이란 브랜드의 본질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종종 부실한 알맹이를 숨기고 포장하는 역할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제가 직접 겪은 한 공유오피스 경험 이후로, 브랜딩과 그 역할에 대해 더욱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철학을 지닌 예쁜 공간, 하지만 경험은 같지 않았다


그 공유오피스는 처음엔 인상이 정말 좋았습니다.


소상공인과 크리에이터를 응원한다는 철학을 이야기했고, 공간 디자인도 감각적이었습니다. 특히 공간 곳곳에 부착된 디자인된 포스터들을 보았을 때, 브랜딩 업계에서 오래 일해온 저에게는 무척 편안한 느낌을 주었죠. (네, 저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치열한 브랜딩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협업과 공유오피스에 관심이 많아서 메이저 공유오피스는 대부분 이용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된 인쇄물을 사용하는 공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잘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용해 보니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쁘고 감각적인 공간이었지만, 실제 사용 경험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다양한 사람의 키를 고려하지 않은 가구,

팔이 닿는 거리를 고려하지 않아 한 번 열면 닫을 수 없는 창문,

소음을 차단하기는커녕 더 울리게 만드는 공간 구조.

정말 보기에만 좋은 공간 디자인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문제는 관리와 운영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그 공간은 '관리되는 공간'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매번 사무실을 옮겨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고, 번거로움 때문에 그 생각을 접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최악의 경험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이메일로 통보받은 것입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을 주며 자리 이동을 하거나 다른 지점으로 옮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명을 위해 대면 미팅을 진행하겠다고 되어 있었지만, 저에게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뒤늦게 확인해 보니 상담을 진행했던 다른 이용자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미팅에서 안내받았던 대안 약속조차 나중에 번복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실 통보를 받은 우리 모두는 소상공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브랜드는 원래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


처음에는 디자인도 좋고 브랜드 철학도 좋아서 호감을 가졌던 곳이었지만, 이 경험 이후에는 오히려 더 강한 실망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랜딩이 좋을수록 실망도 커지는 아이러니


브랜딩은 기대를 만듭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은 "이것은 믿을 만한 브랜드일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고,

철학을 담은 메시지는 "이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브랜드일 것"이라는 공감을 만듭니다.


하지만 실제 경험이 그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단순한 실망에 그치지 않습니다.

속았다고 느끼게 되고, 때로는 분노하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브랜딩이 강한 브랜드일수록 경험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더 큰 배신감으로 남습니다.

어쩌면 그 공유오피스가 평범한 브랜딩을 했다면, 저 역시 이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험 이후 저는 브랜딩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딩 에이전시는 보통 브랜드 전략을 포함해 네이밍, 디자인과 같은 영역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실제 브랜드 경험을 결정하는 것은 운영 방식, 고객 응대, 조직 문화입니다.

즉 브랜드 경험의 상당 부분은 브랜딩 전문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브랜딩이

어쩌면 부실한 알맹이를 숨기는 허울 좋은 포장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브랜딩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브랜딩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브랜딩은 없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이어야 합니다.


브랜딩 전문가들은 브랜드의 장점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며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세련, 고급, 감도 높은, 혁신, 차별화와 같은 듣기 좋은 말들이 실체 없는 주장에 불과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과 예쁜 포장의 경계는 무엇으로 구분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저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세 가지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진솔한 파트너십입니다.


외부 전문가로서 때로는 브랜드의 진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단점은 숨기고 장점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래의 모습보다 더 좋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진솔한 파트너십 없이는 좋은 브랜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브랜딩 프로젝트에서는 수많은 인터뷰와 내부 워크숍, 미팅을 반복합니다.

브랜드가 말하는 이야기와 실제 모습이 어긋나지 않도록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핵심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입니다.


브랜딩은 브랜드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특징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네이밍, 메시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태로 번역됩니다.

세련, 고급, 감도 높은, 혁신, 차별화 같은 말들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 가치에 기반하지 않으면 쉽게 공허한 메시지가 됩니다.

반대로 핵심 가치가 명확할 때 브랜딩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세 번째는 경험을 기준으로 메시지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결국 운영과 행동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브랜딩을 할 때 우리는 단순히 메시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메시지가 실제 경험 속에서 지켜질 수 있는 이야기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완벽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브랜딩은 부족한 상태에서 고민하게 되죠.

그래서 브랜딩은 현재를 미화하고 허황된 미래를 그려주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안내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부족함을 감추는 대신, 그 안에서 공감 가능한 목적과 실현 가능한 기준을 세우는 것.

그 기준이 쌓이면서 브랜드는 점차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결국 자신이 그리고 있던 이상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결국 브랜딩의 핵심은 브랜드를 있어 보이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고, 그 가치를 설득하는 일입니다.


잊지 마세요.

브랜드의 가치가 실제 경험과 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더 강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좋은 경험이 아니라 나쁜 경험으로 말입니다.


2026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