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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에이전시는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약 5년 전에 진행했던 브랜딩 프로젝트의 후속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싶다는 문의였습니다.

문의하신 분은 저희 브랜드비가 아닌 다른 브랜딩 에이전시를 찾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검색을 해도 해당 에이전시의 정보가 나오지 않았고, 저희 사이트의 Agency Directory를 통해 브랜드비까지 연락이 닿은 것이었어요.


브랜드비를 막 시작했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유명 에이전시들을 우선 등록해두었습니다. 그 곳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에는 웹사이트도 운영 중이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업데이트가 뜸하다 싶었는데 어느새인가 사업을 종료한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수소문해 그 에이전시가 실제로 사업을 종료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후 문의하신 클라이언트에게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동종업계 에이전시의 폐업 사실을 대신 전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이렇게 사라져간 에이전시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한두 곳이 아닙니다. 한때는 내노라하던 브랜딩 에이전시 중 하나였지만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웹사이트마저 접속되지 않는 모습을 보는 일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 기억 속에서도 "맞아, 한때 그런 회사도 있었지." 정도로만 남게 되었고, 그들이 남긴 포트폴리오 역시 함께 잊혀지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브랜딩 일을 해오면서 제 커리어에 있어 핵심 미션은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늘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브랜딩 에이전시는 오래 살아남을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왜 정작 자신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할까?






창업자의 커리어 수명을 따라가는 에이전시의 수명


브랜딩 에이전시, 특히 디자인 에이전시는 오랫동안 창업자의 개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성장해왔습니다.

클라이언트는 회사보다 창업자인 디자이너 개인을 보고 일을 맡겼습니다. 창업자의 철학과 디자인 감각, 업계에서의 명성이 곧 에이전시의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에이전시들이 창업자의 이름을 그대로 회사명으로 사용하거나, 창업자 개인을 회사의 정체성이자 상징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회사와 창업자를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창업자가 은퇴하거나, 회사를 떠나거나, 혹은 세상을 떠나면 조직의 정체성도 함께 흔들립니다. 영업도, 평판도, 디자인 철학도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은 브랜딩 에이전시의 수명은 기업의 생애주기라고 하기보다 창업자의 커리어 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살아 남은 에이전시는 무엇이 달랐을까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Landor, Wolff Olins, Siegel+Gale, Peter Schmidt Group, Bruce Mau Design과 같은 에이전시들은 창업자의 이름과 영향력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보다 조직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오래된 회사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첫째, 개인의 디자인 스타일보다 에이전시만의 철학과 방법론을 구축했습니다.

특정 디자이너가 아니라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Wolff Olins는 조직의 철학을 브랜드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Bruce Mau Design 역시 창업자가 회사를 떠난 이후 조직을 다시 재정비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여러 파트너가 함께 회사를 이끄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Pentagram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리더십을 한 사람이나 소수의 핵심 인물에게 의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파트너를 육성하며 세대교체를 이어가고 있죠. Chermayeff & Geismar & Haviv 역시 파트너십 구조를 성공적으로 이어온 사례입니다.


셋째, 에이전시 역시 하나의 브랜드라는 관점에서 꾸준히 브랜딩을 해왔습니다.

프로젝트 결과물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책을 출간하고, 강연과 전시를 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자신들만의 철학을 지속적으로 발신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최신 포트폴리오를 보지 않고도 에이전시의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클라이언트 역시 특정 디자이너가 아니라 에이전시 자체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이름이 곧 품질을 보증하는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Landor에 월터 랜도(Walter Landor, 1913~1995)가 없고, Peter Schmidt Group에 피터 슈미트(Peter Schmidt, 1937~2025)가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 역시 하나의 브랜드처럼 운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금 탄탄하고 잘 나가는 조직이라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 환경이 갑자기 바뀔 수도 있고, 인수합병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조직으로 재편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를 오래 운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브랜딩 에이전시에게는 또 하나의 지속가능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기록의 지속가능성입니다.






회사보다 오래 남는 것은 기록이다


에이전시가 문을 닫는 것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기록까지 함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웹사이트가 폐쇄되고, 프로젝트 페이지가 삭제되고, 사진과 데이터가 유실되면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포트폴리오와 크레딧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 이후에는 누구도 진실을 검증하기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는 "그 브랜드는 내가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브랜딩을 내가 주도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고 검증할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프로젝트를 증명해 줄 주체와 공식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브랜딩 업계에서 경력을 과장하거나 타인의 프로젝트를 자신의 성과처럼 이야기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라지는 것은 회사만이 아니라 브랜딩의 역사와 그들이 축적해온 지식입니다.






기록도 브랜드 자산처럼 관리해야 한다


브랜딩 에이전시는 로고와 디자인 시스템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작업 기록 역시 중요한 브랜드 자산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결과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크레딧을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해 남기고, 원본 데이터를 보관해야 합니다. 디자인 과정과 프로젝트 스토리를 문서화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무비랜드의 대표 모춘 님은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개업한 순간부터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즉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음."

@ 모춘 님 인스타그램에서 발췌


무비랜드가 언젠가 문을 닫더라도 그 흔적만큼은 남기고 싶어 회사의 탄생부터 운영의 매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무비랜드는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고, 그 기록들은 <무비랜드 메이킹북>으로 이어졌습니다.


<무비랜드 메이킹 북 © 무비랜드>




펜타그램 50주년 기념 책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인상 깊었습니다. 두꺼운 책의 마지막에는 50년 동안 펜타그램을 거쳐 간 모든 구성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유명한 파트너 디자이너들 뿐 아니라 회사를 함께 만들어온 모든 사람을 역사 속에 남긴 것입니다.


> Pentagram 50주년 기념 책 <Pentagram : Living by Design> 브랜드비의 리뷰 읽어보기


< 50년 간 펜타그램의 모든 구성원의 이름을 기록한 페이지 © Pentagram : Living by Design >






기록은 공유될 때 역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자사 웹사이트나 출간물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웹사이트는 회사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인쇄된 책 역시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실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공개된 플랫폼이나 아카이브에도 함께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그 작업의 출처와 기여자를 검증할 수 있고, 산업의 역사 역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브랜드비의 archiveB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아했던 브랜딩 에이전시들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으로 이름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웹사이트와 포트폴리오가 함께 없어지는 모습을 수없이 봤습니다. 브랜드는 남아 있는데, 정작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과 회사의 기록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에이전시가 이름을 변경한 경우 추적할 수 있고, 적어도 에이전시가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남긴 작업과 크레딧만큼은 보존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딩 에이전시에게 필요한 두 가지 지속가능성


브랜딩 에이전시의 지속가능성은 회사를 오래 운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브랜딩 에이전시에게는 두 가지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Business Sustainability, 즉 회사의 지속가능성입니다.

창업자를 넘어서는 조직을 만들고, 철학과 시스템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며 회사 자체를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Knowledge Sustainability, 즉 지식의 지속가능성입니다.

언젠가 회사는 사라질 수 있지만, 그들이 남긴 프로젝트와 크레딧, 작업 과정과 기록은 다음 세대에게 계속 전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지식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하나의 사례로 끝나지만, 수많은 프로젝트가 축적되면 산업의 역사이자 새로운 지식과 인사이트, 노하우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Knowledge Sustainability입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라면 자신들의 브랜드 역시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첫걸음은 거창한 전략과 장기적 계획이 아니라, 우선 오늘의 작업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기록은 시간이 날 때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 시작해야 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에이전시는 바쁜 프로젝트 일정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지 못하고, 크레딧을 기록하지 못하고, 결과물 촬영도 미루게 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자료가 흩어지고, 결국 기록을 남길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브랜드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랜드 기록 서비스 Brandgram by brandB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정리부터 크레딧 기록, 전문 사진작가의 결과물 촬영, archiveB 등록까지 브랜딩 프로젝트 기록을 남기는 전 과정을 함께합니다.


좋은 브랜딩은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록될 때 비로소 다음 세대의 지식(Knowledge)이 됩니다.




> Brandgram 서비스 문의하기

2026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