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바이럴되고 있는 브랜드 색상 맞추기 게임이 있습니다. 화면에 브랜드 이름이 나오면 색상 팔레트에서 그 브랜드의 컬러라고 생각하는 색상을 직접 골라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색상이 실제 브랜드 컬러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점수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쉬워 보입니다. 코카콜라의 레드, 맥도날드의 옐로우, 스타벅스의 그린처럼 익숙한 브랜드는 대표 컬러가 바로 떠오르니까요. 하지만 막상 팔레트에서 정확한 색상을 선택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레드라는 것은 알겠는데 수많은 레드 중 정확히 어떤 레드인지는 헷갈립니다.
우리는 브랜드의 색상을 기억하지만, 그 색상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우리가 정확히 기억하기도 어려운 색상 하나를 특정 브랜드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가능합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색상도 상표가 될 수 있습니다.
색상에도 상표권이 있다
상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상표의 본질은 특정한 글자 조합이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그것을 보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식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특정한 색상이나 색상의 조합 역시 출처를 식별하는 기능을 충분히 갖추었다면 상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흔히 ‘색채상표’라고 합니다.
하지만 네임이나 로고와 달리 색상은 조금 특별합니다.
새로운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는 기업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색상은 이미 존재하는 한정된 자원입니다. 빨강이나 파랑, 초록 같은 기본적인 색상을 특정 기업이 독점한다면 다른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는 일반적으로 색상을 특정 기업이 만든 상품이라는 ‘출처표시’보다는 제품이나 패키지를 꾸미기 위한 ‘디자인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색상 하나를 상표로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브랜드 컬러를 정하는 것과 그 색상이 실제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 나아가 독점배타적인 권리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나의 색상이 브랜드 고유의 것이 되었을까
색채상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브랜드가 바로 티파니(Tiffany)입니다.
티파니의 블루는 이제 단순히 브랜드가 사용하는 색상을 넘어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계열의 블루를 보면서 ‘티파니 블루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왼쪽: 1845년 시작된 티파니의 블루 북 / 오른쪽: 티파니 패키지 박스 ⓒ Tiffany&Co.>
티파니 블루의 역사는 1845년 발행된 티파니의 첫 번째 카탈로그 ‘Blue Book’에서 시작됩니다. 창립자 Charles Lewis Tiffany는 카탈로그 표지에 특유의 블루 컬러를 사용했고, 이후 이 색상은 패키지와 쇼핑백 등으로 확장되며 티파니를 대표하는 색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주얼리를 담는 블루 박스는 오랜 시간 티파니를 상징하는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유성을 인정받아 1998년에는 색채상표로 등록되었습니다.
<티파니의 브랜드 색상과 환경보호를 연결한 광고 캠페인, 1837 Tiffany Blue Conservation Campaign ⓒ Tiffany&Co.>
2001년에는 Pantone과 협업해 티파니의 블루를 ‘1837 Blue’라는 고유 컬러로 정의했습니다. 1837은 티파니가 창립된 해입니다.
물론 Pantone 컬러를 지정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티파니가 그 색상을 소유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전까지 오랜 시간 축적해온 브랜드 경험입니다. 패키지와 쇼핑백, 광고와 매장 등 수많은 접점에서 같은 색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소비자의 머릿속에 ‘이 블루는 티파니’라는 연결을 만들어왔습니다.
<풀만 브라운을 적용한 USP의 배송 차량 ⓒ UPS>
UPS의 풀만 브라운(Pullman Brown)도 비슷합니다.
1900년대 초반 풀만 컴퍼니(Pullman Company)가 운영하던 침대 열차는 부유층이 이용하는 최고급 여행과 우아함의 상징이었습니다. UPS의 공동 창립자인 찰리 소더스트롬(Charlie Soderstrom)은 이 열차의 갈색 외관이 주는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영감을 받아 1916년 이 색상을 도입했습니다. 배송 차량을 시작으로 유니폼과 각종 브랜드 접점으로 사용 범위를 확대했고, 한때 “What can Brown do for you?”라는 광고 캠페인을 전개할 정도로 브라운 자체를 브랜드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배송 차량이 멀리서 다가올 때 로고를 인지하기 전에 브라운 컬러만으로 UPS를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색상은 더 이상 장식적인 디자인 요소에 머물지 않습니다. 서비스의 출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UPS는 1998년 공식적으로 색채상표를 등록받았습니다.
<왼쪽은 고유성을 인정받아 보호 받을 수 있는 색상이지만 오른쪽은 보호 받지 못하는 색상입니다>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의 레드 역시 유명한 사례입니다.
루부탱의 하이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강렬한 빨간색 밑창, 레드 솔(Red Sole)입니다. 1992년 디자이너의 우연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 특징은 고유성을 인정받아 2008년 색채상표로 등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루부탱이 ‘빨간색’ 자체나 모든 ‘빨간색 밑창’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과의 소송에서 법원은 구두 윗부분과 밑창의 색상이 서로 대조를 이룰 때 루부탱의 상표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입생로랑처럼 구두 전체가 빨간색인 경우에는 루부탱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루부탱은 세계 각국에서 색채상표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유럽과 중국에서는 권리를 인정받은 반면 일본에서는 패소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색채상표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납니다.
<색상과 적용 제품이 표기된 티파니의 상표 등록 정보 / 인터넷 이미지 갈무리>
색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소유한다
티파니가 세상의 모든 블루를 독점하는 것은 아닙니다. UPS 역시 모든 브라운을 독점하지 않고, 루부탱 때문에 다른 구두 브랜드가 빨간색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색채상표의 권리는 특정한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색상이 사용되는 방식과 같은 맥락 안에서 작동합니다.
루부탱의 레드 솔은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빨간색 드레스를 만들거나 빨간색 가방을 판매한다고 해서 루부탱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제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된 색상이 소비자에게 어떤 브랜드의 출처를 의미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색채상표를 ‘색상을 소유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다소 과장된 설명일 수 있습니다.
기업이 독점하는 것은 색상 자체라기보다 특정한 시장과 사용 맥락에서 그 색상이 만들어낸 브랜드와의 연결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색채상표를 둘러싼 분쟁도 끊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우리 색’일까
앞서 이야기한 루부탱 외에도 여러 브랜드가 색채상표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도이체 텔레콤(Deutsche Telekom)과 T-모바일(T-Mobile)을 상징하는 마젠타는 색채상표를 둘러싼 논쟁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젠타는 오랫동안 도이체 텔레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대표해왔고, 회사 역시 자신의 브랜드 컬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왔습니다. 문제는 비슷한 색상을 사용하는 다른 기업이 등장했을 때입니다.
<도이체 텔레콤과 레베라의 로고 및 색상 비교>
베네룩스 지식재산청(BOIP)은 2024년 8월 네덜란드 통신사 레바라(Lebara)와의 무효 심판에서 도이체 텔레콤이 보유한 베네룩스 지역 마젠타 색채상표 3건에 대해 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이체 텔레콤이 네덜란드 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해당 색상이 고유한 상표로 인식된다는 ‘식별력’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비슷해야 상표권 침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같은 통신업계에서 사용하면 문제가 되고 전혀 다른 업종이라면 괜찮을까요?
디지털 서비스처럼 기존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진 경우에는 어디까지 같은 사업 영역이라고 봐야 할까요?
<왼쪽은 고유성을 인정받아 보호받을 수 있는 색상이지만 오른쪽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캐드버리(Cadbury)의 퍼플 역시 비슷한 문제를 보여줍니다.
영국의 초콜릿 브랜드 캐드버리는 1914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보라색 포장지를 사용해왔으며, 이를 독점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보호하기 위해 최대 라이벌인 네슬레(Nestlé)와 약 20년에 걸쳐 법적 공방을 벌였습니다.
캐드버리와 네슬레의 오랜 분쟁은 색채상표의 권리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Pantone 2685C처럼 명확하게 특정된 하나의 색상 자체도 상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색상의 모든 사용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색채상표의 권리는 등록된 상품과 서비스, 실제 사용 방식과 맥락 안에서 작동합니다.
색채상표는 인정받는 순간 매우 강력한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디까지 한 기업의 독점적인 권리로 인정할 것인지 역시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색상이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과 그 색상에 법적인 권리를 갖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는 하나의 색상이 특정 브랜드를 강하게 상징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는 제품과 서비스, 사용 방식, 적용 국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색상을 상표로 등록하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국내에서도 색채상표를 등록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관장입니다. 정관장은 국내 최초로 색채만으로 이루어진 상표를 등록받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색상이 아니라 여러 색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색채상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표등록을 받은 정관장의 색채상표와 적용된 패키지 디자인 ⓒ 정관장>
최근에는 올리브영도 브랜드를 대표하는 그린 컬러를 단일 색채상표로 출원했습니다.
올리브영과 그린은 꽤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고와 매장, 쇼핑백을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 접점에서 오랜 기간 그린을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국내 소비자에게 ‘올리브영의 색상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그린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리브영의 그린은 상표가 될 수 있을까요?
<올리브영의 색채상표 출원 정보 / 키프리스 정보 이미지 갈무리>
현재 해당 출원은 아직 심사 과정에 있으며, 1차 심사에서는 거절이유가 통지되었습니다.
특허청의 판단을 쉽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하나의 색상은 그 자체로 매우 단순한 표장이고, 일반 소비자는 이를 특정 기업의 상품이라는 출처표시보다는 상품을 꾸미는 디자인 요소 정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다만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출원 이전부터 해당 색상을 사용한 결과, 소비자들이 그 색상을 특정 기업의 상품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즉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충분히 입증한다면 등록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올리브영 하면 그린이 떠오른다’와 ‘그린을 보면 올리브영이 떠오른다’는 같은 것일까요?
브랜딩 관점에서는 둘 다 강력한 브랜드 연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색상 하나에 독점적인 법적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상표법의 관점에서는 훨씬 높은 수준의 식별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리브영의 최종 등록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심사 과정만으로도 단일 색상을 브랜드 자산으로 만드는 것과 그 색상에 법적인 독점권까지 확보하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브랜드 컬러는 지정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개발할 때 대부분의 브랜드는 자신의 브랜드 컬러를 정합니다.
Pantone 몇 번, CMYK 몇 퍼센트, RGB와 HEX 값까지 정확하게 정의하고 브랜드 가이드라인에 ‘Brand Color’라고 적어놓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을 브랜드 컬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브랜드 컬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가 사용하기로 결정한 색상에 가깝습니다.
Pantone 값을 정하는 것은 하루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그 색상을 특정 브랜드와 연결하는 데에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티파니와 UPS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브랜드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색상을 반복해서 사용해왔습니다. 패키지와 차량, 유니폼과 매장 등 수많은 브랜드 접점에서 일관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색상은 디자인 시스템의 한 요소를 넘어 독립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성장했습니다.
색채상표는 어쩌면 그 과정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그 색상 자체를 특정 브랜드의 출처로 인식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컬러를 정할 때 어떤 색상이 예쁜지, 어떤 색상이 지금 트렌드인지보다 더 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 선택한 색상을 얼마나 일관되게 사용하고, 얼마나 다양한 경험과 연결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브랜드의 것으로 축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브랜드 컬러는 기업이 정하지만, 자산으로서의 브랜드 컬러는 소비자에 달렸습니다.
기업은 오늘 당장 하나의 색상을 브랜드 컬러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색상을 보는 것만으로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비자의 기억 속에 축적된 색상은 네임이나 로고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