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Goods), 예전에는 흔히 판촉물이라고 불렸죠. 조금 더 세련된 표현으로는 기프트(Gift)가 있고, 최근에는 영어 표현인 머치(Merch)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인 에이전시라면 브랜드 굿즈 프로젝트를 한두 번쯤은 경험해 봤을 텐데요. 대부분은 예산의 한계 때문에, 의욕과 달리 제한적인 디자인만 적용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적지 않은 굿즈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기에 그런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갈수록 비슷한 아이템과 뻔한 디자인을 보며 회의감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이런 브랜드 굿즈가 과연 브랜드 경험에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소개할 사례는 그런 저의 선입견을 깨준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막대한 자금력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왕 비용을 들인다면 이 정도의 고민과 진정성은 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함께 살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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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mages © Landor
브랜드 굿즈는 이제 브랜딩의 보편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에코백, 머그컵, 키링까지. 브랜드를 경험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다양한 형태의 굿즈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성 제품에 로고를 더하는 수준에 그치거나, 화려한 그래픽을 이용한 패키징에만 치중한 채 이른바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연 브랜드 굿즈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어쩌면 사용하는 고객보다 브랜드 담당자의 실적쌓기나 마케팅 예산 소진을 위해 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고객의 상황과 필요에서 출발한 굿즈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요?
최근 Saudia(이하 사우디아)가 선보인 “The Coolest Ihram”은 이 질문에 대한 매우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우디아 항공이 이흐람(Ihram)에 주목한 이유
사우디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항공사로, 특히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찾는 성지순례(Hajj·하지) 항공 수요를 핵심 고객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슬람 순례자들은 성지에 들어가기 전 ‘이흐람(Ihram)’이라는 특정 복식을 착용해야 합니다. 남성의 경우 두 장의 흰 천으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형태의 의복인데, 종교적 의미를 지닌 동시에 모든 순례자가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문제는 이흐람이 착용되는 환경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극한의 더위 속에서 통기성과 체온 조절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순례 경험의 질과 순례자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실제로 2024년 하지 기간에는 폭염으로 인해 약 1,3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우디아는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고객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불편,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명확한 개선 가능성. 냉각 기능성 소재는 이미 존재했지만, 종교적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은 부족했던 것이죠. The Coolest Ihram은 단순한 브랜드 굿즈가 아니라, 고객의 여정 전체를 이해하고 그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 확장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즉, ‘브랜드를 드러내기 위한 물건’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서 출발한 것입니다.
문화적 특징과 제품의 기능성을 표현한 브랜딩
글로벌 브랜딩 에이전시 Landor는 2023년 사우디아의 리브랜딩을 진행한 바 있으며, 이번 The Coolest Ihram 프로젝트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고타입에 적용된 서체는 성지 메카(Mecca)의 중심, 카바(Kaaba)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핵심 그래픽 요소인 검은색 정사각형과 직선은 제품의 기능성을 시각화하는 그래픽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열화상 카메라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풀컬러 그라데이션은 흑백 중심의 디자인 시스템 속에서 강한 대비를 형성합니다. 이는 제품이 피부 온도를 약 2도 낮춰주는 기능적 특장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컬러 표현이 성스러운 하지(Hajj)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능성과 혁신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프로젝트 공개 이후 사우디아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약 20% 상승했으며, 미디어 홍보 감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브랜드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성과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제품은 사우디아라비아 순례부와 주요 종교 기관의 지지와 추천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브랜드 여정을 완성하는 매개체로서의 굿즈
The Coolest Ihram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쿨한 디자인 자체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흐람이라는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면서도 고객 여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아이템을 브랜드 굿즈로 선택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일반적인 항공사가 항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능성 의류를 제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승무원을 위한 유니폼 디자인은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굿즈는 아니었죠.) 그런데 사우디아는 브랜드 여정의 범위를 비행에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지순례를 떠나는 고객에게 중요한 순간은 비행기 안보다 도착 이후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흐람은 그 여정의 시작을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물 중 하나입니다. The Coolest Ihram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항공사가 단순 이동 서비스를 넘어, 고객의 여정 전체를 함께하고 케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 프로젝트는 굿즈의 역할 또한 새롭게 정의합니다.
브랜드를 노출하기 위한 기념품이 아니라, 고객의 실제 경험을 개선하는 도구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 결과 브랜드는 더 이상 로고나 슬로건으로만 기억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브랜드는 나의 중요한 순간을 이해하고 함께한다”는 감동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좋은 굿즈란 로고를 드러내는 물건이 아니라,
브랜드가 고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