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mages © Sunski / TUX
브랜드가 기존 제품 카테고리와 다른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 흔히 ‘브랜드 확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존 브랜드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새로운 브랜드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시장 진입이 수월하고, 이미 확보한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죠.
그래서 제품 확장을 염두에 둔 브랜드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특정 제품 카테고리에 브랜드를 한정하지 않고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쓰고, 자고, 쉬고, 즐기는 모든 것이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정의하면 사실상 무엇이든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왜 그 제품이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제품을 추가한다고 브랜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연결하려면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제품 확장과 브랜드 확장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Sunski 이전 로고 (2012~2026)>
선글라스에서 Sun Protection으로
Sunski는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선글라스 브랜드입니다. 캘리포니아 감성의 세련된 디자인에 친환경 재활용 소재와 합리적인 가격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젠틀몬스터와 비교하자면, 젠틀몬스터가 트렌디한 하이패션 브랜드라면 Sunski는 실용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에 가깝습니다.
Sunski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자연과 아웃도어 라이프가 있었습니다. 하이킹과 캠핑, 서핑, 여행처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한 선글라스를 만들었고, 오랫동안 ‘Live Life Outside’라는 메시지를 이야기해왔습니다.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프레임을 개발하고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등 자연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까지 브랜드의 중요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즉, 주력 제품은 선글라스였지만 브랜드가 바라보는 세계는 선글라스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Sunski는 이 세계관을 새로운 핵심 제품 카테고리로 본격적으로 확장합니다. 바로 자외선차단제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TUX는 프로젝트의 목표를 성장 중인 선글라스 비즈니스에서 보다 넓은 Sun Protection 브랜드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그동안 Sunski가 선글라스만 판매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도 선글라스 케이스와 모자 같은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외선차단제는 제조 방식부터 구매 기준, 경쟁 시장까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확장이 크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Sunski가 새로운 제품에 맞춰 갑자기 브랜드 스토리를 바꾼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글라스는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자외선차단제는 피부를 보호합니다. 제품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돕는다는 목적은 같습니다. Sunski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선글라스와 자외선차단제를 Daily Nature Kit 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었습니다. 서로 다른 제품을 자연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다시 정의한 것입니다.
<Sunski의 새 로고 (2026~)>
자외선차단제를 Sunski답게
브랜드 확장의 논리가 자연스럽다고 해서 새로운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외선차단제는 이미 수많은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최근에는 스킨케어와의 경계까지 흐려지면서 성분과 효능은 물론 가벼운 사용감까지 앞세운 제품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Sunski는 기존 아웃도어 브랜드의 기능성 이미지와 뷰티 업계의 전형적인 자외선차단제 이미지 사이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TUX가 자외선차단제 시장을 분석한 결과 친환경, 노스탤지어, 트렌드 등 다양한 포지셔닝이 존재했지만 시각적으로는 비슷한 문법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모래사장과 햇빛, 휴식과 휴가 같은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Sunski는 달라야 했죠. 햇빛 아래 누워 나른함을 즐기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연 속으로 나가 활동하고 모험을 즐기는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TUX는 해변에 머물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사막과 숲, 호수, 해안선, 눈 덮인 산에서 영감을 얻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자외선차단제를 여름철 휴가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사계절 야외 활동을 위한 제품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Sunski의 3가지 제품 / 모래 사장 배경이 아닌 것에 주목해 주세요! AI 이미지가 아닌 것도요!>
제품 구성도 이러한 포지셔닝을 반영합니다.
얼굴과 몸에 사용하는 Base Camp SPF 45, 매일 얼굴에 바르는 Sol Power SPF 50, 휴대하며 사용할 수 있는 미네랄 스틱 Hot Block SPF 50으로 각각의 사용 상황에 따라 제품을 나눴습니다.
특히 Hot Block은 실제 아웃도어 환경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제품 테스트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휴대하기 좋은 슬림한 형태와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게 비틀어 내용물을 꺼내올릴 수 있는 손잡이가 특징입니다. Sunski에게 자외선차단제는 화장대 위에 놓이는 것보다 야외 활동에서 사용되는 것이 우선인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제품 스토리를 상징하는 그래픽(Totem)>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이러한 차별화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TUX는 각각의 제품 스토리를 상징하는 손으로 그린 상징 그래픽(Totem)을 개발하고, 이를 실크스크린 프린팅을 연상시키는 거칠고 유쾌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했습니다. 깨끗하고 정제된 스킨케어 패키지나 태양과 해변, 야자수를 앞세우는 전통적인 자외선차단제 패키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드에서는 뷰티의 문법과 거리를 두면서도 제품에서는 뷰티 산업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Sunski는 한국의 뷰티 연구소와 협업해 가볍고 빠르게 흡수되는 제형을 개발하고, 이를 Korean beauty innovation과 California outdoor expertise의 결합으로 설명합니다. 뷰티의 기술은 가져왔지만, 뷰티 브랜드가 되지는 않은 것이죠.
자외선차단제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 시장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기보다, 자외선차단제를 Sunski답게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브랜드 확장에는 명확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브랜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확장을 고민하게 됩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처음부터 알리는 것보다 이미 확보한 인지도와 고객, 유통망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것과 그 브랜드가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납득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새로운 제품은 처음에는 브랜드의 유명세 덕분에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 브랜드가 이 제품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인지도만으로 지속적인 확장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다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함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제품에 브랜드를 가두지 않으면 패션에서 리빙으로, 리빙에서 식품으로, 다시 뷰티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은 확장의 방향이라기보다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설명에 가깝습니다.
‘더 나은 삶’, ‘프리미엄’, ‘나다움’처럼 많은 브랜드가 사용하는 추상적인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포함할 수 있는 세계관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규정하지 못합니다.
브랜드 확장에 필요한 것은 넓은 세계관이 아니라 명확한 세계관입니다.
명확한 세계관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듭니다.
Sunski 역시 넓게 보면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Outdoor Lifestyle’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근거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Live Life Outside’라는 세계관을 ‘Sun Protection’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으로 연결했습니다.
Sunski가 자신을 ‘선글라스 브랜드’로 정의한다면 자외선차단제로 확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정의한다면 거의 모든 제품으로 확장할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어발 확장을 하다 본연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Sun Protection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으로 브랜드를 정의하자 제품의 확장 방향은 더 명확해졌습니다.
따라서 Sunski의 확장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니까 자외선차단제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접근과 다릅니다. Sunski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왜 이 제품이 필요한가에 답하는 방식으로 확장했습니다.
제품 확장은 새로운 매출을 만들기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확장은 서로 다른 제품에서도 같은 브랜드를 느끼게 만드는 일입니다.
무엇을 더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는 브랜드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브랜드 확장은 넓은 세계관이 아니라 명확한 세계관으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