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디자인 사대주의'라는 말을 아시나요? 저희 브랜딩 업계에서 종종 회자되는 용어인데요, 간단히 말하면 해외, 특히 미국이나 유럽 디자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성향을 말해요. 일단 해외 디자인은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신선하게 느낄 수 밖에 없고, 이 신선한 느낌이 '크리에이티브'와 동일시 되는 성향이 있어요. 가끔 우리나라 브랜딩 에이전시가 제안했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로고 디자인이 선택된 것을 볼 때, 이게 다 '디자인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울분을 토하곤 하죠.
저도 Global Design Agency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제 안에 있는 '디자인 사대주의'를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좀 그런 성향이 있어요. 다만, 이 시리즈는 제 사대주의 성향 때문은 아니고요, 국내 브랜딩 에이전시는 다 하나 건너 아는 사이인지라 관련한 글을 쓰기가 껄끄러워서예요. 글을 쓰다보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칭찬이나 비평 같은 주관적 평가가 들어가기 마련이잖아요. 상대적으로 해외 에이전시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각설하고, 이번에 소개시켜드리는 에이전시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회사 이름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한 눈에 반해버린 로고를 디자인한 회사예요. 브랜드 로고 설명에 이 회사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평타 이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죠.
SomeOne in London
해외 브랜딩 에이전시들은 독특한 이름이 많은데요, 비 영어권자이자 토종 한국인으로서는 그 의도를 추측만 해 볼 뿐입니다.
이 회사 SomeOne도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사람, 누구' 라는 뜻과 함께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는데요, 둘 중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SomeOne in London' 이라는 도메인 주소 문구에 꽂혔던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약 10여년전에 처음 알게 됐는데요 (올해 설립한지 12년이라고 합니다), 당시 Landor나 Lippincott, Interbrand나 Metadesign 같은 창업자 아니면 업종이 들어간 네임을 지닌 브랜딩 에이전시만 알았던 저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거기다 첫 프로젝트가 당시로서는 정말 Sentational했거든요! 어떤 브랜드냐고요?
Royal Museums Greenwich
이 이미지를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처음에 '사진을 참 잘 찍었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떻게 이런 순간을 포착했지?
그런데 이 이미지가 로고로 쓰인다지 뭡니까! 브랜드 심볼이라고요?!
Royal Museums Greenwich는 영국 그리니치 지역에 위치한 4개의 뮤지엄을 통합한 브랜드예요. (Museum이 복수입니다) 그 중 National Maritime Museum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해양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SomeOne은 이 뮤지엄의 핵심 아이덴티티를 Royal과 Maritime으로 봤어요. 그래서 물방울로 왕관을 만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어떻게 사진으로 이런 순간을 포착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3D로 렌더링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로고를 3D로 렌더링 한다는 생각,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브랜딩 디자이너들은 2D 기반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대부분이고, 타 분야의 새로운 기술 시도는 조심스러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기 마련이거든요. 3D 디자이너와의 긴밀한 협업도 필요하고요.
한 때 입체 로고 디자인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했었지만, 사실 그 때도 그라데이션이나, Bevel&Emboss 정도로만 표현했지 실제 3D로 렌더링한 디자인은 거의 없었어요. 10여년전 당시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Moving Brand라고 모션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로고가 막 유행하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Royal Museums Greenwich 로고를 보면서 이제 로고 디자인도 더이상 2D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영상과 입체의 시대로 넘어가는구나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왠걸, 요즘은 오히려 Flat Design이 유행하네요!)
SomeOne은 물방울 심볼이 왕관으로도, 배로도, 또 별로도 보이게 디자인했다고 하고요 (4개의 뮤지엄의 속성과 연결됩니다), 하위 뮤지엄에 적용할 때는 색상을 Variation했는데, 이것도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독창적이면서 화제가 됐던 로고 디자인이 채 10년이 되지 않아 리뉴얼 되었습니다.
위의 어플리케이션 디자인을 보시고 왜 리뉴얼 했는지 감 잡으신 분도 있을 꺼예요.
사실 3D나 그라데이션, 투명효과가 들어간 로고는 실무자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데요, 왜냐면 다양한 환경에서 일정한 퀄리티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기가 힘들거든요. 모든 제작물 디자이너가 SW툴을 잘 다루고 감각이 뛰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상한 배경 이미지 위에 올린다거나, 하얀 색 테두리(현장에서는 '누끼'라는 용어를 씁니다.)를 두른다거나 하는 오용 사례가 많이 발생해요.
Royal Museums Greenwich는 2017년, 기존 로고 디자인이 활용이 어렵고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SomeOne의 로고디자인 더 좋다고 생각해요. 새로 바뀐 디자인은 어딘가 있을법한 미니멀한 디자인이거든요.
Eurostar
이 로고도 2011년 발표 당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나뉘었는데요, 이 로고의 진가 역시 입체로 만든 심볼에서 드러나요. 실제 금속으로 주조해서 만든 심볼은 마치 예술작품 같은 느낌을 줍니다. 미래 메타버스 시대에 딱 맞는 디자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는 2D환경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3D 로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튼 이렇게 SomeOne이라는 브랜딩 에이전시가 제 머리 속에 각인되었고, 저의 디자인 사대주의 성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시간과 돈이 여유로운 클라이언트라면 꼭 SomeOne에 브랜딩을 맡겨보았을 꺼예요. (다음 생에나 가능 할 것 같지만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아직까지 SomeOne과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SomeOne의 최근 디자인 작업이 궁금하다면?
요즘 디자인 트렌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3D로 렌더링한 로고 디자인은 보이지 않아요.
다만 브랜드 소개 영상 등에서는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리스트를 보면 클래식하고 우아한 브랜드와 이성적이고 첨단지향의 핀테크/통신사 브랜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어찌보면 상반된 두 산업에서 동시에 선호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아직 SomeOne의 이전 로고 작업들을 많이 업데이트하지 못했지만, 디렉토리를 누르면 최근 작업들을 볼 수 있어요.
화려한 영상과 풍부한 이미지를 보시려면 SomeOne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