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mages © Simplehuman / Abbreviated Projects
우리는 매일 수십 번씩 쓰레기통을 열고 닫습니다. 하지만 쓰레기통의 형태와 기능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쓰레기통을 구매할 때도 그저 용량이 충분한지, 내부 쓰레기가 보이지 않도록 뚜껑이 있는지 정도의 기본적인 사항만 고려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소에서 가장 저렴한 휴지통을 구매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지극히 평범한 제품으로 전 세계적인 팬층을 만든 브랜드가 있습니다. 쓰레기통 하나로 시작해 ‘생활용품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얻은 브랜드, Simplehuman입니다.
최근 Simplehuman은 아주 흥미로운 리브랜딩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그래픽도, 모션 효과도 없고, 얼핏 보면 이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 아마도 여러분의 눈길을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랜드비가 리뷰를 하기로 했죠!
<쓰레기통 하나가 수십만원이라니! Simplehuman의 대표 제품, 스테인리스 쓰레기통>
효율적인 삶을 설계하는 브랜드, Simplehuman
Simplehuman은 엔지니어 출신의 창업자 Frank Yang이 2000년에 설립한 미국 생활용품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는 스스로를 생활용품 회사가 아니라 ‘Tools for Efficient Living(효율적인 삶을 위한 도구)’을 만드는 회사라고 정의합니다.
출발점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왜 쓰레기통은 이렇게 불편해야 하지?”
발판은 쉽게 고장 나고, 비닐봉투는 밖으로 드러나며, 뚜껑은 요란하게 닫혔습니다.
기존 생활용품 기업들은 쓰레기통을 단순히 더러운 쓰레기를 담는 용기라고 생각했지만, Simplehuman은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의 인터페이스로 바라봤습니다.
이후 브랜드는 쓰레기통을 넘어 세제 디스펜서, 거울, 욕실 오거나이저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어떻게 하면 일상의 작은 행동을 더 효율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집요함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Simplehuman을 생활용품계의 애플이라고 부릅니다.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작은 디테일까지 반복적으로 개선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용 경험까지 세심하게 설계하기 때문입니다.
<Simplehuman의 새로운 로고 by Abbr.Projects>
단 몇 픽셀의 차이, 그러나 완전히 Simplehuman다운 리브랜딩
이번 리브랜딩은 디자인 에이전시 Abbr. Projects가 담당했습니다.
새로운 로고와 전용 서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화려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Simplehuman이 제품을 개발할 때와 똑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Simplehuman의 이전 로고>
기존 로고는 작은 크기에서 사용성이 떨어졌고, 디지털 환경이나 제품 각인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명을 ‘Simple Human’이라는 두 단어로 읽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카드가 신용카드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Hyundai Card에서 HyundaiCard로 띄어쓰기를 수정했던 사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에이전시는 수백 개의 스케치와 수개월의 테스트를 거쳐 새로운 로고타입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Simplehuman의 시그니처인 스테인리스 소재에 직접 각인 테스트를 반복하며 곡선, 간격, 모서리 반경 하나까지 정교하게 조정했습니다.
케이스 스터디에는 인상적인 문장이 등장합니다.
“A few pixels, a world of difference.”
(단 몇 픽셀, 그러나 완전히 다른 차이를 만듭니다)
실제로 새로운 로고는 드라마틱하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글자 간 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모서리와 곡선의 반경을 정교하게 다듬어 어떤 환경에서도 선명하게 읽히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브랜드명이 고유성을 지닌 하나의 개념인 ‘Simplehuman’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개선했습니다.
전용 서체 역시 같은 철학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산업 및 인프라 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DIN 서체에서 영감을 얻되, 엔지니어링의 정밀함과 인간적인 온기를 동시에 담아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결국 이번 리브랜딩은 새로운 스타일이나 이미지를 추가한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브랜드가 오랫동안 지켜온 엔지니어링 정신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시각 언어로 더욱 정교하게 번역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로고의 픽셀 단위 조정이나 스테인리스 각인 테스트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의식적으로 경험됩니다. 더 선명하게 읽히고, 더 정교하게 느껴지며, 더 완성도 높은 브랜드로 인식됩니다.
브랜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격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가 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는 결국 수많은 작은 디테일의 축적 위에서 완성됩니다.
진정한 프리미엄은 서로 다른 디테일을 보는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Simplehuman 사례를 보며 또 하나 흥미롭게 느낀 점이 있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Simplehuman은 제품 디자인의 완성도를 꾸준히 진화해 왔지만, 상대적으로 로고와 시각 시스템은 그 수준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기존 로고가 형편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는 바로 그 미세한 차이까지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대로 된 리브랜딩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각 디자인 분야가 바라보는 디테일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 디자이너는 소재, 구조, 사용성, 제조 공정의 완성도에 민감합니다. 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글자 간 간격, 곡선의 반경, 균형감, 다양한 환경에서의 가독성과 가시성에 집착합니다. 둘 다 디자이너이지만 오랜 시간 훈련하며 축적한 관찰의 해상도는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죠.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제품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로고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제품 개발을 맡은 경우 사용성과 구조적 완성도에서 미세한 부족함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는 알아차리지 못할지 몰라도, 결국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쌓여 브랜드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Simplehuman의 리브랜딩은 서로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 간 협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단 한 명의 천재가 만드는 결과물이 아닙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디테일에 집요하게 몰입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단 몇 픽셀의 차이가 프리미엄을 정의한다면, 각 분야 별 그 몇 픽셀을 다듬을 수 있는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의 조건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