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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ouchi by Saffron

*All Images © JR West / Saffron





브랜딩 관점에서 특정 지역을 알리고 방문을 유도하는 활동은 보통 ‘지역 브랜딩’, ‘도시 브랜딩’, 혹은 ‘관광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용어들은 사용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특정 장소를 더 잘 이해시키고, 더 많은 방문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이와 유사한 개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합니다.

바로 Destination Branding이라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차이가 생깁니다. ‘Place’이나 ‘City’가 물리적인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Tourism’이 행위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면, ‘Destination’은 선택과 목적이 전제된 개념입니다.

즉,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찾아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이 차이는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딩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최근 일본 세토우치 지역 브랜딩은 그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일 도시가 아닌 광범위한 지역, 일본 세토우치


세토우치(Setouchi)는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위치한 세토 내해(瀬戸內海 Seto Inland Sea) 일대를 의미합니다. 히로시마, 오카야마, 에히메, 가가와 등 여러 지역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권역으로, 온화한 기후와 잔잔한 바다,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나오시마, 테시마 등 현대 미술 프로젝트와 결합된 문화 관광지로서의 가능성도 갖추고 있어,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세토우치는 오랫동안 도쿄, 오사카, 교토와 같은 대표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지역이었습니다. 또 각각의 도시와 섬은 개별적으로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의 목적지로 인식되기에는 다소 분산된 이미지에 가까웠습니다.






왜 JR West가 세토우치 브랜딩을 하게 되었을까


JR West(서일본철도)는 세토우치를 단순한 지역 단위가 아닌, 하나의 관광 브랜드로 재정의할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기존 일본 관광은 ‘도쿄–교토–오사카’로 이어지는 골든 루트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는 관광 수요의 편중과 지역 간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JR West는 이러한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세토우치를 “Japan’s Third Destination”, 즉 일본의 세 번째 핵심 여행지로 포지셔닝하고자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개별 지역이 아닌 광역 권역 단위의 통합 브랜드 구축
  •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일본 경험 제안
  • 철도 중심 이동 경험을 포함한 여행 전체의 재구성
  •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체류형 관광 유도


즉, 단순한 관광 홍보가 아니라 여행 경로 자체를 설계하는 전략적 브랜딩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Destination Branding 전문가 Saffron의 브랜딩 전략


JR West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영국의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 Saffron에 브랜딩을 의뢰했습니다. 이는 공기업 성격의 일본기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선택인데요, Saffron이 매년 <City Brand Barometer>를 발표하며 그동안 지역 브랜딩에 관해 축적한 인사이트를 어필해온 점이 큰 이유라고 추측됩니다.




1.‘Calm’으로 정의 되는 핵심 가치


Saffron은 세토우치의 핵심 가치를 ‘Calm(차분함, 평온함)’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일본 관광이 일반적으로 제공해 온 ‘도시의 활기’, ‘전통의 상징성’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세토우치는 빠르고 화려한 경험이 아니라, 느리고 조용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2.안쪽 바다(內海)에서 온 그래픽 언어


브랜드의 시각적 요소는 세토 내해의 특성에서 출발합니다.


  •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 부드러운 색의 레이어
  • 수평적으로 펼쳐지는 풍경


이를 바탕으로 유기적이고 흐르는 듯한 그래픽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O와 U가 연결된 전용서체의 리가처(Ligature)와 중첩된 이미지는 ‘연결된 추억’이라는 아이디어를 표현합니다. 또 그래픽 모티프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주되는 시스템 형태로 설계되어 세토우치의 ‘다양한 섬과 지역’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냅니다.





3.설명이 아닌 경험 중심의 메시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특징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전통, 역사, 명소 중심 설명에서 벗어나 감각, 분위기, 여정 중심의 메시지로 전환했습니다. 즉,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세토우치 브랜딩은 단순한 광고나 로고 변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철도 차량 디자인, 역 공간, 관광 안내 시스템, 캠페인 및 콘텐츠 까지 확장되며 여행 전 과정에 섬세하며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통합 브랜딩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 디자인을 탈피한 세토우치 브랜딩


세토우치 브랜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본 디자인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브랜딩에서 보여지는 디자인 언어는 흔히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뉩니다. 매우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와글와글 등장하거나, 강인하고 거친 붓터치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통성과 미니멀리즘이 강조된 표현입니다. 하지만 세토우치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절제된 색감과 추상적인 그래픽을 통해 보다 글로벌하고 현대적인 미감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자국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계에서 나아가 외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JR West가 해외 에이전시인 Saffron에 브랜딩을 맡긴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영 기업인 철도 회사는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조직이며, 특히 일본의 경우 내부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강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그것도 해외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를 단순한 디자인 개선이 아니라 시장 재정의 수준의 전략 과제로 인식했다는 의미입니다.


브랜드비가 꾸준히 업데이트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지역 브랜딩이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수많은 지자체의 브랜드 네임과 로고, 캐릭터들이 업데이트 됩니다. 업데이트하면서 항상 느꼈던 아쉬움이 세토우치 브랜딩을 보며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세토우치와 같은 브랜딩이 가능할까?"

"단일 지역이 아닌 여러 지역을 장기간에 걸쳐 통합 브랜드로 구축할 수 있을까?"


한국에도 다양한 지역 마케팅 사례는 존재하지만, 대부분 단기 캠페인이나 개별 지자체 중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브랜딩의 경우는 대동소이한 로고 디자인과 슬로건을 발표하며 마무리되죠. 세토우치 프로젝트는 단일 기업의 마케팅을 넘어 지역, 교통, 관광, 문화가 결합된 구조입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디자인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는 주체와 구조” 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브랜딩은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세토우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지역 브랜딩의 성공이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을 어떻게 더 잘 설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곳을 선택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에 가깝습니다.


많은 지역 브랜딩이 여전히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를 나열하는 데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정보만 보고 이동하지 않습니다. 가고 싶다는 감정이 생길 때 비로소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의 지역 브랜딩도 이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좋은 지역 브랜딩은 더 많이 노출시켜 더 많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더 선택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역 브랜딩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2026 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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