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중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습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세상이 엄청나게 변화한 것을 뜻하는데요, 영어로는 Sea Change라고 합니다. 현존하는 높은 산들 중에는 아득히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있으니, Sea Change의 변화가 어느정도로 거대한 변화인지 상상이 가시죠? 바로 이 단어, Sea Change를 사명으로 사용하는 브랜딩 에이전시가 있습니다. 2017년 설립된 뉴질랜드의 에이전시 Seachange를 소개해 볼께요.
1. 비교적 짧은 역사, 하지만 범상치 않은 실력
Seachange는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두 사람, Amanda Gaskin과 Tim Donaldson이 뉴질랜드로 돌아와 설립한 브랜딩 에이전시입니다. 채 6년이 안되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쌓은 포트폴리오가 무척 인상적이서, 개인적으로 그들이 런던에서 어느 에이전시에서 일했는지 궁금했는데요, 한편으론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이전 이력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에이전시 소개 페이지에 따르면 Seachange는 인식을 바꾸고, 관습에 도전하며, 긍정적 변화를 위해 싸우기 위한 에이전시라고 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가 때론 카테고리 파괴로 묘사된다고 하는데요, 이 세상에 Sea Change만큼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기업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Seachange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굉장히 매력적인 패키지 디자인을 발견하면서부터인데요, 생소한 에이전시의 이름에도 "이건 반드시 아카이빙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Seachange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면서 완전히 푹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제 취향인 디자인이 많더라고요. 만약 제가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면서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해야 한다면, 단연코 Seachage를 컨택 1순위로 놓을 것입니다. (이봐! 1순위가 너무 많은 것 아냐?)
여러분들도 Seachange의 작품들을 보시면 어떤 점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예요.
2. Bennetts of Magawhai : 소장욕 불러일으키는 부활절 패키지 디자인
Bennetts of Magawhai는 뉴질랜드의 수제 초콜릿 브랜드입니다. Seachange는 그들을 위한 다양한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했는데요, 그 중 가장 매력적인 디자인이 바로 이 부활절 패키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Bennetts of Magawhai는 위의 깨진 달걀 모양 초콜릿 외에도, 부활절 토끼 등 다양한 부활절을 테마로 한 초콜릿을 만들었는데요, Seachange의 패키지 디자인은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이 부활절 초콜릿은 갖고 싶더라고요!
3. Food Nation : 비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패키지 디자인
이 유머러스한 디자인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육식파로서 '비건 Vegan'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일단 맛이 없어 보이고, 실제로 맛이 없습니다. 마치 "맛은 없지만 건강에 도움돼, 그리고 동물의 희생을 줄일 수 있어" 라며 설교를 늘어놓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랄까요? 미식(美食)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데, 비건은 신념을 위해 그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FoodNation은 식물성 재로로 만든 비건 식품 브랜드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식물을 섭취하기를 원했어요. Seachange는 이를 위해 비건이 기존에 갖고 있던 조신한 '자연 Nature'의 이미지 대신 즐겁고 활기찬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제품 명칭에서부터 귀여운 일러스트 이미지까지 기존 비건 제품 패키지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냈는데요, 저 같은 육식파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을 보면 확실히 성공적인 브랜딩 전략임이 분명합니다.
4. Paws Off! : 반려동물을 위한 세계 최초 경고 마크
브랜드비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는 독자 분은 이미 접한 사례입니다만, 비구독자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에헴! (이번 기회에 구독을 고려해 보세요.)
흔히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은 당연히 동물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포도, 아보카도, 복숭아 등 과일을 비롯하여 마늘, 양파, 빵, 초콜릿 등의 식품은 반려동물에게 위험하다고 해요. PawsOff!는 사람이 무심코 반려동물에게 먹일 수 있는 식품에 부착하는 경고 마크입니다. 정부나 글로벌 단체의 공식 마크는 아니고, 뉴질랜드 수의사협회에서 반려동물에게 위험한 식품을 알리고자 하는 캠페인으로서 기획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펫팸족' 시대에 실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 The Wool Pot : 환경을 생각하는 기발한 제품과 이를 반영한 아이덴티티
얼핏 보면 모자가 아닌가 싶은데요, 위 제품은 양모로 만든 화분입니다! 놀랍게도 매년 수십억 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화분이 생산되고 있다고 해요. 그로 발생하는 폐기물의 양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시죠? TheWoolPot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 자연생분해되는 재활용 울로 만든 화분을 개발했습니다. 화분과 양모의 형태를 결합한 심볼은 귀여운 양 얼굴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귀여움이라면 화분의 견고성 내지 내구성에 대한 불안감을 누르고 기꺼이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6. We Compost : 지렁이도 귀여워질 수 있나요?
We Compost는 뉴질랜드의 쓰레기 퇴비화 서비스 기업업입니다. 퇴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유기 쓰레기를 수거하는데요, 환경에는 참 의미있는 일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참여도는 매우 낮았다고 해요. Seachange는 일반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기존에 많이들 사용하던 나뭇잎, 재활용 마크 대신 퇴비화를 상징하는 벌레(Worm - 대표적으로 지렁이가 있습니다)를 모티브로 채택했습니다. 지렁이 로고 및 지렁이 형태를 띈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죠.
7. Royalburn : 지속가능한 농장 시스템 모델을 브랜딩하는 법
Royalburn은 전통적 보리 농장을 재탄생시킨 세계 최초의 재생(Regenerative) 농장입니다. 단순히 토양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것 뿐 아니라, 농장과 주변 자연 생태계가 어우러져 허브, 꽃, 꿀, 양고기, 울 등의 부가적 농산품을 함께 생산합니다. Royalburn은 농장 브랜드이자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의 패밀리 브랜드인 것이죠.
브랜드 철학을 상징하면서도 다양한 제품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로고 마크가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진솔함이 묻어나는 카피 문구가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8. Super Trash : 쓰레기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역시 또 다른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분야죠. 바로 쓰레기 수거 서비스입니다. 모두가 쓰레기 분리 수거와 재활용이 필요하고, 또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쓰레기 수거 업체는 수익을 위해서 더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길 원하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습니다. SuperTrash는 이 모순을 탈피하기 위해 과감한 브랜딩을 도입했습니다. 기존 고정관념과 전혀 다른 핑크색 그래픽은 SuperTrash의 남다름과 혁신을 상징합니다.
예전에 국내의 헌옷 수거 사장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분은 헌옷 수거로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도 주변의 홀대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괴감이 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날 딸이 "헌옷 수거"가 아닌 "친환경 재생 산업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그 한마디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합니다. 저는 브랜딩에 있어 이러한 '표현의 한 끗 차이'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요소지만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창의성이자 혁신인 것이죠.
제각 생각하는 SuperTrash 브랜딩의 한 끗은 바로 화려한 핑크색이라고 생각해요. 브랜딩의 핵심 목표는 기존 쓰레기 수거 업체와 동일한 '친환경' 이미지 전달보다는 사람들이 SuperTrash의 다름과 그 이유를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 있으니까요.
9. 505 Construction : 공사장 가림막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어요.
505는 뉴질랜드의 건축 회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름이 왜 505인지 궁금하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해요. 왜냐면 505가 리브랜딩을 하게 된 이유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Seachange는 이를 위한 해결안으로서 Mnemonic(니모닉 : 기억을 돕는 연상 기호)을 생각해냈습니다. 이름인 505를 미니멀한 시각적 기호로 표현했는데요, 이는 505의 세 가지 비즈니스 분야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이 디자인을 보고 흔한 이벤트성 가림막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기업 브랜딩의 일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어플리케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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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Seachange의 작품 중 주목할 만한 대표 사례 8개를 뽑아보았는데요, 이 외에도 훌륭한 브랜딩 케이스스터디가 많으니 웹사이트를 꼭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Seachange의 강점은 귀여운 패키지 디자인과 ESG에 특화된 브랜딩인 것 같아요. 특히 몇 년 전부터 ESG가 메가 트렌드로서 관련된 다양한 브랜딩 사례가 있습니다만, 천편일률적인 나뭇잎과 지구, 재활용 마크의 반복에 지쳤다면 Seachange의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유심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