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의 세계는 방대합니다. 특히 산업 카테고리별로 브랜드를 들여다보자면 끝이 없죠.
그래서 특화된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는 신규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처음 접하게 되고, 뒤늦게 공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랜드비를 운영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해외 브랜딩 사례를 통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규 산업 트렌드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예전에 다뤘던 지속가능 항공유, 합법적 대마초, 인공 대체육, 프리바이오틱 소다 등이 그 사례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니코틴 파우치 역시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산업 중 하나입니다.
저는 비흡연자라 각 제품의 특징이나 차별점을 직접 체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일부 웹사이트는 한국에서 접속이 제한되어 정보를 얻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브랜드 네임과 패키지 디자인을 중심으로 가볍게 살펴보려 합니다.
1. 새로운 니코틴 소비 방식의 등장
전 세계적으로 흡연율은 꾸준히 줄고 있다고 합니다. 전자담배 역시 각국의 규제 강화로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니코틴을 찾는 소비자들은 존재합니다. 바로 이 틈새에서 주목받는 것이 니코틴 파우치(Nicotine Pouch)입니다.
연기도, 냄새도, 타르도 없이 니코틴을 섭취하는 새로운 방식.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품을 설명하는 문구 중 하나가 금연 보조제입니다. 흡연자가 담배를 끊는 과정에서 니코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흡연 행위를 대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요.
과연 이것은 금연 보조제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담배일까요?
2. 니코틴 파우치란?
니코틴 파우치는 스웨덴의 전통 무연담배 스누스(Snus)에서 파생된 제품입니다.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작은 파우치를 잇몸과 볼 사이에 넣어두면 니코틴이 체내로 흡수된다고 해요.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 스누스는 잘게 자른 담배 잎을 사용했지만, 니코틴 파우치는 담배 잎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대신 식물섬유(셀룰로오스)에 니코틴과 향료를 결합한 화이트 파우치(White Pouch) 형태입니다.
화이트 파우치는 흰색 파우치 그대로의 청결한 이미지와 함께, 치아 착색이 덜하고 다양한 풍미를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간접흡연의 우려가 없고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인식도 있죠. 그래서 니코틴 파우치를 화이트 파우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여전히 스누스로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3. 어떤 브랜드들이 있나요?
니코틴 파우치의 문을 연 최초 브랜드는 2014년 스웨덴에서 등장한 Epok입니다. 이후 BAT가 이를 인수해 Lyft, 다시 글로벌 통합 브랜드 Velo로 발전시켰죠.
하지만 니코틴 파우치 시장을 세계적으로 급성장시킨 것은 ZY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매치(Swedish Match)가 만든 이 브랜드는 현재 PMI(Philip Morris International)에 인수되어 세계 1위 니코틴 파우치로 자리잡았습니다.
현재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브랜드비가 임의로 10개 선정해 보았습니다. 매출 순위보다는 브랜딩의 다양성 측면을 고려했고요,메이저 대기업 브랜드부터 북유럽 프리미엄, 그리고 개성 강한 인디 브랜드까지 —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서는 랜덤입니다.
ZYN (PMI)
스웨덴 매치(Swedish Match)가 2014년 출시한 브랜드로, 현재는 PMI에 인수되어 글로벌 1위를 기록 중입니다. 스웨덴 출신의 정통성과 안정적 품질을 무기로 미국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했습니다.
VELO (BAT)
사실 VELO는 니코틴 파우치의 원조격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Epok으로 시작해 BAT 인수 후 Lyft를 거쳐 Velo로 변경되었죠. 짧고 간결한 네임과 유럽 시장 중심의 확장성을 무기로 ZYN의 주요 경쟁자로 자리했습니다.
Nordic Spirit (JTI)
일본 담배기업 JTI가 전개하는 브랜드이지만, 실제로는 스웨덴에서 생산되며 정통성을 강조합니다. 100% 화이트 파우치와 다양한 맛을 강점으로, "스웨덴에서 온 현대적 니코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On! (Altria)
미국 담배기업 Altria가 전개하는 브랜드로, 다양한 니코틴 강도와 풍미를 세분화해 제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부분 원형 케이스 일색인 시장에서 사각형 패키지로 차별화를 꾀하며,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On!)"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을 강조합니다.
Skruf Super White (Imperial Brands)
스웨덴 Skruv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브랜드로, 스누스에서 출발해 화이트 파우치로 확장했습니다. "Scandinavian Quality"와 세련된 이미지를 내세워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구축했습니다.
Loop (Another Snus Factory)
스웨덴 스타트업 Another Snus Factory가 만든 신생 브랜드입니다. 친환경 패키지와 개성 있는 향을 통해 지속가능성과 모던 디자인을 강조하며, "다시 돌아오는 경험(Loop)"이라는 이름 그대로 꾸준한 사용 경험을 제안합니다.
Sesh
미국 기반 신생 브랜드로, 이름은 ‘Session’의 약칭에서 유래했습니다. "Designed in Sweden" 태그라인과 미니멀 디자인으로 정통성을 소구하며, 부드러운 사용감과 캐주얼한 접근성을 강조합니다.
Rogue (Swisher International)
미국의 Swisher International이 만든 브랜드로, 파우치뿐 아니라 껌·로젠지 등 다양한 니코틴 대체재까지 아우릅니다. '악당'을 뜻하는 네임 그대로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White Fox (GN Tobacco)
스웨덴 GN Tobacco가 만든 브랜드로, 이름과 달리 강력한 니코틴 함량과 공격적 마케팅으로 유명합니다. 여우 아이콘과 풀 컬러 패키지로 마니아층에게 강렬한 경험을 약속합니다.
Pablo (NicoLife)
NicoLife가 전개하는 초고함량 니코틴 브랜드로, 도발적인 네임과 캘리그래피 로고가 특징입니다. 규제가 느슨한 시장을 중심으로 젊은 층을 겨냥하며, 극강의 파워 니코틴 경험을 내세웁니다.
4. 니코틴 파우치 브랜드를 개발한다면?
니코틴 파우치 브랜드들의 네이밍과 디자인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네이밍 전략
- 짧고 글로벌 발음이 쉬운 이름: ZYN, VELO, On!, Loop처럼 3~5글자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네이밍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북유럽 정체성 강조: Nordic Spirit, Skruf는 '북유럽 출신'임을 전면에 내세워 신뢰성을 확보합니다. 네임 외에도 제조사명(Swedish Match)이나 태그라인(Designed in Sweden)으로 간접적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 클린·화이트 이미지 활용: Skruf Super White, White Fox는 화이트 파우치의 깨끗한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디자인 전략
- 미니멀 & 화이트 베이스: On!, Nordic Spirit, Skruf는 흰색을 기본으로 한 단순한 타이포그래피로 제약·건강기능식품 같은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컬러 코딩과 인포그래픽: 다양한 맛과 니코틴 강도를 색상 및 별점 아이콘으로 구분해 소비자 선택 편의성을 높입니다.
- 지속가능성과 모던함 강조: Loop, Sesh는 친환경 패키지와 파스텔 톤으로 지속가능성과 모던함을 함께 내세웁니다.
디자인 차별화 전략
White Fox, Rogue, Pablo는 차별화를 위해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 White Fox: 여우 캐릭터와 풀 컬러 패키지 디자인으로 강렬함을 내세움
- Rogue: 반항을 의미하는 이름과 다양한 포맷 확장
- Pablo: 초고함량 니코틴과 도발적 네임으로 논란과 화제 동시 유발
브랜딩 인사이트
니코틴 파우치 시장의 브랜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메이저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 전략: 짧은 이름, 북유럽 정통성, 미니멀 디자인
- 차별화 브랜드의 틈새 타겟 공략: 도발적 네이밍, 강렬한 아이콘, 스트리트 감성
물론 시장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차별화 시도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브랜딩 아이디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요.
5. 마무리하며
현재 국내에서는 니코틴 파우치가 공식 유통되고 있지 않습니다. 일부는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청소년 전자담배 사용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이슈를 고려하면 니코틴 파우치 역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니코틴 파우치는 해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국내에서는 법규로 인해 접할 수 없는 합법적 대마초 사례와 비슷한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브랜드비가 이 트렌드를 소개하는 이유는, 글로벌 브랜딩을 고려할 때 다양한 연상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고 미니멀함을 강조한 디자인이 의도치 않게 니코틴 파우치와 겹쳐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브랜딩 의도에 맞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차별화를 위한 브랜딩 아이디어에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