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에 완성되는 브랜딩은 없습니다. 브랜드는 시대 및 시장, 그리고 기술의 변화에 따라 꾸준히 변화하고 또 진화하기 때문이죠.

브랜드비는 이러한 브랜드의 변화 과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아카이빙하고 있는데요,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로고 디자인의 변화 정도에 따라 더 세분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일반인 관점에서는 그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기에 arhiveB에서는 세 단계로만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단계를 사람에 비유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New - Change - Renewal - Refresh - Refine

  • New: 브랜드의 탄생. 이름이 정해지고, 외모(로고)와 성격(정체성)이 처음 만들어지는 단계.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 Change: 브랜드 네임 변경. 사람의 본질은 같지만, 이름이 달라져 새로운 인식이 형성됨.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결단.
  • Renewal: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미지 재정립. 얼굴과 인상 전체를 바꾸는 수준. 철학과 방향성까지 재설계해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됨.
  • Refresh: 이미지의 현대화. 기본 얼굴은 그대로 두되, 헤어·메이크업·패션으로 인상만 새롭게. 시대와 트렌드에 맞춰 세련되게 변신.
  • Refine: 미세한 조정과 완성도 향상. 일견 큰 변화는 없어 보이지만, 뭔가 달라진 느낌.


그중에서도 Refine(이하 리파인으로 표기)은 가장 섬세하고, 가장 고도의 디자인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겉보기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브랜드 감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 작업입니다. 간격과 비율, 곡선의 흐름, 색상의 아주 작은 차이가 브랜드 전체의 인상과 완성도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정한 명품 브랜드일수록 이 단계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미세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들


리파인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입니다.

그 변화는 다음과 같은 세부 영역에서 진행될 수 있습니다.




1. 타이포그래피의 정제


  • 자간(Kerning), 장평(Tracking), 획의 두께 등 미세 조정
  • 가독성과 안정감을 높이고, 픽셀 환경에 맞게 최적화


<Ciena의 로고 리파인 Before & After>


통신 네트워크 기업 Ciena의 로고 리파인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를 한 눈에 구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숙련된 디자이너 못지 않은 매의 눈을 지녔다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서당개 20년 풍월의 저도 아직은 구분이 어렵습니다.



위 이미지를 보시면 어떤 부분이 조정되었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비슷한 다른 사례도 보여드릴께요.


<Adobe의 로고 리파인 Before & After>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Adobe의 리파인 역시 일반인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겹쳐 보았더니 그제서야 변화를 알 수 있었어요. 글자의 장평을 조정한 사례입니다.




2. 비례와 정렬의 균형

  • 심볼과 로고타입 간 거리, 기준선, 여백을 조정
  • 전체 시각적 리듬과 비율을 정돈해 안정감 확보


<Feyenoord Rotterdam의 로고 리파인 Before&After>


네덜란드의 축구팀 Feyenoord의 로고 리파인은 변화의 차이를 알아차리가 어려워 축구팬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관련한 각종 밈이 생성되기도 했죠.



겹쳐보면 정말 많은 부분이 미세하게 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어요.




<GS SHOP의 로고 리파인 Before&After>


최근 리뉴얼한 GS SHOP의 경우 색상 변화가 커서 로고타입의 리파인은 살짝 묻힌 감이 있습니다.


로고타입 중 O의 두께 조정을 통해 가시성을 높이고 다른 글자들과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3. 형태의 정교화

  • 곡선의 흐름, 모서리 라운딩, 네거티브 스페이스 등을 세밀하게 다듬기
  • 전체 인상은 같지만 더 매끄럽고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음


<Suzuki의 심볼 리파인 Before&After>


일본의 자동차 기업 Suzuki의 경우 심볼 엠블렘의 미세한 조정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부착되는 엠블렘의 입체적 표현 효과 변경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겹쳐서 비교하지 않으면 그 차이를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보람그룹의 로고 리파인 Before&After>


보람그룹의 경우는 비교적 변화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쉬운 사례입니다. 하지만 조금 둔감하신 분들은 똑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심볼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디테일의 변화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4. 컬러 시스템의 정비

  • 기존 색상 유지하되 명도·채도·톤을 섬세하게 조정
  • 인쇄·디지털 간 색상 일관성 향상


<Google의 G심볼 리파인 Before&After>


컬러 시스템은 위 사례 대비 상대적으로 변화를 알아차리기 쉬운 부분입니다. 기존 색상을 유지하면서도, 그라데이션 표현으로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Holiday Inn의 로고 리파인 Before&After>


호텔 Holiday Inn의 경우 시그니처 조합의 변화도 있습니다만, 변화의 핵심은 컬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녹색 계열이지만 채도 변화로 고급스러움과 신뢰감을 더했습니다.




5. 활용성과 확장성 보완

  • 모바일·앱·소셜 등 다양한 환경 대응을 위한 버전 정립
  • 픽셀 힌팅 및 가변형 로고 개발


이 항목은 예시 사례를 정리하기 어려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 담당 실무자들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만, 일반 소비자들은 알기가 어렵죠. 하지만 이 작은 차이들이 모여 전체적 브랜드 경험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사실! 놓치지 마세요.






왜 로고를 미세 조정해야 할까?


1.디자인 적용 및 노출 환경의 변화

과거에는 인쇄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모바일과 디지털 스크린이 중심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대비, 곡률, 간격은 시각적 완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리파인은 새로운 매체에 최적화하기 위한 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시간이 만든 미묘한 차이, 그리고 설계의 한계

시간이 흐르면서 트렌드와 시각적 감성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로고가 개발될 당시 조형적 완성도나 시각적 정합성이 충분하지 않았던 경우도 많습니다. 당시 내부 의사결정 구조나 일정의 제약으로 인해 디자이너가 끝까지 다듬지 못했거나, 일반인인 클라이언트가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그대로 승인된 경우도 적지 않죠.

이런 이유로 당시에는 훌륭해 보였던 로고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불균형이나 거슬림이 드러나게 됩니다. 리파인은 단순히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벽하지 못했던 조형적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3.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만드는 신뢰

사실 일반 소비자는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디자인의 완성도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안정감은 조화로움과 편안함으로 이어집니다. 이 미세한 인식의 차이가 바로 브랜드 신뢰도의 출발점입니다.


4.전문가로서의 의무

Feyenoord Rotterdam의 리뉴얼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세한 리파인으로 많은 축구팬들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디자인을 담당한 Studio Dumbar의 디렉터는 "그건 꼭 해야 하는 바른 일이었다(Do the right thing)"고 말했죠.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완벽을 위해 손을 대는 것.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인 로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디자이너로서 해야 하는 "올바른 일" 입니다. 리파인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로고 리파인의 단점과 리스크


리파인은 만능이 아닙니다. 그 "미세함" 때문에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1. 소비자에게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변화했다고 이야기를 해도 "도대체 뭐가 달라졌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예요.


2. 비용 대비 효과가 낮을 수 있다.

리파인에는 전문 디자이너의 인건비와 로고 교체 비용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인식 개선 효과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3. 디자인 자산 업데이트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

리파인은 감각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부 디자이너의 숙련도가 부족한 경우, 이전 버전과 새 버전을 구분하지 못해 로고를 혼용하거나 잘못 적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오히려 시각적 일관성을 해치고, 브랜드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4. "리뉴얼을 위한 리뉴얼"로 오해받을 위험이 있다.

명확한 이유나 목적 없이 진행하면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비용 대비 효과와 맞물려 "돈 낭비"라는 인식을 낳기 쉽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고 리파인이 필요한 이유


리파인은 단순히 손보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의 감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과정입니다.

일견 형태는 같아 보여도, 그 안의 담겨진 디테일은 브랜드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품질에 대한 신념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리파인은 아무 디자이너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오래 디자인했다고 해서 가능한 작업이 아니죠.

로고의 본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정제할 수 있는 고도의 안목, 세밀한 감각, 절제된 판단력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파인은 전문가의 의무이자 숙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고 리파인은 반드시 진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로고일수록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이, 브랜드의 진정성과 품격을 완성합니다.


2025 O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