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는 독보적이죠. 그런데 상대적으로 브랜딩 에이전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약 20년 전에 Desgrippes-Gobe(데그립 고베) 라는 브랜딩 에이전시가 무척 유명했었어요. 창업자 중 하나인 Mark Gobe의 책, <감성디자인 감성브랜딩>이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 덕분일까요? 우리나라의 CJ그룹의 CI, 칠성사이다 패키지 디자인 등 꽤 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어요. 다만 2008년 이후 인수합병으로 이름이 몇 번 바뀌고 소식이 뜸해졌는데요, 우리나라에서 Desgrippes-Gobe의 인지도를 대체할만큼 유명세를 가진 프랑스의 브랜딩 에이전시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Dragon Rouge, Brand Brothers 정도가 최신 브랜드 업데이트 소식과 함께 종종 접하게 되는 에이전시들인데요, 이마저도 저와 같은 브랜딩 업계의 '덕후' 정도만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소개할 Graphéine 역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 긴 역사와 탄탄한 실력을 가진 브랜딩 에이전시입니다.



Graphéine : The active substance of graphic design


에이전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자면 '그라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래픽 디자인을 활성화하는 물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2002년에 설립된, 업력이 꽤 되는 브랜딩 에이전시예요. 하지만 Graphéine이 진행한 대부분의 브랜딩 프로젝트가 프랑스 로컬 브랜드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에이전시의 존재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거든요.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에서 에이전시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포트폴리오'인데요 - 기업 의사결정자의 대부분이 '그 회사 무슨 브랜드 개발했는데?'라고 질문을 하거든요, 따라서 앞으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Graphéine을 눈여겨 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비가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디자이너의 내공이 보이는 블로그


브랜딩 업계에 글 잘 쓰는 디자이너가 흔치 않아요. 아무래도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시각화'에 강하다 보니, 구구절절한 설명 문구를 작성하기보다는 한 눈에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거든요. 글 쓰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디자이너들도 많고요. 그런데, 디자이너가 글까지 잘 쓰면 어떻게 될까요?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납니다. 콘텐츠의 질이 대폭 향상되는데요, 특히 내용의 이해를 돕는 그래프, 다이어그램, 예시 이미지가 탁월하여 글을 이해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Graphéine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바로 '글 잘 쓰는 디자이너'가 만든 콘텐츠입니다. 제가 Graphéine을 알게 된 것도 검색 사이트에서 블로그 글을 접하게 되어, 에이전시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게 된 케이스구요, 저희 브랜드비 사이트에도 몇 번 블로그 글을 공유한 적이 있어요.


참고로, 조금 오래되었지만(2016년) 재미있는 블로그 글을 하나 공유합니다.


My client is a graphic designer

디자이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글이예요. 이미지 확대 및 번역기와 함께 읽어보세요. "Bob Dylan wasn't black"이라는 코멘트가 보이시나요? 웃픈 현실입니다.




2. 직관적이고 명확한 디자인 컨셉 전개


1번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도 있는데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컨셉 설명을 어려워 합니다. 브랜딩 업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시니어와 주니어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자신의 디자인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표현하느냐'일 것인데요, 사실 업력이 꽤 된 디자이너들도 디자인 의도를 잘 설명하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옛날에는 디자인 의도나 컨셉 설명 없이 '느낌 아니까' 식의 디자인 선정이 많았거든요. 클라이언트들이 현란한 프리젠테이션과 화려한 이미지 슬라이드들에 현혹되기도 했구요.(수십 장의 이미지들을 보고 나서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아'의 상태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A급 이상의 브랜딩 에이전시라면 논리적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Graphéine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간결한 심볼 디자인이 많이 보이는데요, 일견 평범해 보이고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 의도를 살펴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디자인이예요. 브랜드의 핵심을 파악하여 쉬우면서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 이 형태가 이런 의도를 담고 있구나!'라고 감탄하실 겁니다.


<'나무 밑의 샘'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지향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Fontney-sous-Bois를 위한 심볼 디자인>



< 디저트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네임과 심볼 디자인 : Epilogue>



<파리에 있는 지질학 연구조직이라는 의미를 담은 심볼 디자인 : IPGP>




비록 요즘 유행하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사진이나 현란한 모션 그래픽이 없어서, 어떤 분들은 옛날 스타일이라고 치부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오래가는 브랜드, 생명력이 긴 브랜드는 '본질'을 담아 간결하게 표현한 디자인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Graphéine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도시나 지역, 학교 등의 공공적 성격이 강한 브랜딩 케이스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공적인 조직일 수록 모두가 납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 논리'가 필요하고, 또 Graphéine이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자인 설득력'을 고민하는 디자이너라면 Graphéine의 케이스 스터디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Graphéine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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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