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비는 이전 글에서 ‘대마초 합법화’라는 흐름 속에서 등장한 CBD 브랜딩을 다룬 바 있습니다.
금기였던 성분이 합법화되며 어떻게 새로운 브랜드 언어로 번역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전략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았죠. 이번에는 같은 맥락에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 카테고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CBD 화장품입니다.
CBD 화장품 역시 대마초 합법화 이후 빠르게 성장한 시장이지만, 현재는 초기와 달리 그 존재감이 많이 옅어진 상태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미 지나간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사라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 브랜딩의 구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빠르게 등장하고 빠르게 사라진 사례일수록, 시장과 브랜딩의 본질을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화장품 브랜딩에서 종종 반짝 떠올랐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특수 성분 트렌드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1. CBD 화장품이란 무엇인가
CBD는 Cannabidiol의 약자로, 대마에서 추출되는 비정신성 성분입니다. 환각을 유발하는 THC와는 달리, 진정·항염 효과가 알려지며 화장품 원료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국내의 경우 CBD는 현재 화장품 배합 금지 성분으로 규제되고 있어, 시중의 대마 화장품은 대부분 CBD가 함유되지 않은 대마씨유(Hemp Seed Oil) 제품입니다.
CBD 화장품은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피부 진정, 피지 조절, 항산화 등의 기능을 내세운 스킨케어 제품군입니다. 하지만 이 카테고리는 단순한 기능성 화장품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CBD는 특정 성분이기 이전에, 시대적 흐름 위에서 부상한 신규 트렌드였기 때문입니다.
2. CBD 화장품이 유행한 까닭
CBD 화장품의 부상은 성분의 발견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대마초 합법화는 CBD를 ‘금기된 물질’에서 ‘합법적 원료’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을 만든 것은 규제 완화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쌓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자연 유래 기능성 성분
CBD는 피부 진정 및 항염 기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염증, 아토피, 여드름 등 피부 질환 완화와 피부 톤 개선에 효과가 있는 성분으로 알려지며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2) 웰니스·클린뷰티 트렌드와의 결합
2019년 전후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웰빙(Well-being)’과 ‘천연 성분’을 중시하는 뷰티 트렌드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CBD는 단순한 성분이 아니라, 천연 식물성 기반의 웰니스 뷰티 원료로 해석되었습니다.
(3) 금기의 해제, 새로운 매력
대마는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합법화 이후, 이 금기는 오히려 매력으로 전환됩니다. 대마 성분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주는 신비감은 새롭고 흥미로운, 그리고 트렌디한 요소로 인식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CBD 화장품은 대마 성분이라는 독특한 서사와 피부 개선 기능이 결합되며, 뷰티 업계의 핵심 트렌드로 부상하게 됩니다.
3. CBD 화장품은 왜 빠르게 사라졌는가
<CBD와 마누카 꿀을 결합한 제품 Cannuka, 2023년 종료>
CBD 화장품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빠르게 존재감을 잃었습니다. 이 글을 위해 조사했던 자료의 상당수가 2020년 이전에 집중되어 있었고, 당시 주목받던 브랜드들은 현재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성분 트렌드의 변화라기보다, 카테고리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1) 마케팅 규제로 인한 한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디지털 광고 차단입니다. 구글, 메타, 틱톡 등 주요 플랫폼은 CBD를 ‘약물 관련 품목’으로 분류하여 광고 집행을 제한하거나 금지합니다. 특히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되었던 COVID-19 시기에는 CBD 화장품의 마케팅 활동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2) 양날의 검, 대마 이미지
초기에는 ‘힙한 성분’으로 주목받았지만, 대중화 단계에서는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들이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소비자에게 대마는 ‘마약’이나 ‘불법’의 이미지로 인식됩니다.
(3) 모호한 효능 대비 높은 가격
CBD는 원료 추출과 법적 검증 비용(THC 0% 등)으로 인해 가격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진정 효과를 위해 굳이 비싼 CBD를 선택하기보다, 병풀(CICA), 판테놀, 쑥 등 검증되고 저렴한 대체 성분을 선택하게 됩니다.
또한 바르는 CBD는 먹는 형태에 비해 즉각적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워 재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웠습니다.
(4) 복잡한 법적 리스크와 통관 문제
CBD는 국가별 규제가 상이하여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하는 데 큰 제약이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와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여전히 수입이 금지되거나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 글로벌 확장이 어려운 ‘반쪽짜리 제품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럭셔리 CBD 화장품의 대명사였지만 화장품 사업을 철수한 Lord Jones>
초기 CBD 화장품을 대표하던 브랜드 중 하나였던 Cannuka는 사업을 종료했고, Lord Jones는 화장품 라인을 축소하며 먹는 CBD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4. 살아남은 CBD 화장품의 브랜딩 유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브랜드는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습니다. 그 차이는 CBD라는 성분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있습니다.
(1) 리추얼·웰니스 라이프스타일형
CBD를 자연 유래 성분으로서 ‘상태’와 ‘감성’으로 번역했습니다.
< 리추얼 컨셉으로 용도와 장소에 따라 제품 네이밍을 한 This Place>
<CBD&Honey로 시작했지만 수제 웰니스 브랜드로 리포지셔닝한 Life Elements>
<'식물을 먹는 동물'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브랜드 네임으로 식물 성분 기반 화장품을 강조한 Herbivore>
(2) 과학·기능 중심형
CBD를 기능성 원료 중심으로 접근하여 ‘효능’으로 정당화합니다.
< 과학적 이미지로의 디자인 리뉴얼을 한 Juana>
<감성적 공감과 과학적 신뢰의 균형을 표현한 Prima>
(3) 럭셔리·프리미엄 이미지형
CBD를 고급 원료로 재해석하여 문화 기반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대마초의 유래와 연계한 스키타이 문명을 럭셔리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Ikuzai>
< 성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브랜드 네임으로 치유와 무해성을 표현한 Saint Jane>
5. 성분은 트렌드를 만들지만, 결국 남는 것은 브랜드다
CBD 화장품을 통해 우리는 화장품 마케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성분 중심 전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레티놀, 세라마이드, 펩타이드, 시카(CICA), EGF, PDRN 등 수많은 성분들이 급부상했다 조용히 잊혀지는 행태를 반복합니다.
CBD라는 새로운 성분은 일회성 구매의 이유가 될 수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선택의 기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저렴하고 검증된 대체제가 존재하는 경우, 이러한 한계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또 CBD는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그 속도만큼 빠르게 평준화되었습니다. 특정 성분에 의존한 차별화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며, 트렌드가 약해지는 순간 브랜드 역시 함께 약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성분’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브랜드는 CBD 자체를 설명하고 의존하기보다, CBD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어떻게 경험으로 번역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CBD 화장품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트렌드로서의 역할을 끝낸 성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성분이 아니라, 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