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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나 침구류에서 목화송이 모양의 코튼 마크(Seal of Cotton)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Cotton Incorporated가 만든 이 마크는 제품에 면 소재가 사용되었음을 알리는 소재 브랜드입니다. 또 다른 목화송이 형태의 코튼 마크인 Cotton USA는 미국산 면화를 의미합니다.
반면 Better Cotton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면화 생산량의 약 20% 이상이 Better Cotton 기준에 따라 생산될 정도로, 패션 산업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지속가능한 면화 인증 중 하나입니다.
<면화 인증마크 비교>
Better Cotton Initiative(BCI)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속가능한 면화 재배 기준이자 프로그램으로, 2,500여 개 회원사와 200만 명 이상의 농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Better Cotton은 바로 소비자 제품에 부착하는 BCI의 인증마크 브랜드입니다.
<리브랜딩 전 Better Cotton 로고 (2021~2025)>
반그린워싱 규제가 브랜드에 끼친 영향
그런데 최근 BCI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리브랜딩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디자인도, 브랜드 이미지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EU의 새로운 반그린워싱(Anti-Greenwashing) 규제였습니다.
EU는 최근 소비자를 오인시킬 수 있는 환경 관련 표현을 대폭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환경적 우수성을 암시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졌는데요, Better, Greener, Cleaner 처럼 상대적인 우수성을 암시하는 단어 역시 독립적인 검증 없이 제품에 표시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여기서 BCI가 맞닥뜨린 난관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직 이름 자체가 Better Cotton Initiative였기 때문입니다. 기업명은 규제에 해당되지 않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제품 라벨에서 접하는 제품 인증에는 Better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Better Cotton Initiative의 새로운 로고 (2025~) >
농부로부터 시작되는 지속가능한 면화 인증
이번 리브랜딩의 출발점은 EU 규제였지만,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히 인증마크를 수정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브랜딩 에이전시 RBL은 먼저 BCI가 어떤 조직인지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새롭게 정립한 브랜드 메시지 “It starts with farmers.”는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지속가능한 면화는 단순한 인증 라벨이나 기업의 마케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면화를 재배하는 농부들의 더 나은 농업 방식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브랜드의 무게중심을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에게 두며, 조직의 존재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브랜드 구조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아마도 프로젝트 초반에는 조직명 자체를 변경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Better Cotton Initiative는 15년 넘게 사용해 온 이름이며, 회원사와 농부, 파트너사가 이미 익숙하게 사용해 온 중요한 브랜드 자산이었습니다.
결국 RBL은 조직 브랜드와 소비자 인증 브랜드의 역할을 분리하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회원 및 산업 파트너와 소통하는 조직명은 Better Cotton Initiative를 그대로 유지하고, 소비자가 의류 라벨에서 접하는 인증 브랜드만 BCI Cotton으로 변경했습니다. Better라는 표현에 대한 규제 리스크는 해소하면서도, 조직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인지도는 그대로 유지한 것입니다.
< CI 로고(왼쪽)와 인증브랜드 로고(오른쪽) >
시각적 아이덴티티 역시 같은 방향으로 정비되었습니다. 기존의 b와 결합되었던 목화 심볼은 b를 제거해 보다 미니멀한 형태로 다듬었고, 로고타입 역시 CI와 BI가 공유하는 약칭 BCI를 중심으로 재정리했습니다. 컬러 또한 일반적인 친환경 브랜드의 녹색 대신 흙과 섬유에서 영감을 받은 자연스러운 팔레트를 적용해 농업의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모두가 선호하는 안전한 단어의 리스크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브랜딩 실무자들 사이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 중 하나로 꼽히는 단어, 바로 Better입니다. 브랜드 네임부터 비전, 미션, 슬로건까지, “Better Life”, “Better Choice”, “Better Tomorrow”처럼 다양한 형태로 활용됩니다.
클라이언트가 이 단어를 선호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Best나 No.1처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최고는 항상 그 위치를 도전받고, 또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더 나은’이라는 표현은 비교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인지, 기존 제품보다 더 나은 것인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보는 사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분명 장점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초기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포괄할 수 있고, 소비자 역시 현재를 기준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Better는 결국 비교급입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가?” 라는 질문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면, 감성적인 메시지로는 받아들여질 수 있어도 이성적인 소비자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상표권 측면에서도 식별력이 부족한 표현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차별화 요소와 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의 리스크가 생겼습니다. 바로 규제입니다.
EU는 소비자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적 우수성을 암시하는 표현을 더욱 엄격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BCI 사례는 Better라는 단어가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표현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Better는 여전히 좋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더이상 가장 안전한 단어가 아닙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표현을 넘어,
무엇이, 누구에게, 어떤 기준에서 더 나은지까지 설명할 수 있을 때 다시 설득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