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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라는 네이밍의 거대한 착각

최근 국내 IT 및 대기업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AX입니다.

한때는 모든 기업이 DX를 이야기했고, 이제는 그 자리를 AX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죠.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물론, AI와 직접적인 관련이 적어 보이는 산업까지 AX를 이야기합니다. 제조 AX, 금융 AX, 공공 AX 같은 표현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AX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AI의 핵심은 Intelligence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공적인 것(Artificial)’이 아니라, ‘지능적인 것(Intelligence)’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AX에는 Intelligence가 사라져 있을까요?


이 글은 단순히 약어 하나를 문제 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AX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그 네이밍이 현재 국내 AI 산업의 어떤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DX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AX


AX라는 단어를 이해하려면 먼저 DX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DX(Digital Transformation)라는 표현도 꽤 독특한 약어입니다. 일반적인 약어 규칙이라면 Digital Transformation은 DT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DX일까요?


영어권에서는 오래전부터 Transformation, Trans- 와 같은 단어를 줄여 표현할 때 X를 사용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Trans가 '가로지르다(cross)' 또는 '변환하다(transform)'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Transformation의 약어로 X를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표현이 영어권보다 일본과 한국에서 훨씬 강하게 정착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일본 경제산업성(METI)이 DX를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사용하면서 대기업과 SI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한국 역시 비슷한 산업 구조 속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DX는 단순한 기술 용어를 넘어 일종의 경영 언어가 되었습니다. ERP를 구축해도 DX, 모바일 앱을 만들어도 DX, 데이터 시각화를 해도 DX였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기술 혁신'처럼 들리는 강력한 슬로건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AX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Digital 대신 AI를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AX 역시 글로벌 표준 용어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AI 기업이나 글로벌 기술 미디어에서는 AI Transformation, AI Adoption, AI-native, AI-first, AI-powered Transformation 같은 표현을 훨씬 자주 사용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DX의 후속 개념처럼 AX가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즉 AX는 AI 산업 기반에서 탄생한 용어라기보다, DX에 익숙한 기업 환경이 만들어낸 경영 언어에 가깝습니다.






2. AI의 핵심은 Artificial이 아니라 Intelligence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AI라는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Artificial이 아닙니다. Intelligence입니다. 사용자들이 AI에 기대하는 것도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똑똑한 것”입니다. 우리가 ChatGPT나 Claude, Gemini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공적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처럼 추론하고 이해하고 답변하는 능력 때문이죠.


그런데 AX라는 단어를 보면 AI의 핵심인 Intelligence는 사라지고 Artificial만 남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단어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저의 네이미스트로서의 직업병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네이밍은 본질을 직관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런데 AX는 AI의 핵심 가치인 지능보다 ‘AI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라는 분위기만 전달합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문서 요약 기능 추가, 챗봇 연결, API 연동 수준의 단순 기능만 도입해도 AX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최근 글로벌 AI 기업들의 언어는 이미 Intelligence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생성형 AI를 넘어 추론(Reasoning), 에이전트(Agent), 자율 실행(Agentic) 같은 개념이 강조되고 있죠. 이제 시장은 사고 과정과 의사결정 능력 자체를 경쟁력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즉 AI 산업의 핵심은 점점 Intelligence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포커싱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AX라는 단어를 통해 모호한 미래 변화와 혁신 이미지만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3. 많은 AX는 사실 Intelligence보다 Integration에 가깝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현재 국내의 상당수 AX 프로젝트는 실제로 자체 Intelligence를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OpenAI, Google, Anthropic 같은 글로벌 기업이 만든 Foundation Model 위에서 동작합니다. 즉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 구축하는 것은 Interface, Workflow, 데이터 연결 구조, 업무 자동화 환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실제 업무 환경과 AI를 연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을 동일한 “AI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발생합니다. Intelligence를 만든 기업과 Intelligence를 활용하는 기업은 분명 다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AX라는 단어는 그 차이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마치 모두가 동등한 AI 기업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죠.


최근 국내 기업들이 강조하는 AI Agent, Agentic AI 역시 이러한 산업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많은 Agent 서비스는 OpenAI나 Anthropic의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서 동작하는 실행 레이어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Intelligence를 만들어낸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Intelligence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셈입니다. 이것은 과거 SI 산업과도 꽤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AX 프로젝트의 본질은 Intelligence의 개발보다 Integration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4. AX는 어쩌면 AI 시대의 FOMO를 표현한다


기업들은 AI 시대에 뒤처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AI를 도입했다”, “우리는 AX를 추진 중이다”라는 선언이 필요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미래 산업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AI 도입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조직 안에 Intelligence를 어떻게 축적하고 활용할 것인가입니다.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며, 어떤 의사결정을 더 똑똑하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죠.


하지만 지금 시장의 많은 AX는 그보다 “AI 시대에 탑승했다”는 선언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AX라는 단어는 어쩌면 AI 기술력을 강조하기보다도 AI 시대를 마주한 기업들의 불안과 조급함을 더 잘 설명하는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5. AI 이미지가 아닌 AI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좋은 네이밍은 본질을 압축합니다. 반대로 좋지 않은 네이밍은 본질을 가리고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죠. 그리고 그 왜곡된 이미지가 본질과 충돌할 때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AX는 매우 효율적인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짧고,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있어” 보이며, 역동적인 느낌을 주죠.

하지만 동시에 AI의 핵심인 Intelligence를 숨겨버립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AX라는 단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지금 시장이 ‘지능’보다 ‘AI를 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더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메타버스를 이야기했습니다. 일부는 사명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며 미래를 준비한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기술과 시장의 흐름이 바뀌자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사장되었습니다.


AX 역시 메타버스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것이 AI의 본질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단지 AI 시대에 동참하고 있다는 인상을 전달하는 슬로건에 불과하다면 말입니다.


물론 AI의 본질을 고민하기 보다 'AI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AX는 오히려 매우 성공적인 네이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