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비는 네이밍을 20년 넘게 해왔지만, 항상 어렵다고 생각해요. 수학공식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규칙이나 법칙이 있다면 참 편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네이밍의 흐름을 찾아보고자 리뷰를 작성했어요.
비록 이 리뷰가 네이밍의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부디 비교 및 참고를 통해 각 브랜드 본연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1. 커뮤니케이션 효율성 I - 축약형 네임
짧고 쉬운 네임은 네이밍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넘쳐나는 브랜드 시대에 짧고 쉬운 네임으로 상표권을 획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권위와 역사를 중요시하는 조직에서는 짧은 네임이 브랜드를 자칫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죠.
위의 커뮤니케이션 명칭 변화 사례들은 긴 네임을 가진 단체들의 절충된 네이밍 전략을 보여줍니다. 정식 명칭은 유지하되 보다 간결한 커뮤니케이션 네임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을 추구하죠.
Philadelphia Museum of Art의 경우 축약형 네임 PhAM을 위해 공식 명칭을 Philadelphia Art Museum으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밍에 있어 단어 선정 뿐 아니라 순서도 매우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아예 정식 네임을 과감하게 축약한 사례도 있습니다.
기존 네임의 브랜드 자산이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핵심 단어나 표현 위주로 줄이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나우어데이즈의 경우는 조금 다른 케이스인데요, 기존 네임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하지 못했기에 보다 짧고 쉬운 네임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커뮤니케이션 효율성 II - 이니셜 네임
긴 네임을 줄이는 방식 중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바로 이니셜 네임이죠.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이니셜 네임 유형은 매년 등장하는 유형입니다.
Quem disse, Berenice?는 브라질의 화장품 브랜드인데요, "누가 말했니, 베아트리체?" 라는 뜻의 독특한 문장형 네임입니다. 굉장히 특이해서 기억에 남지만, 솔직히 네임이 긴 것은 사실이죠.
Signature Kitchen Suite의 경우는 설명형 네임을 축약해서 이니셜화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제조사를 오해할 위험성이 있어보입니다.
Kongernes Samling의 경우 '왕의 Kongernes'라는 단어를 '왕립의 KGL - den Kongelige'로 변경하여 중립성과 권위를 표현했죠.
기존에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한국인은 이니셜 네임을 참 좋아합니다. 굳이 줄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짧은 네임도 이니셜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니셜 네임은 중립적이기에 무색무취의 네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브랜드의 개성을 버리고 다소 평범해지는 것은 아닌가 조금 우려됩니다.
3. 기업 네이밍 - 지주사와 Spin-off
2025년에는 새로운 네임의 지주사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어요. 특히 절대 다수의 이니셜 약칭 네임을 채택하는 성향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미스토, 인베니와 같은 새로운 네임의 등장은 참 반갑습니다. 다만 소비재 브랜드와 달리 기업 브랜드는 광고홍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일반 대중에게 인지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Versant는 미국의 미디어 그룹 Comcast에서 분리독립한 새로운 미디어 그룹입니다. 분리독립으로 인해 산하의 다양한 미디어 브랜드들 역시 네임 변경이 이뤄졌는데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주사인 Versant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내 조직의 분리독립으로 새로운 네임을 채택한 사례들을 모아봤습니다.
기존의 유명 브랜드의 보증없이 독자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는 네임들입니다.
4. 연관성과 명확성
브랜드 네임의 연관성과 명확성은 앞서 설명한 커뮤니케이션 효율성을 위한 또다른 전략입니다.
신세계V로 변경한 SI빌리지는 개인적으로 진작에 변경했었어 하는 올바른 변화라고 생각해요. SI를 듣고 신세계 인터내셔널을 바로 연상할 일반 소비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기업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의 관점 변화를 보여줍니다.
모두가딜러를 축약해 모딜로 변경했지만, 기존 브랜드 인지도가 강력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생소한 네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업종표현어인 '카Car'를 붙이게 되었죠.
브라질의 인프라 기업 CCR은 간접적으로 기업 비즈니스 분야를 표현하는 네임인 Motiva로 변경했습니다. (참고로 기존 네임인 Concessões Rodoviárias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5. 브랜드 네임의 회귀
이 사례들은 무조건 짧은 네임과 이니셜 네임을 선호하는 성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HBO Max는 빈번한 네임 변경으로 빈축을 샀는데요, 돌고 돌아 결국은 HBO Max로 정착했습니다.
현대적이고 짧은 네임을 표방하며 Abrdn으로 변경했던 Aberdeen 역시 결국 원래의 네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요, 글자수가 줄어든다고 무조건 쉬운 네임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KDB산업은행의 경우 민영화 포기라는 명분 하에 한국산업은행으로 돌아왔습니다. KDB라는 명칭은 약 20년간 사용되었지만 독립적인 브랜드 네임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항상 산업은행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야 했고, 약칭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긴 네임이 되어버렸었죠.
6. 글로벌화를 위한 네이밍 전략
글로벌화는 비영어권 브랜드들의 성장을 위한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근한 로컬 브랜드 네임들이 글로벌화를 위해 채택한 다양한 네이밍 전략들을 살펴보세요.
NaiXue는 발음이 어려운 글자를 영어 표현으로 대체했고, 산돌구름은 전혀 다른 새로운 네임을 채택했습니다.
터키의 생활 위생용품 기업 Eczacıbaşı는 외국인에게는 생소한 고유명사에서 업종을 연관지을 수 있는 네임으로 변경했죠.
7. 브랜드비가 선정한 Best 네이밍
주관적 취향이 많이 들어간 브랜드의 2025년 베스트 네이밍입니다.
2025년에 등장한 수많은 네임 중 3개만 선정하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선정하지 않았다고 훌륭한 네이밍이 아닌 것은 아니예요!
또 개인의 취향 및 관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노더럽은 방송인 노홍철과 무신사가 합작하여 런칭한 치약 브랜드입니다. '더럽지 않다'는 의미와 '노홍철 + The Love'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네임이 재미있어요.
참고로 회사이름도 참 개성적이고 재미있습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하는 네임은 으레 각각의 네임을 하나씩 가져와 결합하거나, 이니셜 조합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London&Capital과 Waverton Investment Management가 합병하여 탄생한 새 이름, W1M은 굉장히 독특한 조합이예요. 시각적으로 WIM을 연상시키면서 London&Capital의 설립 초기 주소지이기도 합니다.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이 네임을 찾기까지 수많은 탐색과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보안은 개인적으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브랜드비 초기부터 트렌드 키워드로 뽑아서 모으고 있어요!)
과거 이 분야 네이밍 프로젝트도 수행한 경험도 있는데요, 보이지 않는 복잡하고 정교한 보안기술 및 방법론을 하나의 네임으로 표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일반인에게는 외계어와 같이 느껴지는 전문용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과 사이버보안 전문가들 특유의 세계관을 해석하여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Blackwall이라는 네임을 봤을 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번한 해킹으로 인해 공공재가 되어버린듯한 나의 개인 정보를 이 Blackwall이 지켜준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이상으로 2025년 네이밍 리뷰를 마침니다.
2025년 리뷰는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