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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엄격함의 융합을 추구하는 브랜딩 에이전시

브랜딩 에이전시들은 종종 자신의 로고 디자인을 바꿉니다. 그 이유에는 내부 조직의 변화나 외부 트렌드의 반영 등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프로젝트가 별로 없을 때, 즉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리브랜딩을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디자이너들을 놀게 하지 않겠다는 경영자의 마인드라고 할까요?

이번에 Wolff Olins의 리브랜딩은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첫째로는 Wolff Olins가 설립된지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의 변화라는 점, 둘째로는 요즘 가장 핫한 브랜딩 에이전시로서 정상의 자리에서 올라섰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자사의 브랜드를 정비하는 점일 것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브랜딩 전문가인 브랜딩 에이전시가 자사 브랜드는 손을 놓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Wolff Olins의 절차탁마하는 모습은 역시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유명해서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어 미뤄왔던, 글로벌 브랜딩 에이전시 Wolff Olins에 대한 소개를 시작해 볼께요.





1. 마법과 수학, 그리고 창의성과 엄격함



이번 Wolff Olins의 리브랜딩은 회사 이름의 첫글자인 W와 O의 디자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형태적으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글자의 조합이 이상하고 조화롭지 못하다는 평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상반된 모습이 바로 Wolff Olins 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Wolff Olin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 넘치는 형태의 W는 뱀 같다는 평이 많았는데요, Wolff Olins는 이를 "Enjoy the Ride"를 표현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과 함께하는 비선형 여정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상반되는 O의 형태는 정 원에 가까운 형태로 Wolff Olins의 전략적 엄격함과 정확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사실 이 W와 O의 상반된 모습 및 가치는 Wolff Olins의 설립부터 지녀왔던 것이기도 해요.






2. 자유분방한 디자이너와 전략적 광고인이 설립한 브랜딩 에이전시



Wolff Olins는 1965년 런던에서 설립되었습니다. 네, 역시나 많은 브랜딩 에이전시의 이름이 그러하듯이 창립자의 이름에서 회사명을 따왔어요. 디자이너인 Michael Wolff와 광고인인 Wally Olins가 함께 설립했거든요. 위키피디아에는 공동 설립자로 James Main이 기입되어 있는데요, 관련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서 일단 생략합니다. (만약 핵심 인물이었다면 회사 이름에 들어가지 않을리 없죠!)



디자이너 Michael Wolff는 상대적으로 일찍 Wolff Olins를 떠났는데요, 설립 후 18년만인 1983년 Wolff Olins를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 Michael Wolff & Company를 설립합니다. 최근에 그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는데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가 그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Michael Wolff가 Wolff Olins를 떠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설에 의하면 그의 자유분방함이 회사의 경영 방침과 맞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아이덴티티는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번 리뉴얼된 로고의 W를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어요.)



광고인인 Wally Olins는 브랜딩 업계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브랜드를 최초로 '정체성 Identity'으로 정의한 사람이 바로 Wally Olins라고 해요. 또 2001년 Wolff Olins를 그만두고 나서 또 다른 글로벌 브랜딩 에이전시인 Saffron Brand Consultants를 설립했습니다. 영국의 훈장인 CBE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Wally Olins는 전문가답게 퍼스널 브랜딩도 잘 해서, 동그란 안경과 나비 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광고인'이라고 하면 굉장히 자유분방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요, Wally Olins는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광고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설립한 브랜딩 에이전시인 Saffron이 전략적 브랜드 컨설팅을 강점으로 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어요. Wally Olins가 바로 리뉴얼된 로고의 O를 담당합니다.






3. 창업자가 떠나도 유지되는 아이덴티티


Micheal Wolff는 1983년에, Wally Olins는 2001년에 Wolff Olins를 떠났습니다. 창업자의 이름을 걸고 설립했는데, 두 창업자가 모두 떠나버렸다니 아이러니하죠.

사실 이 문제는 국내 브랜딩 에이전시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창업자나 핵심 인재가 기업의 소유주가 아닌 경우, 십중 팔구 모기업을 떠나 독립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에이전시가 디렉터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지라, 그들이 떠나고 나면 포트폴리오의 색깔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즉, 에이전시의 정체성이라기 보다는 크리에이터의 정체성이 더 도드라지고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죠.


"지금 이 회사가 무척 인기있고 잘 나가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이직하거나 노화로 감각이 떨어지면 그 때도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에이전시 구성원의 변화 및 노화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브랜딩의 관점에서 보면 브랜딩 에이전시가 정작 자신의 브랜딩은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수십년간 브랜딩 업계에 몸담아 오면서 계속 고민해왔던 부분이기도 해요.


그런데 Wolff Olins는 드물게도, 창업자가 모두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인지도' 뿐 아니라 '정체성'을 잘 유지해 오고 있는 에이전시입니다.

수십 명의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개개인의 네임 밸류와의 시너지를 내며 운영하고 있는 Pentagram과 달리, 상대적으로 Wolff Olins는 개인보다는 기업의 브랜드로서 인지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Micheal Wolff와 Wally Olins가 이 회사에 없다고 컴플레인하지 않으니까요.


아래에는 개인적으로 Wolff Olins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5개의 브랜딩 프로젝트들을 소개합니다.






London Olympics 2012 (2012년)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어버렸는데요, 사실 이 런던 올림픽 로고는 당시 발표되었을 때 반응이 썩 좋지 않았어요. '글자를 인지할 수 없다' '런던스럽지 않다' '장난하냐' 등 부정적 의견이 많았죠. 기존 올림픽 로고와, 그리고 지금까지의 올림픽 로고와 전혀 다른 디자인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런던 올림픽과 관련해서 제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스파이스걸즈의 공연과 이 로고 디자인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영국신사'로 대변되는 클래식하고 점잖은 영국의 이미지를 혁신적이고 독특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바꿔놓았죠.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인 스포츠 업계에서 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전략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ENEL (2016년)



ENEL은 이탈리아의 국영에너지 기업입니다. 8년 전에 개발된 로고이지만 지금 봐도 전혀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죠? 아래 런칭 비디오를 보면 컨셉이 더 잘 전달됩니다.


<ENEL Launch Video : Vimeo>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을 시각화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요, 예전에 방송국 브랜딩을 할 때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타원형 접시(전파를 수신하는)만 주구장창 그리는 것을 보고 무척 안타까웠던 것이 떠오르네요. 어려운 개념을 누구나 쉽게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름짓는다고 생각해요.






Uber (2018년)



Uber 역시 발표 당시 '좋아요' 보다는 '싫어요'가 더 많은 반응이었어요. 심볼 없이 간결한 워드마크로 표현된 로고 디자인은 기존 관념으로는 '디자인이 안된' 것으로 보여졌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앱 서비스 브랜드는 반드시 심볼이 있어야 하고, 글자체는 디지털 및 첨단 느낌이 나는(예를 들면 획의 마무리가 뾰족한) 독특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고정관점을 갖고 있는데요, 전혀 다른 디자인의 Uber는 'IT서비스답지 않다'로 받아들였죠.

하지만 디자인을 들여다보면 최근 브랜딩 트렌드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어요. 고유의 전용서체를 개발하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상에서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통합적 디자인 시스템 구축한 것이 말이죠.





리움 (2021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리움의 리브랜딩을 접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전 로고와 전혀 다른 파격적인 디자인이었기 때문이죠. 리움 역시 이 파격적인 디자인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리브랜딩 소식을 접하고 바로 리움의 웹사이트와 SNS를 찾아보니, 이 파격적인 로고는 숨겨져 있고 다소 평이한 워드마크만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2년이 지난 지금도 굉장히 소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보수적인 우리나라 문화에서 지나친 파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럴꺼면 왜 선택했냐고 묻고 싶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컨셉의 전개나 형태의 표현 모두 창의적이고 혁신적이어서 좋아합니다. Wolff Olins다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실제 활용이 어려운 점은 혁신적 디자인이 갖고 있는 숙명이라고 할까요? 실무 단계에서 브랜드를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텐데요, 비용에 연연하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GSK (2022년)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리뉴얼된 GSK는 제 취향은 아니예요. 이전 조약돌 모양 심볼이 제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제약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아 굳이 왜 바꿔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케이스스터디와 관련 기사들을 들여다보니 새롭게 변화한 GSK에 적합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COVID19 이후 전통적 제약 산업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이상 '알약'이 제약을 대표하지 않게 되었죠. 아니 '제약'이라는 단어조차도 적합하지 않게 되었어요. 다들 '바이오'라는 키워드를 붙이고 있거든요. GSK의 로고는 바이오제약 산업을 대표하는 DNA 구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3D 버전으로 개발된 로고 영상을 보시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공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저로서는 3D큐브 형태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어,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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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O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