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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브랜드 개발비용은 얼마일까?

브랜드 개발은 무형의 자산을 창조하는 업무로서, 브랜드 개발 비용은 기본적으로 창조자의 인건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만, 업무 분야가 특수하고 종사자가 많지 않아 명확한 인건비의 기준이 없었으며, 과거에는 SW개발자 기준으로 미루어 산정하곤 했습니다. 최근에야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에서 디자이너의 인건비를 경력에 따라 정리를 했는데요, 이 모델의 원형인 SW개발자의 인건비 단가는 세부 업무 별로 평균 단가를 정리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개발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시각디자이너>와 SW개발의 디자이너인 <UI/UX 디자이너>의 인건비를 비교해 볼까요?



위의 비교표를 보시면, 20년 이상 경력의 총괄 시각 디자이너 인건비가 상위25% UI/UX 디자이너보다 10%이상 낮고, 4년~8년 경력의 초급 시각디자이너 인건비가 하위25% 인건비 수준입니다. 특히 최상위 경력자 바로 아래단계인 특급 시각 디자이너의 인건비가 UI/UX 디자이너 평균 인건비보다 10%이상 낮은 점은 충격적입니다.

한 업계에서 16년 이상 일을 해왔다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데요, 평균치로 추정했을때 8년~12년차 UI/UX 디자이너 인건비보다 더 못 받고 있는 셈입니다.



두 분야의 디자이너의 인건비가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SW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SW업계 인건비가 많이 상승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SW개발자 인건비 중에서도 UI/UX 디자이너의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그렇게 보면 시각 디자이너의 인건비는 매우 저평가되어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다른 브랜드 개발 업무인 기획자 및 네이미스트의 인건비는 시각 디자이너보다 더 낮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두번 째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초임으로 볼 수 있는데요, 등급별 단가인 보조 디자이너(1년~4년)의 노임으로 추정하면 약 연봉 3200만원 정도 수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3천만원 미만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많은 주니어 브랜드 크리에이터들이 열악한 연봉을 견디지 못하고 2~3년차에 다른 업종으로 옮기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결국은 브랜딩 또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만으로 낮은 임금을 묵묵히 견뎌내며 업무를 해오는 소수의 브랜드 크리에이터들이 남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인건비 상승률은 연차가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급에서 특급으로의 상승률은 4년 간 5%에 그치고 있습니다! 물가 상승 반영도 못한 임금 상승률입니다.) 20년 이상 경력의 총괄 디자이너 평균 연봉이 7천만원이 되지 않는데요, 실제 30년 넘게 일하고 계신 다수의 원로 디자이너들을 감안하면 연차 대비 연봉은 더 낮은 셈입니다.

 

저는 세번 째 원인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개발이라는 업무에 대해 국내 시장에 형성된 단가가 매우 극단적이며, 또 낮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회사의 로고, 즉 CI 디자인을 개발할 때,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몇억까지 차이가 납니다. 몇 십만원 짜리 CI 디자인은 공모전 플랫폼 또는 명함 제작업체의 서비스 개념으로 제공되고 있고요, 억대의 CI 디자인 개발은 해외 브랜딩 에이전시가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십만원대 디자인은 결과물인 로고 디자인을 제품으로 생각하여 ‘구매’한다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수많은 고민과 테스트, 정교화 과정을 거친 창작물을 일정한 프로세스 하에 찍어내는 ‘제품’을 기준으로 책정하다는 게 합리적일까요? 브랜드는 무형의 지적재산인데요, 그 가치는 결과물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 아닌 투입된 인건비 기준으로 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CI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비용을 산정해 볼까요?


일반적으로 전문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CI 디자인 개발을 할 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명과 디자이너 3~4명이 팀을 이뤄 진행합니다. 업무 범위나 일정에 따라 가감이 됩니다만, 일단 이 기준으로 산정해보죠. 2021년 디자이너 등급별 노임단가 기준 하에 총괄디렉터 1명, 보조디자이너 3명 투입을 가정했습니다.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단순 인건비만 최소 1400만원이 넘게 드는데요, 사실 브랜딩 에이전시가 인건비만 받으면 기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세금, 4대보험, 사무실 임대비용, 관리비, 컴퓨터 등 HW장비, SW이용료 등 부대 비용이 필요해요. 디자이너들의 필수 장비인 아이맥 및 어도비 SW 가격이 비싼 건 알고 계시죠? 

Simulation I.은 정말 최소 필요비용만 산정한 금액이예요. 이 정도 금액을 받으면, 보조 디자이너 월급은 줄 수 있지만 총괄 디렉터는 정규직을 보장하지 못하겠죠. 또 영업이익은 적자를 면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일 겁니다.


Simulation II.는 일반적으로 인건비 기반 업무를 하는 기업이 책정하는 기준 하의 금액이예요. Simulation I.과 금액 차이가 50%이상 발생하네요.


그런데, 실제로는 최저 인건비도 못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경쟁을 하다보면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을 낮추는 경우가 발생하거든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임대료, 장비, SW비용은 줄일 수 없고…. 그렇다보니 결국은 인건비를 줄이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환경 하에 브랜드 개발 비용은 수십여년 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용역을 제공하는 공모전이나 프리랜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전반적인 단가는 더 낮아지고 있죠.



무한경쟁을 하는 자유시장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몇 년 전 패션 디자인 업계의 ‘열정페이’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유명 스타 디자이너가 본인의 유명세와 지위를 앞세워, 거의 공짜로 인턴 직원들을 일하게 해서 사회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었죠.


그런데 브랜딩 업계에서도 다른 형태의 ‘열정페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로, 클라이언트에 의해서요.


브랜드 네임이나 디자인 공모전 플랫폼을 보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몇백만원의 상금을 걸고 진행을 하는데요, 1등 외의 참가자에게 돌아가는 비용은 없습니다. 결국 1등을 제외한 참가자들에게는 당당히 ‘열정페이’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죠. 이용 후기를 보면 클라이언트들도 1등 외의 우수한 참가자들에게 비용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의견이 많아요.

본인들도 참가자들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고 있지만, ‘비용절감’ 또는 ‘가성비’라는 미명 하에 공모전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프리랜서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공모전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창작물의 가치를 매우 헐값으로 매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딩 업계도 ESG 경영이 필요합니다.


요즘 ESG경영이 화두이죠.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있어 바른 영향력을 끼치고, 모두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기업의 경영활동을 말합니다.


브랜드 크리에이터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더 좋은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이 탄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브랜딩 에이전시들이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업무를 맡기는 클라이언트가, 나아가 사회 전반이 브랜드 창작물과 그 과정에 투입된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중국어에 一分钱一分货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원을 쓰면 1원 가치의 물건 밖에 얻지 못한다는 뜻이죠.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가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브랜드 크리에이터가 브랜드 개발에 들인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2022 F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