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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등록과 상호권

"사명 개발 시 상표 등록을 꼭 해야 하나요?"


사명, 즉 기업 브랜드 네임 개발 시 항상 받는 질문입니다.

바쁘신 분들이 많으니까 답 먼저 알려드릴께요.


"아니요. 상호 등록만 하셔도 기업 운영하시는 데 무리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부분 아리송해 하면서 동시에 불안해 하시더라구요.

사실 저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와 미팅 전에 상담 받았던 변리사 사무소나 네임 개발 전문사가 "상표 등록을 해야 된다"라고 조언을 했기 때문이죠.

모두가 상표 등록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왜 저만 청개구리 처럼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릴께요.



1. 상호와 상표는 다릅니다.

상호는 회사를 등록하기 위한 필수 기본 요소입니다. 회사의 이름이 없으면 그 존재를 알기도 어렵고, 부를 수도 없잖아요?

다만 같은 이름을 가진 회사가 있을 경우, 비즈니스 하는 데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그 지역 안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등록은 할 수 없어요.


상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기본 요소입니다. 상호와는 달리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아도 판매를 할 수 있어요. 즉, 필수 요소는 아니란 얘기죠.

상표 등록의 목적은 '나의 브랜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예요. 브랜드가 잘 되면, 미투 브랜드나 짝퉁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요, 이 때 상표 등록이 되어 있으면 법적 보호의 근거가 되죠. 혹시 나중에 브랜드를 판매할 일이 있을 경우, 상표 등록 여부가 브랜드 가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해요.


상호와 상표는 속성이 다르고, 법적 보호 범위도 달라요.

그래서 기왕이면 둘 다 등록을 받아 두는 게 좀 더 넓은 범위의 지적재산권을 방어하는 데 유리합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그럼 상표 등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반문하실 수 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께요.



2. 새로운 이름으로 상호 등록은 쉽지 않아요.


2019년 신규사업자 수는 약 150만입니다. 최소 150만 건 이상의 상호 등록이 이뤄진다는 얘기죠. 상호 변경은 제외한 숫자입니다.

당연히 누구나 원하는 "짧고, 쉽고, 의미가 좋은" 이름은 대부분 선점이 되어 있어요.

등록이 안된 이름이 있을 수 있지 않냐고요? 기본 확률은 매우 낮고요,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선행 사업자가 안타깝게도 폐업을 했다던가, 상호를 바꿨다든가 라는 사건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또 이런 이름은 불길하다며 싫어하세요.

그래서 "완전히 똑같지만 않으면 등록 가능"한 상호 등록의 속성을 고려해서 뒤에 여러가지를 붙여 봅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만은 않은 게 이름이 복잡하거나 길어지지 않도록 붙일 수 있는 키워드가 한정적이거든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비슷해요.


법인의 경우는 좀 더 고려 사항이 많아요.

법인 설립 지역 외에도 타 지역에 동일 상호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거든요. 나중에 코스닥 상장이라던가, 글로벌 진출을 했을 때 이름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안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문제가 생기면 또 보완할 수 있는 방법도 있기는 있어요. 이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얘기할께요.)




3. 그런데 상표 등록까지 한다고요?


상호 등록이라는 허들을 넘기도 쉽지 않는데, 상표 등록은 경기 규칙이 다른 또 다른 허들입니다.

상호 등록이 되었다고, 상표 등록이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고요,

상표 등록이 되었다고, 무조건 상호 등록이 되는 것도 아니예요.

다시 말씀드릴께요. 상호와 상표는 경기 규칙이 달라요.


연간 신규 상표 출원 건수는 얼마일까요?

2020년 기준 약 25만 건입니다. 상호 등록보다 쉬운 것 아니나고요? 단언컨대 아닙니다.

상호는 '동일성'을 보지만, 상표는 '유사성'을 봅니다. 지정한 상품서비스 류에서 유사한 상표가 있을 경우 등록이 거절됩니다.

연간 등록 상표 건수는 약 11만 정도인데요, 등록률이 절반도 안되는 셈이예요.

'유사성'의 판단 기준은 나름 규칙이 있지만, 주관적인 요소도 있기 때문에 심사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중간 대응을 해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표 출원 건수가 매년 늘어나다 보니, 상표 출원에서 등록까지 걸리는 기간도 약 1년 6개월 정도로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상품과 서비스 류 지정이 상표 등록의 난이도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인데요,

굉장히 많은 클라이언트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세요.

"기왕 상표 등록 하는 것,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 아냐?"


당연히 좋죠, 등록이 된다면 말이죠.

기업 브랜드 개발 시, 처음에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 뿐 아니라,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 분야까지 다 넣어서 검토해 달라고 하시다가, 상표 등록이 안되는 것을 알고 결국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4. OMG!!!! 해외 상표 등록까지 한다고요?


상호와 상표를 통과하는 것도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인데요, 거기다 해외 상표까지 검토한다니...... 그 난이도가 상상이 가시나요?

해외 상표는 비용과 시간도 굉장히 많이 들어요.

글로벌 진출의 포부를 가진 분들이 이상적인 모습만 그리며 글로벌 브랜드 개발을 시작했다가, 결국은 상표 등록의 벽에 부딪혀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습니다.

글로벌 상표 등록 하면 당연히 좋죠, 시간과 돈이 매우 많다면 말입니다.




5. 필터가 많을 수록, 통과하기 어려워요.

코로나 초창기에 마스크 브랜드들이 3중 필터 또는 4중 필터라며 제품력을 강조했던 것을 보셨을 꺼예요. KF80보다 KF94가 필터가 더 많고 두꺼워서 미세 바이러스 차단이 된다는 것도 잘 아실 겁니다. 브랜드 네임 개발도 마찬가지예요. 겹겹이 쌓인 필터를 통과할 수록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데요, 6번까지 통과할 확률은 0.01%도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4번까지도 쉽지 않아요.




6. 상호 등록도 되고, 상표 등록도 되는데... 맘에 안 들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상호 등록'만 검토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가장 큰 이유예요.

수 많은 필터를 통과한 이름은 당연히 '길고, 어렵고, 생소한' 이름일 수 밖에 없어요.

이미 등록된 상호와 상표의 숫자를 생각해 보시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통과된 후보안을 보고 나서야 그제서야 체감을 하세요.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위해 다시 하나씩 하나씩 조건을 줄여가는데요, 결국은 '상호 등록만 되어도 좋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브랜드라는 게 자신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이름이고,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불리는 이름 중에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임직원의 선호도가 매우 중요해요.

아무리 법적 보호를 넓게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계속 쓸 수는 없잖아요?




기업 브랜드 개발 목표를 '상호 등록'이라는 필수 조건만 충족시키는 선에 두면 좋은 점이 많아요.


첫째,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네임 후보안을 검토하면서 미처 몰랐던 취향 및 선호도를 알 수 있어요.

둘째, 개발 방향성이 좁혀지면 "마음에 드는" 네임을 "빨리" 만날 수 있어요.

셋째, 상표 등록 여부는 Option으로 생각해주세요. 운이 좋게 상표 등록이 가능 할 수도 있고, 상표 등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상품서비스류를 조정할 수 있어요. 정 안되면 별도 브랜드를 개발하면 됩니다. 별도 브랜드는 '상호 등록'이라는 허들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발이 용이하죠.

넷째, 전반적인 개발 기간 및 리소스(브랜드 크리에이터들의 피땀눈물 이죠!), 그리고 비용(상표 검색)이 대폭 절감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스마트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브랜딩 프로세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상호 등록만으로는 불안하시다구요?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릴께요.



A. 상호권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2019년 '한국타이어'가 다양한 미래 비즈니스 확장을 목표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는데요, 기존에 존재하던 기업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호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어요. 한국테크놀로지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견 코스닥 상장 기업이예요. 두 기업 모두 자동차와 연관된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한국테크놀로지가 코스닥 상장기업으로서 주지성(널리 알려짐)을 갖고 있다고 판단, 법원은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어줬어요. 결국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앤컴퍼니'로 다시 사명을 바꿔야 했죠.

그런데, 최근 법원 판결에 따르면 상호권 침해는 인정하지만, 상호권 침해로 인한 손해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해요. 아마도 한국앤컴퍼니가 침해를 인정하고 발빠르게 사명을 변경한 이유가 크지 않나 싶네요.




B. CI디자인 또는 제품/서비스 브랜드가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제일건설(주)와 (주)제일건설은 각각 광주시와 익산시에 위치한 중견 건설회사입니다.

저도 브랜딩 업무 초기에 많이 헷갈렸던 기업 브랜드이고, 지금도 여전히 구분이 어려운데요, 아마 두 기업 모두 서로 오인되는 경험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아요.

사업자 등록지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름, 같은 업종이지만 상호 등록이 가능하셨던 것으로 보이고요, 두 기업 모두 역사와 전통을 지녔기에 사명을 변경할 생각은 안 하신 것 같습니다.

대신 별도의 주거 브랜드를 개발하여, 사명보다는 브랜드 중심으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업 브랜드는 '신뢰성'을 담당하기에 차별화를 위한 새로운 이름보다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이름으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효과적이예요. 또한 최근에 (주)제일건설은 CI를 변경하여 확실한 시각적 차별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상표등록이 확보되었어도 알려지지 않고, 호감을 끌어내지 못해 사장되는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가요?

상표등록에 연연하다가 브랜드 개발의 근본적 목표와 방향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처음부터 너무 많이 욕심내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본질적인 것에서 출발합시다.

2022 A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