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입장에서 브랜드 개발은 정기적이고 빈번한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거나 제품/서비스를 론칭할 때 브랜드 개발을 고민하고, 그 이후는 전혀 신경쓸 일이 없죠. 브랜드 리뉴얼의 경우 길게는 수십년, 짧게는 2~3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비정기적 이벤트입니다. 물론 패션이나 화장품, 식품 등의 산업 카테고리는 상대적으로 브랜드 개발을 접할 일이 많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해마다 담당 브랜드를 변경하지 않는 이상 일반 기업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브랜드 개발을 결정하면, 대부분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실무자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어떤 에이전시가 있는지 조사를 시작하게 되죠. 브랜드 개발은 에이전시의 역량에 좌우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문외한이 웹 검색이나 지인 문의를 통해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에이전시 선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말씀드릴께요.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인데도, 실제 상황이 닥치면 간과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1. 먼저,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기본 상식을 받아들이자
위 그림은 작자 미상의 다이어그램입니다. 다만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업계 종사자들이 지극히 공감하는 내용이예요.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높은 퀄리티 / 빠른 스피드 / 저렴한 가격"의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누군가 "왜 불가능해? 난 해 봤어"라고 말한다면, 100% 가스라이팅, 열정페이, 공갈협박 등의 편법으로 이뤄냈을 것입니다. 근로자 인권이 열악했던 수십년 전에는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죠.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이 있다면, 가급적 피하시길 권장드립니다.
2. 브랜딩 에이전시 선택을 위한 기본 체크 사항 4 가지
1번 그림에 저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바로 '편한 매니지먼트' 인데요, 클라이언트 기업 내에서 일해보니 '관리'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겠더라고요. 의외로 브랜딩 프로젝트 진행 시, 실무 담당자가 가장 많이 신경쓰게 되고 수고스러운 부분이 바로 프로젝트 관리입니다. 특히 여러 개발 항목이 맞물려 있을 경우, 하나가 잘못되면 도미노 형식으로 우르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리의 난이도가 올라가죠.
위 그림의 하단에 표시한 숫자는 편의를 위해 임의로 순서를 정한 것입니다. 관점 및 상황에 따라 순서 및 중요도는 달라지니 숫자에 연연하지는 말아주세요.
3. 브랜딩 에이전시의 분류
의외로 브랜딩 에이전시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 알고 계신가요? 제가 현재 알고 있는 브랜딩 에이전시만 해도, 국내 300여개, 해외 800여개가 넘습니다. (광고대행사는 제외하고도요!) 숨겨지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에이전시 및 개인 프리랜서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브랜딩 에이전시가 10명 미만의 아주 작은 기업입니다. 해외에서는 10명 미만의 에이전시를 '스튜디오 Studio'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부티크 에이전시 Boutique Agency'라는 표현을 좀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작기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업무 분야가 특화되어 있습니다.
연관성이 높은 업무들, 예를 들명 네이밍과 로고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의 경우는 묶어서 함께 개발할 수 있는 좀 더 큰 에이전시가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30명 이내의 규모입니다. 수백명, 수천명의 직원을 보유한 일반 기업에 비교해 보면 30명 내외의 기업 역시 소기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희 브랜딩 업계에서는 나름 큰 중견기업 내지 대기업입니다. 네이밍 팀이 있으면 '브랜딩 에이전시', 네이밍 팀이 없으면 '디자인 에이전시'라고 부르는데요, 요즘은 통상적으로 브랜딩 에이전시로 일컫는 것 같아요. 경영전략이나 브랜드 전략 컨설팅을 포함하는 경우는 더 규모가 커지고 '컨설팅 에이전시'로 포지셔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전문 브랜드 컨설팅 에이전시는 국내 및 해외 통틀어 숫자가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해외에는 수백 명 대의 대형 브랜딩 에이전시가 존재합니다. 그동안 브랜드비가 소개했던 해외 유명 에이전시들이 여기에 속하죠.
이 외에 종합 광고 대행사에서도 브랜딩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자체 브랜딩 팀을 보유한 광고 대행사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 브랜딩 에이전시에 하청을 주는 구조예요.
업무범위 및 규모가 1차적인 분류이고, 추가적으로 '인지도'에 따른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구요? 인지도는 가격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업무가 '사람'에 의해 이뤄지고 무형의 업무이기 때문에, 실제 결과물에 따른 가격 책정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 인건비만으로 책정하기엔 오히려 불합리한 것이,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고, 오랜 시간을 투입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물을 내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수요과 공급'의 법칙에 따라, 현재 인기가 많거나, 잘 알려진 에이전시가 비싼 경향이 있습니다.
브랜드비는 2개의 축으로 브랜딩 에이전시를 4가지 타입으로 분류해보았습니다. "당연히 우상향에 위치한 에이전시가 좋은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요, 물론 여유로운 조건 하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죠. 엄청나게 비싼 글로벌 에이전시에 브랜딩을 맡기는 국내 대기업이 그러한데요, 안타깝게도 모든 기업이 시간과 자금력, 인력이 충분한 대기업은 아니잖아요? 또 해외 유명 에이전시에 맡겨 진행한 브랜딩이라고 해서 모두 다 성공적 브랜딩은 아니었다는 점도 잊지 마세요.
4. 기업 현황에 따른 브랜딩 에이전시 선택 법
위 2번과 3번 항목을 조합하여, 상황에 따른 적합한 브랜딩 에이전시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긴급하게, 많은 항목을 개발해야 한다면 최우선적으로 A입니다. 비용은 좀 쓰실 각오를 해야 해요. 대형 에이전시에는 AE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실무 담당자로서는 상대적으로 편해지는 면이 있죠. 결과물의 퀄리티는 '기대치'로 표현한 점 유의해주세요. 추후에 부연 설명 드릴께요.
일정에 제약이 없다면, B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잘 나가는 모 에이전시의 경우,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줄을 섰다고 합니다. 신규 프로젝트를 받지 못할 정도로요. (마냥 부러울 따름입니다.) 다만, B에 의뢰한다고 해서 B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비즈니스 카테고리, 기업의 인지도 및 금액의 매력도에 따라 달라짐을 유의하세요.
또 개발 항목이 많을 경우, B의 협력 에이전시에게 하청을 주는 구조이고 별도의 총괄AE가 없기 때문에 실무 담당자가 좀 더 신경을 써야하는 점이 있습니다.
일정과 예산의 제약이 있다면, C를 선택하세요. 솔직히 선호되는 조건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릴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딩 에이전시가 수락하는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과 실적을 쌓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악용해서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도 있구요, 반대로 '이 조건에서는 이게 최선이랴'라며 대충 개발한 결과물을 제출하는 에이전시도 있습니다. 따라서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 양 측에 어느 정도 신뢰가 구축되었을 때, 안정적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일정, 범위, 예산 모두 제약이 있다면, 가장 처음 말씀드린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상식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최악의 조건이라는 뜻이예요!
따라서, 퀄리티에 대한 기대는 일단 버리고, 기간 내 개발 완료만을 목표로 하세요. 다만, 최악의 조건이기 때문에 D 타입에서도 선택의 폭이 매우 줄어든다는 점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위 조건에서 개발 항목이 적은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매우 저렴한 재능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개발은 '브랜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추천하지 않습니다만, 기업 및 담당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실무 담당자가 브랜딩에 대한 이해가 깊고 관리 경험이 풍부하다면, 이 열악한 조건 하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뽑아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의 실력자를 채용하는 기업이 이런 업무 환경을 제공할 것 같지는 않아요. 말 그대로 '환상'의 프로젝트입니다.
5. 브랜딩 에이전시 선택 시 유의 사항
비록 제가 2가지 기준으로 에이전시 타입을 분류했지만, 사실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브랜딩 업무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무조건적인 확실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에이전시의 규모가 크면 다양한 개발 항목을 소화할 수 있고,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한 일정을 반드시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예요. 옛날에는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긴급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철야, 밤샘을 당연시 했지만, 근로노동법이 강화된 요즘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능하게 만들려면 추가 비용이 필요하겠죠!)
비록 크리에이티브 업무가 두뇌 속에서 이뤄지는 추상적 업무이지만, 두뇌가 주어진 과제를 이해하고, 고민하고, 또 표현하는 데는 일정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이를 '물리적 시간'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순간 영감을 받아서 '유레카'를 외쳤지만, 모두들 그 찰나의 시간만을 크리에이티브를 만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목욕을 하기까지 고뇌한 시간은 간과하더라고요. 요구사항에 바로 척척 답을 내는 것은 AI나 가능한 일이예요. "짧은 기간에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이 능력이다" 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상은 과거 유사 프로젝트에서 개발했던 크리에이티브 시안의 재활용을 하는 것이예요. 에이전시가 크고 오래될 수록 누적된 시안이 많으니, 재활용 꺼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브랜딩 프로젝트에 적합한지는 의문입니다. 또, 요즘처럼 시시각각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수년 전에 개발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고루하고 진부한 것에 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명세 역시 마찮가지입니다. 간혹 개발한 결과물이 아닌 "유명한 사람, 유명한 에이전시가 개발을 했다"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클라이언트들이 있는데요, 그런 분들에게는 에이전시의 유명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죠. 브랜드의 성공보다는 주변 지인에게 자랑하는 목적으로 브랜딩을 한다면 말이죠.
가끔 브랜드 관련 보도자료에서 "세계적 브랜딩 에이전시 000에서 개발했다"라는 문구를 발견하는데요, 정보제공은 참 감사하지만 동시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계적 에이전시가 개발했다고, 그 브랜드가 세계적 브랜드가 되는 것일까요? 또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더 불러일으킬까요?
제가 위의 체크리스트 항목에서 '기대치'로 표현한 것도 이 이유 때문입니다. 유명한 에이전시에 의뢰하면 과거 수행했던 성공사례처럼 결과물을 잘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물론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못지 않게 숨겨진 실패 사례도 많아요. 실패했기에 쉬쉬하는 것 뿐이죠.
크리에이티브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성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어요. 저도 수십년간 지켜보고 또 경험해봤지만 개인의 성향 및 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에게 과감하고 힘있는 디자인을 요구한다면 잘 수행해 낼 수 있을까요?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디자이너에게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디자인을 요구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 브랜딩 프로젝트의 비딩을 진행하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해낼 수 있다' 라고 이야기들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릴께요. 진실은 아니예요.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면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다르다, 다양하다'라고 생각하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똑같다, 변화가 없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일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에이전시도 있어요. 유명 기업이나 흥미로운 분야의 프로젝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열정적으로 참여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나 관심없는 분야는 주니어 디자이너 1~2명에게 맡기고 프리젠테이션만 수행하는 것이죠. 이를 그 누가 사전에 알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결과물이 마음에 안들어도 클라이언트가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의외로 꽤 있습니다.
6. 브랜딩 에이전시를 잘 선택하는 방법
왜 브랜딩 에이전시를 잘 선택해야 할까요? 당연히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진정한 '브랜딩'을 잘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에이전시의 규모나 유명세만 볼 것이 아니라, 브랜딩 프로젝트에 대한 본질적 파악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요? 그런데 막상 기업 안에서는 무조건적으로 "그 회사 유명해? 뭐 했는데?" 와 "그래서 얼마래?"로 판단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아마도 대부분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별로 없기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 가까이 닥쳐온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리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브랜딩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요즘은 좀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브랜드 개발을 위한 설계가 필요해요! 클라이언트 기업이 이러한 사전 준비 없이 브랜딩 에이전시를 선택했다가, 결국은 협박과 회유, 분노와 눈물로 에이전시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답니다.
자체 광고 문구로 마무리할께요.
브랜딩 프로젝트를 처음 진행해보거나 잘 모르신다면, 부담없이 브랜딩 에이전시에 자문을 구해 보세요. 대부분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줄 것입니다.
혹시, 아는 브랜딩 에이전시가 없다면 브랜드비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