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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바꿔! 이름과 로고 빼고

우리나라 공공 브랜딩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수장이 바꾸면 어김없이 로고를 교체한다는 것이죠. 앞서 Special Feature로 다운 서울시의 슬로건도 그렇고요, 매년 수없이 발표되는 지자체 브랜드, 관광브랜드, 농산물 공동 브랜드 들의 교체 배경을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변경 필요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결국은 수장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와 더불어 로고 개발 비용 및 로고 교체에 드는 비용도 함께 논란거리로 등장하죠.


하지만, 여러분 알고 계시나요? 로고 디자인을 교체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크답니다. 하나의 정책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 오랜 기간과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임기 내에 끝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장기적 정책이라면 중단되거나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죠. 또, 다행히 임기내에 완성했다 치더라도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해 추가 홍보 비용이 필요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부 내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없고, 또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홍보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요.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기업이 변화가 필요함을 자각하게 되는 상황은 대부분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왔을 때입니다.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타개책으로 리브랜딩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답니다. 반대로는 운 좋게도 여유자금이 넘쳐날 때, 비용 소모용이자 과시용으로 리브랜딩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이 거액의 투자금을 받고 리브랜딩을 하는 경우가 많죠. 두 가지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기업의 변화를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어해요.


자, 그렇다면 그 변화를 어느 정도까지 구현해야 할까요?

리브랜딩을 수행하는 실무자와 브랜딩 에이전시들이 항상 고민하는 사항입니다.

아래에 참고 장표를 만들어봤어요.



다른 글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브랜드비는 archiveB를 업데이트하면서 크게 3가지로 유형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New, Renewal, Change 인데요, New는 말 그대로 새롭게 만든 브랜드구요, Renewal은 네임은 유지하되 로고를 바꾸는 경우, Change는 네임과 로고 모두 바꾸는 경우입니다. 다만, 기존 사용하던 네임을 축약한다거나 보조적인 일반명사를 덧붙이는 정도의 네임 변화는 Renewal로 보고 있어요.


위 그림에서는 로고의 형태에 따라 좀 더 세분화했습니다. Logo Refine이 추가되었는데요, 역시 크게 보면 Renewal에 속하긴 합니다. Logo Refine은 서체나 색상, 형태 등에서 미세한 디테일을 다듬는 것인데요, 좀 둔한 사람은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고요. 가끔 실무 담당자가 이전 로고를 사용하는 어이없는 사례도 발생해요. (만약 그 담당자가 디자이너라면 눈썰미가 부족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업무에 정신을 놓았다는 뜻이니, 애꿎은 로고를 탓하지 마시고 사람 관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리브랜딩'이라는 단어 자체가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부분 Refine이 아닌 Renewal, 나아가 Change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은 먼저 멀리 차야 쫓아갈 수 있잖아요? 브랜드 역시 먼저 과감히 변화해야 내부적 변화도 따라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비록 대다수가 외형만 바꾸는 공허한 리브랜딩에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요.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는 로고를 변화하지 않고 리브랜딩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엔 이런 사례들을 archiveB에 등록을 해야하나 고민을 했답니다. 저희 archiveB는 네임과 로고 중심으로 살펴보는 DB인데요, 똑같은 로고를 올리자니 사용자분들이 관리자의 실수 또는 웹사이트의 버그라고 생각하실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서야 동일한 로고여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답니다.


서론이 엄청 길어졌는데요, 본격적으로 로고 변화없이 리브랜딩을 한 사례들을 직접 살펴보도록 해요.






1. The Week by Elmwood



The Week는 1995년 영국에서 창간된 주간지입니다. 현재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행되고 있다고 해요. 요즘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에, 종이 기반의 미디어 매체들이 시대와 발맞추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The Week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The Week의 로고는 미묘하게 살짝 바뀌었는데요, 나란히 두고 비교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라 일단 변화 없음으로 간주했습니다.

The Week는 별도의 심볼이 없는 워드마크 형태의 디자인으로, 프레임으로 사용되는 빨간 색 바(Bar)를 브랜드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네이버가 녹색 창으로 브랜딩 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이 빨간 색 바는 손맛이 느껴지는 일러스트와 결합하여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 디지털 환경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 선택 하이라이트도 빨간 색 바로 표현했어요. The Week만의 고유한 관점(View)을 상징하는 요소가 된 것이죠. 서체, 일러스트, 빨간 색 바 3가지 요소로 구성된 이번 리브랜딩은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 OPPO by Stockholm Design Lab



OPPO가 브랜드비를 고민에 휩싸이게 만든 대표 사례입니다. 녹색 로고가 검정으로 변한 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참고로, 검정은 색상이 아니예요!) 그저 변화했음을 표현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라고 봐주세요.

OPPO의 리브랜딩은 OPPO Display라는 전용서체의 개발, 다양한 매체에서 일관된 이미지를 전달한 레이아웃 시스템, 그리고 위 이미지에는 생략되었지만 이전 로고 색상 대비 훨씬 밝고 선명해진 녹색의 포인트 컬러 도입으로 구성됩니다. 로고는 변하지 않았지만 광고나 매체에서 소비자가 전달받는 이미지는 확실히 달라지는 것이죠.





3. Prime Video by Pentagram



Prime Video는 Amazon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Prime Video 로고 역시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Prime Video의 리브랜딩의 가장 큰 특징은 Dimple(보조개)로 불리는 화살표를 그래픽 모티브 및 애니메이션의 기본 요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또 전용서체 및 아이콘 그래픽 개발을 통해 복잡한 디지털 환경에서 일관성 있는 Prime Video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4. WhatsApp by Koto



카카오톡의 원조, WhatsApp의 리브랜딩입니다. 역시 로고 변화 없이, 색상 팔레트 정의, 그래픽 모듈 시스템 그리고 유니버셜 UX 정립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그래픽 모듈이나 UX면에서의 변화는 일반인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이예요. 하지만 직접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는 빈번하게 접하는 앱의 각종 화면에서, 누르고 입력하는 행위에서 WhatsApp이라는 브랜드를 체험하고 인지하게 됩니다.





5. Netflix by Koto



브랜딩 에이전시인 Koto는 이번 리브랜딩을 "New Look, Same Netflix"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고는 동일하지만 독특한 일러스트 아이콘, 형태와 비율에서 일관성을 지닌 픽토그램 개발, 다양한 시청 환경에서 가독성을 높이는 가변형 서체 적용 등으로 넷플릭스만의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이상으로 로고 변화 없이 리브랜딩을 한 대표 사례들을 살펴봤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브랜드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나 운영하는 입장에서나 가장 어려운 리브랜딩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로고가 바뀌지 않았기에 직관적으로 변화를 인지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소소한 요소들의 전략적이고 일관성 있는 디자인 시스템을 정립함으로써 "은근히" 브랜드를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티'는 별로 안나는데, 수고로움은 훨씬 많이 드는 리브랜딩이예요. 또 기껏 잘 구축해놨는데, 실제 운용하는 브랜드 담당자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눈썰미가 없으면 말짱 꽝이 되어버리죠.




흔히들, 리브랜딩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름까지 다 바꿨어" 또는 "이름 빼고 다 바꿨어"라고 표현하는데요,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이름과 로고 빼고 다 바꿨어" 입니다. 전자는 의사결정은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실행이 용이해요. 후자는 의사결정이라기보다는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각오가 필요하고, 또 실무자의 부단한 팔로우업이 필요하죠. 저는 아무래도 실무자 입장에 가까운지라 그 고생이 저절로 그려지네요.



로고 변화 없이 리브랜딩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1. 조직 내부에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리더가 존재해야 한다.

2.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계획과 운영이 필요하다.

3. 브랜드 시스템 및 브랜드 경험 전반에 이해도가 높은 전문 브랜딩 에이전시를 선택해야 한다.

4. 브랜드를 운영하는 실무자들을 반드시 교육시켜야 한다.

5. (단기간에 알리고 싶다면) 리브랜딩의 특징을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홍보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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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는 로고 변화 없는 리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 더이상 로고 디자인이 전부인 시대는 끝났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로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앱이나 SNS 상단 바 또는 좌상단의 조그만 동그라미 속에서 보여지고 있죠. 미디어 홍수 속에서 예쁘장한 로고만으로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2. 일방적 이미지 전달에서 브랜드 경험 창출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많이 노출되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를 좌우할 때가 있었죠. 하지면 요즘은 사용자와의 인터랙션 및 소통, 이를 통한 총체적 브랜드 경험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웹이나 앱들이 상향평준화되고 있어요. 대동소이한 웹과 앱 서비스 속에서 차별화 요소로서 아이콘이나 그리드 시스템, 인터랙션 설계 등이 부각되는 것입니다.


3. 다름이 아닌 특별함을 더하다.

차별화는 브랜딩의 숙명과도 같은 숙제입니다만, 점점 더 차별화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넘쳐나는 브랜드, 넘쳐나는 로고, 넘쳐나는 시각적 자극들 속에서 그 어떤 형태가 소비자의 머리속에 차별화된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기존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로고는 변화하지 않되,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한 리브랜딩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특별함은 고유의 서체일 수도, 친근한 일러스트일 수도, 감각적인 모션 그래픽일 수도, 간결하면서도 편리한 UX일 수도, 또 이 모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2023 SEP